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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y 09. 2019

나는, 외톨이 #2

무례한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법


소름 돋게 스스로가 싫어질 때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태도 중 하나는 오만한 모습이다. 나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 벅찬 가정사를 이겨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독이었다.



‘너희들이 나 같은 상황에서도 그렇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부모 없인 아무것도 아닌 병신 같은 게’



나보다 나은 상황에서 사는 이들을 깔봤다. 예의 바른 싸가지. 그게 나였다. 그런 생각들은 태도에 묻어났을 터다. 나는 안하무인의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무시했을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 가운데서.











거울 속의 내가 말했다



지난밤, 화장을 지우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거울 속 내가 내게 말을 했다.



“어쩌면 너는 따돌림을 당할 만한 애였을 지도 몰라. 그들의 문제만은 아닐걸. 모든 결과엔 이유가 있는 법이지.”



나는 분명히 들었다. 입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시신경을 타고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긴장한 입꼬리가 비웃음을 지었다. 내 본모습을 가리고 있던 화장이 지워지던 그 순간에, 숨어있던 또 다른 내가 불쑥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애정에 목말랐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이 날 싫어하겠지? 남의 눈치를 봤다. 힘이 있어 보이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그게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동시에 그들을 평가했다. 판단이 끝나면 행동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잘나 보이는 사람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이, 나였다.




나는 정말이지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진 않았다. 상처 받는 게 겁났다. 그저 받고만 싶었다. 마음이 너무 허해서 누구의 것이든 주인 없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썼다.


반면 내게 마음을 준 사람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편한 대로 행동했다. 그렇게 무심코 뱉은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이 타인에겐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나의 오만은 요즘도 자주 활개를 친다.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어지면 본색을 드러낸다.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습관이 더 생겼다. 단면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 못된 습관인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지하철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사람을 천하에 무식한 사람으로 평가한다든지, 업무로 만난 사람(갑을 관계가 형성되는)의 특정한 행동으로 그를 비난하는 것. 그보다 조금 사소하지 않은 예를 다시 들자면 친구의 어떤 모습을 보고 한 동안 만남을 피한다든지, 남편과 관련된 어떤 사람들의 행동을 우선적으로 나쁘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것이 진실과는 다를지라도, 나 역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으면서도.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서로 간의 거리를 결정한다.




좁은 우물에만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지난밤에서야 내가 내 우물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다.







무례한 나를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



나는 오래 걸리지 않아, 내가 갇힌 우물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이미 그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못난 내 마음이 들여다 보였던 것이다.



남들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훨씬 무례했던 나 스스로에게 웃음을 보일 수 있던 방법은, 표현에 있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 말이다.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자신의 우물을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다. 받은 게 없어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고인 사랑은 낡고 썩어간다. 줄어드는 사랑에 집착하며 남은 것이라도 지키려고 점점 더 우물 깊이 들어가게 된다.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표현하는 건 어떨까.

사실 개인이 가진 마음은 별로 대단한 게 아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흠집이 있고 모양도 제각각이지인 마음을 그냥 살짝 내밀어 보는 것이다. 팔이 우물 밖까지 뻗어지지 않을 땐 밖으로 살짝 나와 다시 손을 내밀면 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줄 사랑을 지고 있다. 그들은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나를 찾고 있던 것이고, 내가 그 우물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나는 결혼 때문에 억지로 우물을 나왔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은 몇 명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결혼식을 준비했다. 외면받는 게 겁이 나서 내가 먼저 몸을 낮췄다. 대신 몇 남지 않은 사람들에겐 최대한 공손하게 부탁했다. 제발 내 결혼식에 와달라고. 짧은 편지를 써서 청첩장과 함께 우편으로 보냈다. 직접 만나 결혼할 사람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 같이 눈물로 감동을 표현했고,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먼 거리까지 웃으며 달려왔다. 그리고 돌아갈 땐 ‘초대해줘서 고맙다, 오히려 자신이 더 행복하다’는 말을 남겼다. 결혼식은 내 생각보다 훨씬 크고 즐겁게 끝이 났다.

나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내 주변 사람들의 진심을, 내가 오해하고 있던 많은 이들의 마음을, 내 마음을 건네고서야 선물 받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었다. 사랑받기에 급급했고, 나를 싫어할까 겁을 먹었다. 어쩌면 나의 오만이 나를 똘똘 싸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오늘의 나는 관계를 위해 조금 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 민망하지만 그냥 내 마음을 전해버리는 것.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상처를 받지 않을까’ 타인의 마음과 의도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내가 주는 것. 상처 받으면 어때, 남들이 날 좋아하지 않으면 어때 내가 좋으면 되지 라고.

(물론 그렇게 해도 힘든 건 사실이다.)



나는 왜 이렇게 아프면서 성장해야 하는가

늘 한숨이 나지만,

십수 년 전의 고통으로부터 또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기로 했다.  





Photo by Guilherme Stecanell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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