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야 Jun 16. 2019

미안해요, 나만 아픈 줄 알았어요

우리가 상처를 사랑할 수 있기를



심리학자와 정신과 전문의들의 공통적인 의견 하나는 유년시절의 감정과 경험이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커서 다른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한다. 믿을 만한 구석이 적으니 쉽게 불안해진다.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지 않으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행동이 긍정적인 결과로 연결될 경우, 집착이 생긴다. 그것이 반복되면 강박이 된다. 대개 타인의 관심과 인정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게 된다.








사랑받는 아이의 조건



나는 코흘리개 시절, 친엄마에게서 버려졌다. 새 가족들은 먹고사는 게 바빠, 자신들 본인의 열등감에 치이느라 나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들도 나를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부정적인 태도와 말투, 위기의 상황과 불쾌한 감정만을 기억할 뿐이다.


내 속엔 '악산'이 생겼다. 나는 쓰레기 같은 감정들은 그곳에 쌓아뒀다.  그리고 남들이 좋아하는 표정으로 예의 바른말을 했고  도덕적인 행동을 했다. TV 속 연예인들의 좋은 모습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대로 따라 했다. 그래서 다들 나를 좋아했다.


그것이 내 고통의 시발점이었다.




 





기억이 결과를 만든다



아는 만큼 보이듯 받은 만큼 나눈다.


사랑을 받은 기억이 좋았던 아이는, 그 좋은 감정으로 사랑을 나눈다. 반대로 사랑에 대한 기억이 나쁜 아이는, 자신이 받은 것이 사랑인 줄을 모른다. 그저 눈에 보이고 몸에 느껴지는 그 나쁜 표현들을 숙지할 뿐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나쁜지를 모르고 자신이 무엇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돼서도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오히려 나쁜 습관만 더 가지게 된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면 이를 의심한다. 흔들리는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면 그도 불안해진다. 불편을 느낀 상대는 이내 떠나간다. 관계는 무너지고, 부정적인 경험이 또 쌓여간다.  


'봐봐, 결국 이렇게 망가지잖아.'


타인에 대한 불신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강해진다.



나는 그랬다. 어떻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지를 몰라서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의심했다. 가시 돋친 말로 타인을 밀어냈다.



상처를 받는 것은 무력감과 좌절감, 분노 그리고 반항심과 연관되어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배스밸 바르데츠키의 저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중에서








상처를 전시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계속해서 나를 잘못된 방향으로 자라게 했다.


10대, 20대 때는 그 감정들이 나를 성장시켰건만 20대 후반이 되고 서른이 되며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나를 헤치기 시작했다. 자꾸 지쳤고 삶에 의욕이 떨어졌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쓰던 일기 이후로 처음 내 이야기를 썼고, 처음으로 그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였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힘을 얻었다고,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좋았다. 들떴다. 우쭐했다.

내 속에 있는 더 많은 상처들을 꺼내 전시했다.

위로받고 칭찬받고 싶었다.

그러면서 힘을 얻었다.

행복해졌다.



그런데 어떤 순간, 또 어떤 순간은 부끄러웠다. 불쾌했다.


'나도 상처를 줬었는데'

'아, 그 사람도 나 때문에 힘들었겠다'


누군가를 쓰러뜨리며 글을 쓰는 기분이었다.

내 웃음 뒤엔 어떤 이의 눈물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 눈물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도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3년 정도 지난 일이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는 나를 싫어하던 직원이 있었다. 얼마나 나를 싫어했냐 하면, 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만들려고 하다가 잘렸을 정도다. 그는 떠나가는 순간까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욕했다.


그의 패인은 '잘못된' 내용에 있었다. 그가 조금 더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면, 내가 해고를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완벽하게 잘못된 방법으로 나를 음해했고,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힘들었다.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고, 중간중간 그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했다.


오죽하면 선배가 더 열을 낼 정도였다.



"이건 마치, 왕따를 당한 피해자에게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랑 똑같아서, 제가 더 화가 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만히 있었던 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였다.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느니, 그곳을 떠나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숨긴 사실이 있다. 나의 태도였다. 나는 그를 무시했다.

그는 내가 면접을 보러 간 날부터 나를 싫어했는데, 나는 면접을 보러 가 그를 보는 순간부터 그를 무시했다. 겉모습이나 가치관, 행동 등 무엇 하나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이 없었으니까.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티가 난 것이다.

그는 내 눈빛에서 상처를 받았다. 다만 그 상처를 해결할 방법을 잘못 택한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내가 상처를 준 일이.

삐뚤고 나약한 나의 마음은 늘 내 속에 쌓인 분노를 풀 곳을 찾았다.



나를 좋아하던 동생이 있었다. 그녀는 나라는 사람을 참 좋아했고 멋있어했다. 그런데 나는 때로 그게 싫었다. 좋은 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녀가 나를 칭찬할 때면, 이상하게 동물원 속 동물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직장을 옮기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터라 감정 제어가 힘들었는데, 그날 터져버렸다. 내 속 열등감이 무엇보다 빠르고 급하고 거칠게 그녀를 공격했다. 그녀의 행동을 꼬투리 잡고, 비난했다.


이후 우린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었고, 앞으로 오랫동안 그녀는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애정의 대가로 트라우마를 선물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녀가 좋았다.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어디 있을까 고마웠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가해자가 되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동기는 다양한데, 가장 강력한 원인은 바로 '열등감'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경쟁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결과가 좋은 사람,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사는 사람, 자신보다 더 인정받은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질투한다. 그런 열등감과 원망이 자신도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차오르면 어디로든 분출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분풀이 대상이 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배스밸 바르데츠키의 저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중에서






내 상처만 보느라, 내가 아픈 것만 느끼느라



나는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힘들어했다. 매번 그것만 쳐다봤다. 내 상처는 남들이 가진 것보다 대단히 아파 보였다. 그래서 작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미워했다. 나만큼 아프게 만들고 싶었다.


지난 몇 달간 글을 쓰며 내가 받은 상처를 되돌아보며 수치심을 느낀 날도 있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이, 못난 말들이 망막 저 안 쪽에 영화처럼 떠올랐다. 눈을 뜰 수도 감을 수도 없었다.


정말로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부족해서, 내가 아팠던 것뿐이었다.



내게 상처를 준 누군가도 나쁜 의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만큼 부족하고 아프고 흔들리니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나처럼 바보 같았을 것이다. 나처럼 상처 받기 싫었을 뿐이다.



상처는 제 짝이 있다. 던진 사람과 맞은 사람 모두에게 같은 흔적이 남는다.

내 속에 그것들도 그럴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이든, 내가 준 것이든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또 다른 이유로 힘들 것이다.








나는 상처를 입으며 아팠지만 덕분에 성장해왔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상처들에 고마워합니다.

물론 아직도 오랫동안 아플 것이기에 버겁지만, 한 가지 다행은 그 상처를 치유할 방법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으니, 나중엔 더 많이 좋아질 겁니다.

그러니 내게 던진 상처들로 미안한 마음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진 말아주세요.


그리고, 내가 던진 상처들로 힘든 당신이 나처럼 나아지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나는 우리가 상처를 껴안고도 사랑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나의 막연한 꿈이 간절한 에너지가 되어 당신에게 닿는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나만 아픈 줄 알았어요.

부디 행복하세요.





Photo by Luis Alberto Sánchez Terrone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예민하다는 말로 비난하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