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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y 08. 2019

나는, 외톨이 #1

무례한 사람과 마주하는 법



아침이라 부르기엔 조금 이른, 6시 15분. 열아홉 살의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5분이면 충분했다. 6시 20분 무렵에 집 앞 버스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를 탔다.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에 빠졌다.


한참 자고 일어나면 버스가 꽉 차 있다. 대개 우리 학교 학생이거나 옆 학교 남학생들이다. 버스는 7시 언저리에 학교 앞 정류장에 섰다. 나는 나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뒤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은 고요한 시간,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의 비릿함을 맡으며 교실로 향했다. 내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두곤 곧바로 체육복 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그대로 책상 위에 뺨을 붙인 채 엎드려 눈을 감았다.

곧이어 같은 반 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로 들어온다. 0교시가 없어진 시간엔 아침 자율(이라 쓰고 강제라 읽는다) 학습 시간이 생겼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그제야 비로소 고3의 하루가 시작된다.







10대의 우정은 무리 가운데 만들어진다


“OO아~ 내가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콧소리가 가득한 하이 톤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잠에 취해 있는 한 아이에게로 향한다. 그 목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옆 분단에 앉아 있던 아이가 몸을 일으킨다. “야! 일어나라고오!” 괜히 시비를 걸며 잠에 취해 있는 아이 곁으로 걸어간다.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몸을 돌리며 “어제 몇 시에 잤어? 어?” 하고 말을 잇는다. 온 얼굴에 잠을 묻힌 아이도 좀비처럼 걸어온다. 그때 교실 뒷문으로 깡 마른 아이가 ‘다다다’ 뛰어와 합세한다.  


그렇게 하나의 무리가 완성된다. 학창 시절의 희로애락은 그 무리에서 만들어진다. 그게 10대 여자들의 우정이다.

나는 잠을 깨우는 그 소란스러움에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더 이상 그 무리의 일원이 아니었으니까.



무리를 잃었다



그 날을 기준으로 몇 주 전, 내가 아직 그 무리의 일원이었던 어느 날이다. 당시 우리 무리는 7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5명은 1학년 때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고 나머지 2명은 2학년 때 친해졌다. 그 2명 중 한 명이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나는 자꾸만 우리와 가까워지려고 하는 그 둘을 우리에 합류시켰다.


우리는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 학창 시절의 낭만을 만들었다. 같이 수업을 듣고 숙제를 베끼고 공부를 하고, 땡땡이를 쳤다. 그들과 함께 처음으로 술을 마셔봤고 연애 문제로 울고 웃었다. 대학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성적으로 불안해하는 것도 함께 했다. 그들은 나의 전부였다.

그러던 친구들에게서 갑자기 쎄- 한 기분이 느껴졌다. 늘 함께 했던 그들이 뭔가 다르게 행동한다는 걸 내가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오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나한테 불만이 있으니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저 그들이 내게 불만을 털어놓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한 충격이었다. 그냥, 거짓말이길 바랐지만 그것은 실제로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날부터 며칠간 나는 수업을 듣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얼굴을 숨기고 울었다. 그러면서도 순진했다. 며칠만 지나면 될 줄 알았다. 친구들이 내게 가진 화가 곧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울고 있는 친구에게 측은지심을 베풀 줄 알았는데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그리고 약속했던 며칠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며칠’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고. 그들 가운데 한 명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친구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애들이 나랑 친구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한 마음처럼 나를 외면했다. 그렇게 나는 무리를 잃었다.


나는 단지 궁금해졌다. 그들도 나처럼 친구를 잃었다는 아픔이 있었을까 하는.




나를 개무시하는 옛 친구들과


그들 중 절반 이상이 나와 같은 반이었다. 나와 그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주일 중에 6일을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처음 2주는 지옥이었다.

친구들에게서 버려졌고,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려왔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했고, 괜찮은 척을 했지만 괜찮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나는 가만히 엎드려 1시간에 하루만큼의 추억을 지웠다. 때론 그들을 저주했고 그보다 자주 나 스스로를 저주했다. 2년의 추억을 지우는 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그때를 지웠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그때를 떠올리지 않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보내며 나는, 나를 개무시하는 옛 친구들과의 공존에 익숙해졌다. 감사하게도 내 짝이 나를 챙겼고 실장이 나와 자주 산책을 다녔으며, 간간이 나와 어울리던 몇몇 친구들이 나를 혼자로 내버려두진 않았다. 학업에 집중해야만 했던 고3이라는 환경도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긋지긋하던 고3 생활이 끝났다.

나는 누구와도 애틋하게 졸업사진을 찍지 않은 채로 학교를 벗어났다.



대학에서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몇몇의 친구가 생겼고 우린 점차 하나의 무리가 되었다.


사실 자주 불안했다. 저들도 나를 버리진 않을까, 대학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유언비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옛 친구들과 달랐다. 그리고 유별났다. 진짜 친구처럼 서로를 대했다. 좋은 점은 칭찬하지만 나쁜 점은 쿨하게 무시(혹은 인정)하고 넘어가는 그들과 함께 있으며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들은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내 곁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욕하며, 함께 취하고 함께 웃는다. 방식과 속도가 다른 삶을 살면서도.



그토록 듣고 싶던 말


대학교 3학년 즈음, 그 옛 친구 중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마지막까지 나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Y였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오래지 않아 만남을 약속했다.

나와 Y는 한 막걸리 집에서 만났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전을 주문하고 대학생활, 연애 등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제야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대 소녀 시절, 우리는 어리고 여렸다. 직설적이던 나의 말투가 문제가 되었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은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 부분엔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Y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게 그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까지 나를 소외시켜야만 했냐고, 왜 하필 고3 때 그랬어야 했냐고, 적어도 나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잔인할 필욘 없었던 거 아니냐고.


Y는 미안하다는 말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불편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운데 H가 있었다고 했다.


H는 당시 나와 같은 동네에 살던, 조금 늦게 친해졌지만 가장 친하게 지내던 이였다. 나와 H는 성향이 달랐다. 내가 냉소적인 태도였던 것과 달리 H는 애교가 많고 무리의 중심에 서고 싶어 했다. 나는 종종 과도하게 친구들에게 칭얼대는 H를 말렸는데, H에겐 그 말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다시 Y의 이야기가 돌아가면, H가 나에 대한 반감을 부추겼다고 했다. 저마다 쌓아뒀던 불만이 터져 나왔고 그렇게 나와 무리에게 틈이 생긴 그 사이. H가 분위기를 주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H만큼이나 나를 불편하게 느꼈을 누군가도 있었을 터다. 반대로 그들 중 몇몇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나중에는 나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그냥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두었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이 Y였다.


Y는 이어 말했다. 대학에 가서 H는 또 한 번 모든 관계의 중심이 되려고 했다고. 그리고 그제야 H가 가진 잘못이 보였다고 했다. 그 후로 한참 내게 더 미안함을 느껴왔다고 고백했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도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내가 내 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쉽게 나를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그중 몇이 나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나는 터질 것 같은 분노의 끝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Y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 가슴속에 가득 찬 한숨을 그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나 더 화를 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Y가 고마웠다. Y에겐 나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Y를 용서할 수 있었고, 그전까지 오롯이 나의 인성 문제라고만 여겼던 그 고통으로부터 한 발 벗어났다. 그 후로도 Y는 나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인간관계라는 게 참 어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공든 탑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나는 그 후로도 몇몇의 관계를 아프게 끊어야 했지만 대개는 문제없이 좋게 마무리하기도 했다. 끊어질 것 같던 사이가 간간이 이어지기도 했고, 평생 갈 것 같던 좋은 관계도 언제 그랬다는 듯 끊어지기도 했다.

내가 가진 여러 아픔에 대해 글을 쓰며,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망할 태도와 오해, 어긋난 타이밍이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지만, 아픔을 통해 성숙해진 나를 마음껏 으스대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날 밤, 화장을 지우다 멍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을 웃었다.


관계에 대해 우쭐대는 거울 속의 내가 지독하게도 멍청하고 못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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