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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Jun 05. 2019

예민하다는 말로 비난하지 마세요

내가 되어 살고 싶어요 #2





내 머릿속에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수다쟁이가 둘 산다.

하나는 ‘긍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정’이다. 둘은 한시도 쉬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한 뒤늦은 후회를 가지고 ‘만약에’ 게임을 펼친다.



‘만약,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만약,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가 타인과 대화를 할 때도 불쑥불쑥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하지? 나를 싫어하나?’

‘아니야, 다른 사람한테도 그러는 걸 보니,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닌 거야.’


‘바보냐? 거기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척 지나가면 돼.’



그러다 가끔은 두 녀석이 합심을 해서 떠들어댄다.


‘아니, 저런 미친 이건 아니잖아!’


욱하는 마음에 저지른 일에 대한 수습 역시 둘의 몫이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게 좀 참지 그랬어!’



내 머릿속은 잠시도 조용한 때가 없고, 쉴 새 없는 수다에 점점 예민해진다.











무던하면 다 좋은 성격인가요?



돌아보면 내 주변엔 무던해 보이는 사람이 꽤 많다. 가족을 위해 수십 년 같은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수백 년간 유지되어온 유교문화를 군말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대학과 취직에 청춘을 바치는 인물도 있고 무리에 속하기 위해 다수의 의견에 서는 사람도 봤다.


내 남편도 무던한 편이다.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과격하게 반응하지 않고, 자기가 싫은 게 있어도 티를 잘 내지 않는다. 본인은 싫은데도 남들이 불편할까 참는 편이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


하루는 그 속이 너무 궁금해서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화가 날 땐 어떻게 해?” 라며 대놓고 물었다.


“나도 화가 나지, 근데 그거 때문에 미치겠다 싶을 만큼은 아니야.”


그 답을 듣는 내 속이 또 한 번 뒤집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문제를 놓고 다르게 반응한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바르르 뛰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그냥 가만히 있는다. 결국 답답함에 폭발한 내가 파르르 대면, 주변 사람들은 이리 말한다.


“아유, 좋겠어. 남편이 성격이 참 좋네.”









좀 예민한 편입니다



나는 예민하다. 주변에 발생한 ‘어떤’ 상황을 빠르게 인지한다. 좋은 상황이라면 누구보다 기뻐 날뛰지만, 나쁜 상황이라면 빠르게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따라 감정 역시 빠르게 바뀌고 깊어진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그 감정을 해결하지 않으면 금세 몸에 신호가 간다. 아프거나 어지럽거나. 아무튼 나는 남들보다 예민하다.


그런데 그 ‘예민하다’는 말이 싫은 건 어쩔 수가 없다. 본래 예민하다는 말은 남들보다 빠르게 느끼고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하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까칠하다는 성격적 문제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야,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왜 너만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아, 졸라 예민하게 구네 진짜!”


예민하다는 말은 생각보다 자주, 다름을 ‘틀림’으로 매도하려는 의도에서 쓰인다.


남들과 다른 유년시절을 보내며 한 번이라도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었던 나는, 그들의 의도대로 ‘다름’을 ‘틀림’으로 수용해버렸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나의 성향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고등학생 때부터 15년간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 기억할 순 없지만, 대개 부정적인 의도였다. 나중에는 예민하지 않은 척 노력했지만 금세 탄로가 났다. 또 한동안은 사람을 피해 살았다.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들과의 불편한 대화는, 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세상엔 뾰족한 부분들이 많았으니까. 나를 보호하려고 나 자신을 가둔 것이다. 외로웠지만 상처 받는 건 더 싫었다. 아무에게도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입니다



내가 나의 남다른 예민함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 건,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서였다. 글을 쓰는 데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같은 내용이라도 쓰는 사람의 문체에 따라 디테일이 달라진다. 오밀조밀하고 끈적한 감정, 남다른 시선은 뛰어난 묘사가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계속 고치고 고치면 심지어 더 좋은 글이 된다.

무엇보다 남과 다른 이야기를 할수록 남들이 좋아하는, 다름을 ‘틀리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3년 전, 내가 주류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할 때였다. 그때도 나는 예민했고, 나의 성향을 아시던 편집장님은 내게 디테일이 필요한 일들을 요구하셨다. 나는 예민한 나의 감각을 동원해 술의 맛과 향을 느꼈고, 음식의 익힘 정도와 밸런스를 글로 풀었다. 나조차 평소에는 느껴볼 수 없었던 감각이 발현되었고, 내 두 손이 절로 낯선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가끔 정말 미친 듯이 원고를 잘 쓰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럴 때면 “역시 너답다. 살풋살풋 글이 살아있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예민한 기질을 이해해주거나 개성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예민함을 하나의 재능으로 살릴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도 결코 살기 힘든 것만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고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한 번 바꾸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중에서(다카다 아키카즈/매경출판)



나는 그 후로도 글을 썼고 요즘도 글을 쓰며 밥을 먹고 산다. 마음처럼 글이 안 써지는 날도 많고, 내 마음에 드는 글이 타인에게는 ‘별로’인 경우도 많지만, 글을 쓰며 느끼는 짜릿함, 내가 나로서 멋진 느낌은 여전하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에요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다. 다른 건 특별한 것이다.


나의 남다른 예민함이 나를 힘들게 하는 날이 많고, 이를 지켜보는 타인 역시 불편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특별함을 나쁜 것으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들과 비슷한 남에게 나를 비난할 기회를 주어선 안 됐다. 나 역시 남들처럼 나를 비난해서도 안 됐다. 나만은 나를 아끼고 변호하고 사랑했어야 한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는 요즘도 예민한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누가 내게 “예민해”라고 노려보면, 나 역시 “예민한 게 아니고, 섬세한 거!”라며 응수한다. 화는 내지 않은 채로.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멋지고 한결같은 나무가 되고 싶지만, 오늘도 수십 번을 흔들리며 나 자신을 알아간다.



Photo by Oleg Iva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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