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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ug 21. 2019

'여러' 아버지를 본 날

20190720

엄마의 일기들을 휴대폰 창에 입력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얄미운 정도와 그 행동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감정 상태에 따라 일기 속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이름이 홍길동이라면, 애틋하지도 다툼이 있지도 않는 그저 그런 날엔 그냥 홍길동 씨이다. 이보다 조금 더 아버지에 대해 애틋함이 커지면 길동 씨, 좀 더 다정해지면 '아빠'가 된다. 우리 앞에서는 한 번도 이런 표현을 쓰신 적이 없지만, 일기 속에서 아버지는 큰언니 이름이 앞에 붙은 아무개 아빠도 아니고 그냥 아빠였다. 자신의 남편을 ‘우리 아빠’라고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우리 엄마가 그러실 줄이야^^

반대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실 때는 길'똥' 씨 혹은 성까지 그대로 붙여 관공서에서 부를 때처럼 홍길'똥' 씨가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름이 살아있기라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커졌을 땐 우리 아버지를' 하숙생'이라고 부르신다. 같이 살지만 가족은 아닌 존재이다.

하숙생보다 더 강도 높은 표현이 한 가지 더 있긴 한데, 아버지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비공개로 남겨둔다.^^


가장 감정상태가 별로인 호칭 순으로 정리해 보면,

하숙생~ 홍길똥씨~길똥씨~ 홍길동 씨~ 길동 씨~ 아빠 순이다. 아버지는 모르시는 아버지의 숨겨진 이름들 속에서 엄마의 하루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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