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성공실패기 혹은 창업실패성공기 (2)
어쩌면 '일단 시작하라'는 말이 멋져 보일 수도 있다.
특히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
나 역시 당장 시작하기만 해도
저 사람처럼 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건
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95P, 캘리 최, 다산북스
JUST DO IT. 결국 실행력이 답일까.
성공과 실패를 판 가르는 한끝.
실행이 삶을 바꾸는 걸까.
그래, 그런 것 같다.
아니, 그런 게 맞다.
특히 요즘처럼 빨리빨리 변하는 사회에선,
준비를 오래 하다간 선수를 빼앗기기 쉽다.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옳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해보자.
해보고 잘 안되면 정리하면 되지,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나.
지금도 충분히 늦었어.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거야.
제로웨이스트. 내 사업 콘셉트였다. 코로나로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산림파괴, 환경오염, 인류의 건강. 한 데 묶기 딱 좋았다. 대충 생각해도 금세 사라질 분위기가 아니다. 2030세대에게 환경 오염은 우리의 이야기고, 3040 부모들에겐 아이들의 현실이다. 제로웨이스트 쇼핑몰. 멋있다.
제품 선정부터 포장, 배달까지 나름 친환경 서비스를 구축하려 잔머리를 굴렸다. OPP 봉지 대신 종이 포장지, 일반 택배 봉투 대신 썩는 택배 봉투를 쓰는 것만으로도 고객들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금은 아주 당연한 종이 포장재인데, 3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주문량과 함께 내 어깨도 올라갔다. 그래, 실행이 답이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웠다. 성장세에 절로 동기가 부여됐다. 망설이지 않고 시작하길 잘했구나. 빠른 실행력과 임기응변에 강한 잔머리. 나라는 사람은 사업에 최적화된 인재로구나. 절로 흥이 났다.
언젠가부터 창업자들 사이에서
실행력과 추진력이 사업가의 첫 번째 덕목인 것처럼 은연중에 퍼져가는 것 같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건 눈을 감고
시속 200킬로미터로 차량을 모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돈도 벌고 행복하고 싶다면,
반드시 철저한 조사와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98P, 캘리 최, 다산북스
내가 모든 차의 속도는 몇 킬로미터쯤 되었을까. 제법 빨랐을 텐데. 한번 달리기 시작하니 속도를 줄이는 게 쉽지 않고 멈추기는 더 어렵다.
스토어의 인기가 높아지자 제품에 대한 문의도 늘었다. 내 제품을 찾는 고객들은 나보다 해당 제품에 대한 지식이 더 많았다. 원단은 어느 직물사에서 제작됐는지. 원단을 짜는 실은 어디에서 수입되었는지. 코마사인지 카드사인지. 일부러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바로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인터넷을 뒤지고 원단상에 수십 번 전화를 걸며 겨우 대응해가던 중, 과속 주행 중인 차의 바퀴가 터지듯 문제가 터져 나왔다.
대표 제품의 퀄리티가 현격히 낮아진 것. 사실 전에도 몇 번 이상하다 싶은 상황이 있었는데 무심코 지나갔었다.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일을 더 키운 것이다. 내가 주문한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가 공급되고 있던 것이다.
어리숙한 초보 사장의 등을 제대로 친 도매상. 상황을 설명하고 이유를 물으니, 답은 간단했다. 마진이 별로 안 남아 그랬단다. 기가 차고 화가 난 내 목소리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처음에 이야기를 주고받은 금액은 너무 낮았단다. 그때는 몇 번 팔고 말 줄 알아서 그냥 그렇게 줬는데, 예상보다 제법 잘 파는 상황에 그렇게 됐단다.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단가가 안 맞으면 이야기를 했어야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안하무인한 그의 태도에 기겁했지만 남 탓을 한들 나도 잘한 건 없었다. 결국 내 책임이었다. 조금 더 공부하고 접근했더라면, 거래처를 알아볼 때도 며칠 더 발품을 팔아볼걸. 당장 일을 저지르기 급급했던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런 우여곡절을 이해해 준 고객들 덕분에 이 사건은 이리 마무리되었다. 문제가 되는 제품은 모두 무상으로 교환, 혹은 추가 증정했다. 당장 신뢰 회복이 급했기에 그리 진행했지만, 경제적 심리적 손실이 제법 컸다.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고객들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대가를 체감하고 한동안 꽤 멍했다. 반면교사 삼기로 했지만 단번에 털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엇비슷한 일도 없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운 덕분이지. 하지만 그때부터 사업의 무게가 느껴지고, 불안이 생겨났다. 과연 나는 내 사업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흉내만 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무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다.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돈을 버는 것으로는 사업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사업가들이 가지고 있는 방향, 믿는 가치는 내게 없었다. 제로웨이스트의 핵심은 거추장한 포장을 걷어내는 건데, 나는 포장지만 가득하고 알맹이가 없는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눈 감고 달리는 내게 언제든 더 큰 위험이 달려올 것만 같아, 내 불안은 나날이 커져갔다.
* 같은 이야기를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고 있습니다. 혹시나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