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생화학에 당첨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즐거운 생화학 시스템을 갖고 태어난다. 그런 사람은 기분이 6에서 10 사이에서 움직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8에서 안정된다. 그런 사람은 매우 행복하다. 설령 그가 대도시 변두리에 살며 주식시장 붕괴로 돈을 모두 날리고, 당뇨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더라도 말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우울한 생화학 시스템을 가지고 태어난다. 기분은 3에서 7 사이로 움직이고, 5에서 안정된다. 그런 사람은 항상 우울하다. 설사 그가 잘 짜여진 공동체의 지원을 받고, 수백만 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되며, 국가대표 운동선수 같은 건강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가운데
유발 하라리는 책을 통해 생물학자들의 의견을 전했다. 생물학자들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은 생화학 체제에 큰 영향을 받는다"라고 한다. 신경이나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에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생물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인간(사피엔스)을 두 개의 분류로 구분했다. 유전자 복권에서 '즐거운 생화학'에 당첨된 사람과 '우울한 생화학'에 당첨된 사람으로. 그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우울한 생화학 당첨자다. 부모의 부로 자식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수저론'에 따르면 나는 지독한 감정 흙수저일지도 모를 일이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부의 정도가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대기업 부모 아래 태어난 다이아몬즈 수저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은수저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양은 비슷하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월급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좋아지면 당장은 좋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치가 기본값이 되며, 되려 사치를 부리지 못하는 것이 불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한부모 가정에서 가정폭력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빠의 손찌검에 온 몸이 멍들었고 할머니의 폭언과 짜증으로 마음조차 검푸르렀다. 돈이 없어 굽실거리는 것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게 유년시절, 학창 시절은 지옥과도 같은 시절이었다.
독립을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는 돈이 많고 경험이 많으며 자신감이 큰 사람들이 많았다. 또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훨씬 더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도 훨씬 많았다. 나는 더 하찮은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어느 때부터 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대단하진 않아도 좋은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했고, 수는 적지만 따뜻하고 속 깊은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부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천천히 쌓였지만 당장 먹고 자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월급날이면 좋은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한 번 잡아볼 수준은 되었다.
'내 비록 태생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지만 이제 이만하면 괜찮겠다. 혹여 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적어도 그 아이는 은수저 정도는 물 수 있겠구나.'
마음이 놓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한눈에 봐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친구를 미워한 적이 있다.
평범한 집에서 자란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은 더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랑받고 자란 사람의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내 생화학 시스템의 평균 수치는 2에서 6 사이로 움직이다가 4에서 안정되었다. 누가 내게 기분을 물으면 늘 100점 만점에 40점대로 이야기했었으니, 그 정도로 셈 치면 될 듯하다.
나도 꿈이 컸던 사람이었고, 욕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자꾸 들었다. 기분을 업시키려, 동기를 부여하려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길 몇 년. 운동과 식단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조차 하지 않으면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들었고 체력이 떨어져 온갖 질병으로 고생할 때마다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소극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한 정신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음식이나 운동이 우울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행동 처방이라고 한다. 나는 한동안 나름대로 행동치료를 해왔던 셈이었다. 물론 그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러다가 긴 여행을 떠나가고 떠나왔다. 두어 달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 스트레스, 취업 압박 등에 시달리니 버티기 힘들었고(누구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겨울에 연말이라는 특수 상황까지 맞물리며 무너져버린 것이다.
오늘까지 20여 일간 약을 먹었다. 부작용은 며칠간 지속되더니 조금씩 잦아들었고 큰 감정적 동요 없이 비교적 평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마침 어제가 상담일자였다. 주치의에게 '전보다 에너지가 넘쳐서 당황스럽다'라고 했더니 그가 조증 증세를 의심했다. 계획을 끊임없이 세우고,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며, 잠을 안 자도 피곤해하지 않는다면 조증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계획을 많이 세우는 데 그 계획에 따라 꾸준히 실천을 하게 돼요. 전에는 계속 감정이 치고 올라오니까 뭔가를 하다가도 하기가 싫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어서 집중이 잘 되고 의욕이 넘쳐요."
내 말을 듣던 그가 말했다.
"한 가지 계획을 며칠간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원래 약을 먹으면 우울증 때문에 저하되었던 뇌 기능이 다시 회복되면서 인지적 기능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져요."
그가 덧붙여 대표적인 조증 증상을 말했다. '식욕 증가'와 '성욕 증가'가 나타난다는 데, 나는 확실히 조증이 아니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약 한두 알로 돈과 사랑이 주지 못했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 나의 안정이 세로토닌과 도파민, 옥시토신에게서 온다면 그냥 이대로 평생 약을 먹는 건 어떨까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세상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언급하며 비판한다. 약물을 통해 부여받는 행복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 하는 물음이다. 물론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고, 우리에겐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모두를 느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게 너무 버거운 사람도 있지 않는가.
나는 그의 물음을 혼자 곱씹었다. 평생토록 약을 먹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하루빨리 치료를 끝내고 다시 우울한 생화학의 가능성에 노출될 것인가.
과연 나는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까, 그 판정 뒤에도 내가 지금처럼 평온한 날들을 비교적 자주 누릴 수 있을까.
나의 물음은 언제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Photo by Gonzalo Arnai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