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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다이앤 Sep 17. 2023

나는 왜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나 2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퇴사'라는 단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정의를 새롭게 붙이고 나자, 불안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한 직장을 10년 넘게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 단어를 조금 잊어가고 있었거든요. 직장인이라고 누구나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아니었어요. 이미 회사에 너무나 잘 적응해서 안착한 상태였거든요. 업무강도 대비 월급도 나쁘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잘 버텨냈었지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는데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회사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일하는 사람'라는 정체성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신입사원 때 사원증을 받아 목에 걸었던 때의 뿌듯함이 저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사회 속에서의 내 위치가 자랑스러운 날들이 있었고요. 익숙한 출근길과 나에게 맞게끔 세팅된 사무실의 내 책상이 주는 안정감을 꽤 애정했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면서도, 당연히 복직해서 일해야지 하고 생각했었어요. 스스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를 떠올리면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자기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그렸고요. 엄마가 되었다고, 30년 가까이 쌓아온 제 자신이 한순간에 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게는 육아보다 회사 일이 훨씬 익숙했고, 자신이 있었으며, 보다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무척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과 별개로 회사 복직을 손꼽아 기다렸지요. 


​커리어우먼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복직한 후 여러 모로 정신이 없었고 체력도 달렸지만, 때때로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여 성과를 내는 것도 뿌듯했고요. 친숙한 사람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어요.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느낌이 들면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다만, 제가 예상치 못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실무자로서만 일했는데, 복직하니 팀에서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도 맡게 되었다는 점이죠.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고 판단하기를 바라고, 팀장의 지시를 기다리기보다 알아서 해결책을 가져오기를 요구받았습니다. 주니어급을 좀 챙겨서 가르쳐 달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요. 그때가 근무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었거든요. 근속 10년, 어느덧 저는 그런 연차였습니다.


그때부터는 서서히 부담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팀장님들의 모습이 허투루 보이지 않고요. 내 앞날이 저렇겠구나,라는 생각이 확 와닿지요. 빠르면 년 내에도 닥쳐올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 자리를 욕심내는 분들도 있겠지만, 글쎄요, 저는 덜컥 겁부터 나더라고요. 저렇게까지 일해야 한다고? 자신도 없었거니와,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해내기에는 더더욱 불가능해 보였고요.


그러나, 제 직장 생활의 한 챕터는 이미 넘어가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직장생활의 사다리에 올라타 있었던 거죠.  직장에서 어느 정도 연차가 차면, 그때부터는 이직이든 직무전환이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가 극히 제한됩니다.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관리자가 되어 더 높은 레벨의 리그에서 새로 시작하거나, '도태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밀려나거나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순진하게도,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다는 것을 저는 그제야 깨달아버린 거죠.


팀장 달고 임원 할 거 아니면 그만둬야지


워킹맘으로 버티어봤자,  끝은 어느 쪽이든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겠구나. 그럼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순간까지도 저는 그리 진지하지 않았습니다. 이직을 해서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았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죠. 매달 나오는 월급은 마약 같았고요.


철퇴를 휘두른 건 저의 배우자였습니다.


"팀장 되고 임원 될 거 아니면 회사를 뭐 하러 다녀. 그만둬야지. 그만두고 네 일 해. "

"응?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회사를 어떻게 그만둬. 다른 게 할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만두고 찾아보는 거지. 아니면 너 평생 회사 다닐 거야? 팀장 임원 안 하고 정년까지 다닐 수 있어?"

"아니 그건 아니겠지... "

"그럼 결국에는 뭔가 다른 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계속 회사에 붙어있을 수 없고 결국에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그렇기는 한데. 제 심정을 요약하면 딱 이거였습니다. 당신 말이 다 맞기는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걸 나도 알기는 하는데, 그런데. '그렇기는 한데' 이후 뭐라도 시도해 보기까지, 저는 시간이 참 많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날의 충격요법이 저에게 준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일'과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동안 저에게 일은 곧 회사였습니다. 일은 계속해야지, 일은 포기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할 때에, 무의식적으로 '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자리에 '회사'를 넣고 있었어요. 회사는 계속 다녀야지, 회사는 포기하면 안 되지, 이렇게요.


그런데 어떡합니까. 우리 모두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 하는데요. 그리고 회사를 떠나더라도, 일은 계속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을 해야 하지? 고민이 들 때 필요한 것이 '나'였습니다. 지금의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일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세상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일들이 있지만, 그걸 재어보고 고르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으니까요. 막연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고, 저는 그때부터 더듬더듬, 회사 일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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