다시 쓰는 난임일기(5)
다시 쓰는 난임일기(5)
난임원인은 부부 둘 중,
누구의 탓인가?
컴퓨터 모니터 화면 속의 남편의 정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사진 속에서만 보던 이쁜 모양은 아니었다.
'정상정자 개수 2%'
정자활동성 검사 결과를 선생님에게 듣는데 수치를 듣고 희번덕했다. 뭐라고 2%?
마스티커베이션을 통해 채취된 것을 현미경으로 촬영하여 진료실에서 볼 수 있었는데,
운동량, 속도, 진행방향, 진동 등을 가지고 판단한 남편의 성적표는?
본인 나이보다 평균이하,
내가 육안으로 봐도, 별로였다.
'4%는 되어야 임신하기 수월한 수치라던데..'
동공이 흔들렸다.
결과가 좋지 않아서 이러면 바로 시험관을 해야 하나? 난임병원에 갓 입문한 병아리 부부의 마음을 선생님께서 눈치채셨는지.
"일단 인공수정 먼저 해요"라며 속도 조절,
"휴"
"왜 이렇게 한숨을 쉬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느껴졌던 그때 당시의 묘한 기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렇다. 난 그를 탓을 하고 있었다. 2%라니..
가끔 아니 매일같이 원망했었다. 그동안 맘 고생한 게 그 때문인 것 같아서, 온몸에 힘이 빠지고 한숨만 늘어갔다.
나중에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차수가 올라갈수록 매일 맞게 되는 주사가 1대에서 3대로 늘게 됐을 때, 주사 바늘을 배에 찌르면서도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하며 나의 원망은 더 깊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한 사람만의 원인이 아니었던 듯하다. 내 난자 나이 결과는 여성 평균과 비슷했지만, 결국 쌍둥이 남매는 내 몸속에 있었던 5cm가량의 자궁근종을 떼고 난 후 임신이 되었던 거니까.
성적처럼 노력 대비 이루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니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던 거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시험관을 하는 내내 시시비비를 가렸던 내가 참 부끄럽다. 눈치 없는 남편은 내가 왜 그런지 이유도 모른 체 내 기분을 맞춰야 했던 날들도 많았을거다.
둘 중 누구의 탓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의 답을 4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찾는다면,
무의미했다는거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드니
누구의 탓을 해서라도 원망할 타깃을 삼았던 나 자신, 부끄러운 과거의 민낯이다.
"남편아 저 때의 꼬장 다 받아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