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일기 스물여덟
2018. 2. 23금
설 연휴가 끝났는데도 일상의 ‘나’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벌써 1주일이나 지났는데…. 집안을 가득 채우던 기름 냄새, 수없이 차리고 치운 밥상들,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서 풀풀 날리던 먼지들이 내 몸 어딘가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다.
내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가족관계 내에서 배정된 역할을 수행하느라 노래는 구석자리로 내몰린 채 지냈다. 2박 3일,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완벽하게 ‘나아닌 나’로 지내다 보니 다시 ‘나’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올해는 며느리 역할은 쉬고 딸 노릇만 하겠어요’라든가 ‘질부 역할은 영구 사퇴합니다. ‘나’ 노릇 할 시간도 부족하거든요,라고 아직, 말하지 못했다. 관습적으로 명절을 맞고 보내면서 한 번도 더 나은 시간을 위한 토론, 아니 대화도 없이 긴 시간 반복해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나’들은 명절 동안 어디에 있는 거지? 더 이상 생각으로만 갖고 있기 힘든 묵은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난 명절 2박 3일 동안 내가 소비한 에너지의 총량을 100으로 본다면, 며느리 노릇하느라 50(다른 역할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30 정도가 적당하다), 1년에 두 번 보는 집안 어른들에게 질부 노릇 하느라 30(작은엄마, 제수씨 노릇과 같은 비중으로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딸 노릇에 겨우 10(명절 동안의 나는 내 부모에게 TV 드라마 ‘미워도 사랑해’ 만도 못하다), 작은엄마나 제수씨 역할에 각각 5(가장 바람직한 분량이다), 정작 ‘나’ 노릇(나머지 역할들로 포화상태라 몇 년째 대기 중이다)은 제로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노래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고, 나의 생각 속에서만 겨우 살아남았다. 막상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러 개의 ‘나’ 중에 ‘명절의 조력자인 나’만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공평하게 나눠 쓴 2박 3일은 내 몸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서 어떤 부분은 회복이 되었고, 어떤 부분은 흉터처럼 남았다.
녹음된 내용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내가 말이 많네 ㅎㅎ~’ 하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1시간 분량 중 어느 부분을 ‘공개수업’에 올리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을 찍고 싶어 비 오는 저녁 달려 나가기도 하고, 글을 올리기 직전까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틀린 글자를 찾아내고, 글을 올린 다음에도 다시 글을 다듬고 사진을 바꾸기도 했던 27번의 행복한 시간들이 내 것이 아닌 듯 멀리 가 있다.
수심가, 초한가가 끝나고,
“노랫가락 해 보세요~”
“저, 오늘은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청춘가는 전에도 많이 해 봤으니까…. "
“어떡하지, 저, 이것도 안 될 것 같아요.”
“노자(영변가의 첫 구절)는.... 하셔야죠?”
“…아~~~~! 네, 할게요.”
선생님께 ‘못 하겠어요’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네 번째 일기에서 선생님은 “힘들어서 노래를 못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 노래를 찾는 날이 올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적받으면서, 허둥대면서, 지난주보다 더 안 되는 걸 느끼면서 꾸역꾸역 노래를 해 보는 것! 그것이 지금으로선 ‘노래하는 나’로 돌아가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