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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r 09. 2023

창업성공실패기 혹은 창업실패성공기

프롤로그



Whom the gods wish to destroy they first call promising.


                                              - Cyril Connolly, Enemies of promise -





신은 날 망가뜨리고 싶었던 걸까, 그저 기회를 준 것뿐일까.



 




지난 3년간 이어오던 사업체를 정리했다. 월세 걱정할 필요 없는 온라인 쇼핑몰이라 제품 모두 품절 처리해두고 잠시 쉬어도 될 성싶고, 그저 열어두고 남은 재고를 저렴한 가격에 떨이 판매해도 될 성싶었지만, 매달 날아오는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명세서 때문에 급히 문을 닫았다. 물건을 팔고 매출을 낼수록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잔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날. 헛웃음이 났다. 한때는 네이버 본사에서 주목하는 소상공인이었는데, 카테고리 상단을 차지하던 파워 판매자였는데. 어느 순간 월세가 아까워 사무실을 정리하고 월급 줄 돈이 없어 직원을 내보내고, 이젠 보험료에 세금 낼 돈이 없어 폐업하는 신세라니.







2020년 1월 사업자를 냈다. 그리고 2월, 여러 준비 끝에 업로드했던 제품이 올린 지 하루 만에 팔렸다. 그 첫 판매를 시작으로 이후 2년간, 물건이 팔리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주문량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다. 밀려드는 주문에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대책 없이 일을 벌인 스스로가 한심해 눈물이 핑 돌던 때도 있었다. 내 스토어는 콘셉트가 확실했다. 덕분에 마니아층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 기세에 힘입어 네이버 본사 직원들에게 소상공인을 대표해서 코멘트를 건네기도 했고 인터뷰나 세미나에 초대받기도 했다.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운이라는 걸. 물론 내가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10여 년간 기자로, 기획자로 일하며 길러왔던 콘텐츠 제작 실력이 뒷받침된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달랑 행주 하나 팔던 스토어가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게 된 건, 운의 영역임에 틀림없다. 나는 대가를 알려주지 않던 운이 언제 떠날까 불안해하면서도 점차 익숙해져갔다. 몇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던 흐름 때문에, 내가 변했다.






사업이 급격히 성장하면 놓치는 게 너무 많아서.. 천천히 단계를 밟아 성장하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





그 무렵 내 뚫린 입에서 터져 나오던 말이다. 









2022년 위드 코로나와 동시에 오프라인 상권이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나 역시 사무실과 집을 오가던 답답하던 일상을 벗어나 좋았지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온라인 상권의 성장세가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주문량이 줄어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쉴 시간이 생겨 다행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직원들과 맛있는 음식으로 회식을 하고, 조기 퇴근을 시키며 '쉬어가려 했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상으로 회복'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몸집을 줄이고 금리가 급등하며, 영끌족의 한숨소리가 나날이 커졌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가게를 닫고, 소득이 줄었다던 이들의 푸념을 남일이라 생각했던 내게 처음으로 불경기가 체감되던 순간이 온 것이다. 


비싼 건 비싸서 잘 팔리고, 싼 건 싸서 잘 팔렸지만 애매한 제품은 외면받았다. 그땐 정말 몰랐다. 내 독특했던 제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어쩌면 내가 귀찮다고 내버려 뒀던 사이에 '애매한' 포지션에 놓이게 됐다는걸. 





성장을 망설이는 기업은 유지는커녕 한순간에 도태되고 만다. 나는 성장을 망설이는 대표였다. 그 때문에 내 직원은 일자리를 잃었고, 내 가정은 소득이 줄었으며 내 고객들은 더 이상 내 쇼핑몰을 찾지 않았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내 사업에 최선을 다했다는 건 또 아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만 하자고 창업을 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대로 살려고 했던 것뿐인데, 저절로 흥했던 사업이 저절로 망하고 말았다. 신을 원망했다. 비겁하면 좀 어때, 어차피 망했잖아. 내 탓이면 어떻고 신의 탓이면 또 어떨까 싶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모든 건 내 선택이었고 내 행동의 결과라는걸.












이 이야기는 지난 3년, 어쩌다 시작한 사업을 자연스럽게 말아먹은 내 오답노트다. 지금은 가슴 아프지만, 또 살아갈 나의 '언젠가'를 위한 실패 방지 체크리스트가 필요했다. 내 창업의 성공은 실패했으나, 창업 실패의 성공 기회는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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