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일기 스물넷
2018. 1. 17 수
두어 달 전부터 ‘엮음 수심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반에 배운 수심가 1,2절보다 가사가 길고 장단도 빠르다. 수심가와 엮음 수심가 모두 내가 배운 세 가지 외에 더 많은 버전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엮음 수심가는 ‘아아하~ ’하는 후렴구 뒤로 아래의 가사가 이어지는 버전이다.
「해는 지고 저문 날인데 옥창앵도가 다 붉었구나
시호시호(時好時好)는 부재래(不在來)라 원정부지(怨情不知)가 이 아니란 말가 ….」
수심가 1절은 노래 속의 슬픔이 내게 스며드는 듯하여 충격적이었는데, 이 엮음 수심가는 가사 그 자체로 한 장의 그림 같다.
선생님이 ‘해는 지고 저문 날인데 옥창앵도가 다 붉었구나’를 불러주시는데 깜짝 놀랐다. 카톡으로 보내주신 가사만 봤을 때는 잔잔한 풍경화였는데, 선율과 함께 들었을 때는 ‘뭉크’의 ‘절규’였다. 이 노래가 가진 에너지를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그래도 배우기를 두어 달, 듣고 부르기가 조금 쌓이다 보니 어떤 이미지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래전 들었던 노래가 불쑥 생각나기도, 위의 ‘절규’ 같은 그림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어떤 것은 잊고 있던 기억까지 꺼내 주었다.
오래전 나의 언니가 따라 부르던 - 학교와 직장 때문에 계속 떨어져 살았는데,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거의 못 보던 언니여서 이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 가수 임희숙의 ‘저녁별 하나’ 중 ‘힘없이 돌아오는 길 위엔 내 맘처럼 쓸쓸한 저녁별 하나’라는 가사가 특히 그랬다.
그때의 언니는 20대 초반이었고, 나는 아직 청소년이었는데 언니가 다시 집을 떠난 초저녁 무렵이면 언니가 남겨둔 이 노래의 끝자락을 붙잡고 언니처럼 그 노래를 불러보곤 했다.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 20대의 언니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쓸쓸함을 이 노래에 담았을까? 까칠해서 좀처럼 친해지기 힘든 언니였는데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언니를 그리워했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의 목소리와 언니가 떠난 다음에 혼자 흥얼거리는 어린 나의 모습은 기억이 난다.
담담하게 말하듯이 부르는데도 한 줄 한 줄 콕콕 박히던 임희숙의 ‘저녁 별 하나’를, 야리야리한 목소리의 울 언니는 ‘님을 위한 행진곡’에 어울릴 것 같은 창법으로, 선언하듯 또박또박 힘을 주어 불렀는데 묘하게 슬픈 느낌을 주었다.
네 번째 일기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선생님은 ‘상대방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의 분위기나 이미지 등을 상상하게 된다. 당장 그렇게 하기 힘들더라도 어떤 분위기로 불러야 노래가 갖고 있는 감정들을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그것을 염두에 두고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엮음 수심가를 부르다가 내가,
“‘옥창앵도가 다 붉었구나’라는 가사를 들으면 가슴이 싸~해져요.”
지금 그런 작업을 내가 하고 있어서 이런 느낌이 훅 올라오고, 잊고 있던 ‘저녁 별 하나’가 떠오른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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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에 다 얘기하지 못한 이 노래에 대한 나의 그림은 아래와 같다.
「계절은 아직 덥지는 않은 초여름 저녁, 하늘에는 아직 붉은 기운이 살짝 남아있고, 골목에는 조금씩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주황색과 회색이 섞인 담장 위로 조그마한 창문이 하나 나 있고, 방안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잠시 후, 한 여자 혹은 남자가 창문을 반쯤 열고 고개를 내밀어 골목 끄트머리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리고는 창 아래 자라고 있는 붉은 앵도나무를 내려다본다. 앵도가 다 익었는데, 앵도‘도’ 다 익었는데, 같이 먹던, 같이 먹고 싶은, 혹은 같이 앵도를 딴 기억이 있는, 앵도가 익을 무렵 처음 만난, 창 아래 앵도나무처럼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시간들을 함께 한 … 등등의 그 누군가(가족, 배우자, 친구 등 그리운 사람 혹은 자기만의 무엇)는 여기 없고, 오지 않고, 언제 올지도 몰라서, 아예 올 수 없는 사람이라서 창 안쪽의 사람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창문이 닫힌 다음에도, 불이 다시 꺼진 다음에도, 한밤이 되어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평범한 그 시간들이 좋은 때(時好時好) 였음을, 그 시간들이 멀어져 버린 지금에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