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내가 술을 망친 이유

노래 일기 스물여섯

by 솔초

2018. 2. 2 금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가 있다.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처음 배운 이래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구절은 기억이 난다.

그때의 국어수업은 ‘공감각적 이미지’ 라거나, 사용된 이미지는 ‘후각과 시각’이라거나, 시인이 ‘청록파’의 한 사람이라거나 하는 시험을 위한 정보들로 가득했다. 다른 시도 배워야 하니 이 시에만 머무를 수 없었지만, 그 시를 읽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그네가 걷고 있는 그 길에 나도 서 있는 것 같았다. 교과서에 코를 박으면 술 익는 냄새가 퍼져 나올 것 같았고, ‘타는 저녁놀’이라는 말에는 이유 없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직 술을 마셔보지 않았던 나이라 술 익는 냄새는 어떨까도 궁금했고, 나그네가 가던 길을 계속 갈지, 아니면 타는 저녁놀에 반하거나 술 익는 냄새에 취해서 오늘 밤 이 마을에서 머무르는지, 왜 이 시는 2연이 없어서 나를 궁금하게 하는지, 모든 게 아쉬웠다. 내가 생각하는 술 익는 마을의 풍경을 구석에 연필로 그려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3년 전, 전통주 빚기에 도전함으로써 교과서에 코를 박으며 술 익는 냄새를 맡아보고 싶어 했던 내게 진짜 술 익는 냄새를 맡아볼 기회가 찾아왔다. 매실주, 포도주와 같은 과실주는 담가본 적 있지만, 전통주는 처음이었다. 열아홉 번째 일기에도 쓴 ‘김치, 간장, 고추장, 된장’의 연장선상이자 끝내 맡아보지 못했던 ‘술 익는 냄새’에 대한 확인이기도 했다.


서울시에서 하는 ‘전통주 빚기’ 강좌를 신청을 하고 보니, 우리 동네에 있는 술 할머니(전통주 명인이신데 이 말이 친근해서 이렇게 쓴다) 댁이 교육장이었다.

집 안에 따로 강의실이 있지는 않았고, 마루 한가운데에 필요한 재료들이 담긴 커다란 그릇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고, 나와 같은 수강생들이 그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5~6명씩 나뉘어 조별로 수업을 했다. ‘술 할머니’가 설명을 하시고, 이 분의 며느리와 딸들, 세 명이 조교처럼 보조설명을 해주고, 실습을 도와주었다.


술항아리까지 사놓고 할머니가 빚은 술처럼 맛있는 술을 기대하며 초집중하는데, 강의 내용이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내가 이해력이 좀 떨어지나? 사투리도,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분명 우리말로 이야기하시고, 알아듣기 쉽도록 짧게, 그것도 구어체로 말씀하셨는데, 나처럼 우왕좌왕하는 수강생은 여럿 있었다. 다행히 이들과 상호토론을 거듭해가며 겨우 의미를 짐작해 보기도 했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글자로만 남은 부분도 있었다. 한국말이 이렇게 낯설게 들리긴 처음이었다. 검색창에서 비슷한 레시피를 찾아 보완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술 할머니의 스토리를 온전히 내 술에 담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설레는 맘으로 술 담그기를 시작했다. 써놓은 대로, 들은 대로, 실습한 대로, 맛은 다를 지라도 술맛은 나겠지 기대하면서.

그 과정 중에는 담요로 싸놓은 누룩과 쌀, 엿기름 등이 섞인 반죽덩어리에 ‘바람을 쏘여 주라’는 설명이 있었다. 나는 과감하게 담요를 치우고, 반죽 위에 덮어놓은 얇은 천을 걷어, 거실 창을 활짝 열고는 환기시키듯 반죽에게 바람을 쏘여주었다. 그리고 술이 되기(아마 3주였던 듯)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보았다. 항아리 바닥에 맑은 액체가 고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맛을 보니 이건 술이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막걸리에 물 섞은 듯한 맛이 났다. 술 할머니가 빚은 그 술맛까지 기대하진 않았지만, 서툴러서 나는 부족한 맛이 아니라, 뭔가 잘못되어 술이 되지 못한 맛이었다. 며칠 뒤에 또 며칠 뒤에 맛을 보아도 변하지 않은 맛!


아무래도 바람을 쏘인 게 맘에 걸려서 할머니께 전화로 여쭤보았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쏘였다 ‘는 말에 한참을 웃으셨는데, 이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술을 담가볼 마음조차 안 생겨서 메모도 해 두질 않아 해 주셨던 얘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이후 나는 장인(匠人)의 언어에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같은 단어여도 일상의 언어와는 다른 무엇이 있구나, 오랜 시간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마음에, 몸에 와 닿을 수 없는 말, 그렇지 않다면 그냥 말일뿐인 말.


오늘은 수심가, 초한가, 영변가, 경기민요의 청춘가와 노랫가락까지 물 흐르듯 수업을 했다. 막힘없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고, 내게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전보다 좀 더 잘 알아듣게 되었다는 뜻이다.


“소리가 여기(목에 손을 대시면서) 쯤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런 말도 알아듣는다. 아니, 알아듣는다기보다는 선생님 소리를 들리는 대로 흉내 내보는데, 전보다는 비슷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자랑 말어라 아아아 아아아아아”

앞의 ‘아아아’는 부점(附點)이 있고 뒤의 ‘아아아아’는 네 글자 모두 같은 박이다.

이젠 박자가 어떤지 설명해주기 전에 ‘듣고 짐작하는 능력’이 내게 조금 생겼다.


“전보다 확실히 빨리빨리 받아들이시네요.”

“‘선생님의 언어’가 조금씩 들리는 것 같아요. 블로그 글 쓰면서 반복해서 듣는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그때는 모르던 걸 늦게 알기도 하고,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하는 게 생기고….

“귀가 열리는 거예요. 알아듣기도 빨리 알아듣고, 따라 하기도 빨리 따라 하세요.”


내가 왜 술 할머니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 술을 망치고도 3년이 지난 지금 알 것 같다. 50년을 빚어온 명인의 술을, 술 할머니의 스토리와 고유의 경험을 정제된 언어로 설명하는데, 처음 만난 그 날 겨우 2시간 듣고 이해하기는 힘든 것이다. 조교가 있고 최대한 대중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해도 나의 경우, 그날은 술빚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날이었지 ‘술 익는 냄새를 맡을 단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우리 동네에는 술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할머니께 사정해서 빼앗다시피 사 온 술 항아리는 에어컨 실외기 공간 한쪽에 짐짝처럼 놓여있다. 텅 빈 채로… 다시 술을 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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