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실패성공기 (3)
10시, 11시 가끔은 점심시간 쯔음 출근해 서너 시간 후 퇴근하는 대표를 보며 한숨을 내쉰 적 있다. "부럽다"는 소린 100번, 아니 1000번도 넘게 반복했고. 퀭한 낯빛의 직원들 뒤에 서서 시답잖은 농담 한두 마디 건네는 사장에게 조소를 띈 적은 셀 수나 있을까.
9시에 출근하면 12시 점심시간만, 1시부턴 6시 퇴근시간만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일을 더한다고 돈을 더 주는 대기업이 아니니까, 한 시라도 빨리 문을 나서는 게 이득이라 여겼다. 6시 10분, 20분. 퇴근시간이 한참이나 지났건만 "칼퇴?"라며 눈치를 주는 옆 팀 상사에게 썩소를 날리고 미친 척 퇴근기록을 남긴다. 똑같은 공기였는데도 10분전과 너무도 다르게 상쾌하다. 비로소 내 짧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20대처럼 약속이 잦거나 집에 돌아와 챙길 식구가 있던 것도 아니지만, 어학원이나 헬스장에 가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하는 것도 없이 1만원에 4캔인 캔맥주나 들이키겠지만. 회사를 벗어난 것만으로 행복했다.
뭐니뭐니해도 직장인 최고의 복지는 워라밸이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돈 버는 게 롱런의 비결. 얇고 긴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워라밸 있는 사회초년생은 있겠지만, 워라밸 있는 초보사장은 없다. 아니,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장은 평생 '초보' 딱지를 뗄 수 없다. 성공하고 싶다면, 남의 눈치 안보고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명함 한 장에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 만드는 명성을 가지고 싶다면, 워라밸은 머리속에서 지워야 한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365일, 하루 24시간 '일'만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일만 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그렇게 버텨냈다. 성공의 비결? 대박신화? 스스로를 갈아넣을 수 있는 마음가짐과 행동력, 그리고 체력. 그런 건 아주 기본이라서 이슈가 되지 않는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내 사업체가 더 크게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만큼 스스로를 일에 갈아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늘 바쁘게 일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없는 일도 사서 만드는 사람은 논외.
첫출근한 직원에게 업무가 쏟아지지 않듯, 첫오픈한 쇼핑몰에 일이 쏟아지진 않는다. 보통 그때 사장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대부분은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 내 제품을 사주길, 택배가 빨리 배송되길, 고객이 구매확정을 해주길 혹은 저절로 구매가 확정되길 그리고 돈이 입금되길.
집에서 시작했으니 월세 걱정 없고 일하는 사람도 사장이자 직원인 나 한 사람. 월급 걱정도 크게 없다. 팔리면 행복하지만 안 팔린다고 크게 슬퍼할 필요없다. 내겐 '내일'이 있으니까. 그렇게 급한 것도 바쁜 것도 없던 일에 치이기 시작한 건 1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장사가 잘 되서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했다. 혼자 일하려니 끼니 챙길 시간이 없어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려는데, 그것부터가 일이다. 알바천국, 알바몬에 회원가입을 하고 생전 처음보는 양식을 채워나간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채용할 수는 없는 일. 몇 명을 정해 면접을 보느라, 원래 하던 일을 뒤로 미룬다.
마음에 드는 사람과 일하고 제 날짜에 월급만 이체해주면 되는 게 아니었다. 노동자의 권리와 고용자의 인건비 처리를 위해 문서를 작성하고 다달이 세금도 계산해 납부해야 한다. 일이 늘어 아르바이트생이 정규직 직원이 되었다. 그만큼 사장이 챙겨야 할 서류들도 늘어난다. 혼자 일했을 땐 아무렇게 하던 거지만 직원과 일을 나누기 위해서 없던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직원 실수로 물건이 잘못 배송되었다면, 그 일을 수습하는 것도 사장의 몫이다.
직원이 생기면 돈이 더 많이 든다. 당장 직원에게 지급해야 할 월급 외에도 함께 일해야 할 사무실의 월세, 아주 간단한 음료나 간식부터 칼, 가위 등 사무용품까지 하나씩 더 사야 한다. 4대보험비와 퇴직금도 모아두어야 한다. 고정비가 늘어나니 매출이 줄어들 때마다 한숨이 늘어난다.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야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제품 다각화와 채널 다각화. 하루에 한 가지씩 제품을 늘리고 채널을 늘리면, 그만큼 신경써야 할 요소들도 늘어나는 셈이다. 고객이 늘어나며 컴플레인의 종류와 형태도 다양해진다. 하루 종일 고객의 소리를 듣느라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날도 이어진다. 정말이지 그런 날은 멘탈이 탈탈 털려, 다른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왜 직원은 매번 똑같은 부분에서 실수를 하고, 물건 재고는 왜 매번 차이가 나는 거며, 발주한 제품은 왜 때에 맞춰 오질 않고, 그 놈의 세금은 왜 한 달 건너 계속 신고하라는 건지. 그중에서도 가장 미치겠는 건, 하루 종일 바쁘게 일 했는데 도대체 내가 왜 바쁜지를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일 조금, 저 일 조금. 잦은 스위칭에 뇌는 지치는데 정작 할 일은 그대로라는 게 환장할 노릇이다.
어젯밤, 남편과 근처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라고 말했다. 물론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지만.
6시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8시간 일하지 않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8시간을 일하면 그땐 10시간, 12시간 일하지 않는 스스로를 비난했다. 주 5일 내내 딴청피우지 않고 집중했지만 주말에 쉬는 건 사치라 느껴졌다. 정도가 없는 일정에 치이다보니 복용하던 우울증 약의 농도는 점점 진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결국 내게 남은 건 몸살과 술살이었다.
하루 4시간만 일하고 돈 버는 사람. 출근하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가는 회사. 사업이 그렇게 성공할 것만 같은가? 글쎄. 내 사업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더 능력있고 성실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내 최선은 성공에 미치지 못했다. 지치더라도 버텨내는 사람, 이 일을 하고 저 일을 하다가 그 일도 해내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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