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성공실패기 혹은 창업실패성공기 (1)
나는 왜 창업을 했던 걸까?
뭐라고 딱 하나를 집을 순 없지만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가장 결정적인 건 기성 체제에 대한 반감이었다고 해야 할까, 지하철을 타기 싫어서가 더 적절할까. 아침 7시, 눈 뜬 좀비가 되어 출근 준비를 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이미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한편에 자리를 잡는데, 곧 내릴 듯 보이는 사람 앞에 섰건만 당최 내리지 않는다. 환승 한 번 하지 않았으니 편히 다니는 듯하지만, 50분을 넘게 가만히 서 있다 보면 천근만근 피로가 쌓인다.
목적지인 충무로역에 내리면 이제 15분간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봄가을이면 모를까, 아침부터 30도를 육박하는 여름이나 꽁꽁 언 길을 오르는 겨울엔 체감상 더 긴 길처럼 느껴진다.
‘드르륵 탁!’
한 선배 말마따나 “70년대 미싱사에서 쓸 법한” 출퇴근 기록표에 8’55”이 찍히면 그제야 진짜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라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복지가 뛰어나거나 월급이 만족스러운 건 절대 아니었지만 크게 흠잡을 만큼 나쁜 조건도 아니었다. 오래된 개인회사가 그렇듯, 적당히 깐깐하고 고지식했지만 나름대로 정이 있고 평판도 탄탄했다. 하지만 나름 MZ 세대인 내겐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시스템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일찍 퇴근해도 집을 나선 지 12시간은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것도 꽤 짜증 나는 스케줄이었다. 일하면서 또라이 몇 안 만나냐만, 결국 신경정신과까지 뛰어갔던 나인지라, 다시 사회로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편, 당장 회사로 돌아가길 망설이는 내게 보다 직접적인 계기를 가져다준 건 남편이었다. 사업은 본래 남편의 꿈이었다. 장사를 하겠다며 휴학하고 목돈을 벌고자 꽃게잡이 배까지 탔던 사람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반년을 창업에 매달렸던 그에게 나는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창업 꼭두각시였던 듯싶다(물론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 무렵 남편은 유튜버 신사임당이 올린 ‘창업 다마꼬치’라는 영상에 거의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 꿈과 환상의 나라로 나를 인도한 것이다.
어차피 평생 직장인으로 살 수도 없는 시대 아닌가. 40살, 50살까지 회사를 다니다가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회사에서 잘리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회사를 벗어나 돈을 버는 것도 큰 경험이 될 터였다. 아울러 내가 몸담던 업계는 종이 매체를 제작하는 곳이라 미래가 더 불투명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인생 경험한다 치고 몇 달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굳혀졌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 반 사업자등록 신청을 했다. 창업의 시작이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 거라면, 그 시작은 너무도 쉽고 쉬웠다.
22만 1335명*. 내 창업 동기들이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우린 2020년 1월, 같은 운동장에 섰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와 같은 운동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나처럼 소자본 무점포로 시작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업’이 포함된 ‘도매 및 소매업’ 분야에는 창업 기업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20년에는 20% 비중을 차지하던 것이 다음 해에는 30%, 지난해에는 34%가 오로지 물건을 팔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2019년 말부터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도 모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항공, 운수업을 시작으로 서비스 기반의 산업이 휘청거렸고 연이어 휴업, 폐업 소리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취업도 어려운 상황에 퇴직자가 쏟아졌다. 다행히 그 무렵에도 나날이 성장하는 회사들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온라인 커머스 기업이다. 특히 쿠팡, 마켓 컬리,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는 다달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또 파고들었다. 그러다 그 성장이 주춤하자 바로 점유율 싸움을 이어갔다. 더 많은 이용자들(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선택해 주길 바라며, 혹여나 뒤처질까 앞다투어 보다 좋은 서비스, 보다 편한 서비스를 홍보했다.
한 달에 1천만 원 번 이야기, 한 달에 1억 번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주식, 부동산 급등기를 놓친 이들이 ‘사업’에 빠져들었다. 그 곁에는 ‘취업률’ 높이기에 실패한 정부의 ‘창업 신화’ 대책도 한몫했을지 모를 일이다.
*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자료, 창업기업동향, 2020.01
<당신은 사업가입니까>의 저자 캐럴 로스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성급한 결정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고 만다. 누구나 사업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가는 매우 힘든 직업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사업이 어려운 일인 줄 알지 못했다. 창업과 사업이 다르다는 걸 몰랐다. 그저 물건을 구해오고 사진을 찍고, 상세페이지를 작성해서 올리면 되는 줄 알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제품을 포장해 택배로 보내면 끝인 줄 알았다. 창업은 정말이지 너무도 쉬웠다.
사업을 잘 이끌어간다는 것이 대기업 임원이 될 만큼 고생해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면, 돈을 번다고 그 돈을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성장하지 않은 기업은 금세 도태하고 만다는 걸 알았다면, 직원 한 명 고용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줄 알았다면, 대표라는 위치가 얼마나 외로운 건지 알았다면, 누가 살짝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차피 부질없지만. 막연히 그때의 내게 좋은 선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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