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일기 스물셋
2017. 12. 30 토
스물두 번째 일기를 읽은 분이라면 17일 대회의 결과가 궁금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선생님 외에 내가 대회에 나간 사실을 기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얘기하려고 한다. 앞으로 노래를 배우면서 더 많은 대회에 나가게 될 텐데, 그러다 보면 서도민요를 처음 부른 이 대회의 이름도, 나의 온갖 실수도, 여기서 얻은 처절한 결과물도 가물가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회의 이름은 ‘제15회 대한민국 여성 전통예술 경연대회’이고, 2017년 12월 17일(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늦게까지 상명대학교(서울캠퍼스) 대신홀에서 진행되었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로비에는 쪽머리를 한 사람들이 가득했고, 이미 복장을 갖춘 채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메인홀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들도 많았다. 혼자서 한복이 든 빨간 트렁크를 끌고 어슬렁거리면서 언제 접수를 시작하는지, 누가 스태프인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도 고프고 긴장도 되고 시작도 안 했는데 언제 끝날까 생각도 들고 말 나눌 사람도 없고,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지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분야(기악, 무용, 판소리, 민요, 연기) 별로, 부문(학생, 신인, 일반) 별로 차례가 복잡해서 내 순서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내 순서 3시간 전부터 한복을 입고 기다리게 되었고, 내 앞의 민요 학생부 순서가 끝나갈 즈음에는 불안해서 대회장 근처를 뜨지도 못했다. 진행 스태프 중 한 명이 “세 번 불렀는데 대답 안 하면 기권처리합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내 번호는 4번이다. 내 앞의 3번과 5,6번은 같이 민요를 배우는 분들인지 서로 옷매무새도 봐주고, 같이 사진도 찍고, 혼자인 나보다 여유 있어 보였다. 나는 대회 직전에 도착한 친구가 한복에 겉옷을 겹쳐 입은 채로 찍어준 사진이 전부인데, 아무래도 다음부턴 복장을 갖춘 사진을 남겨야 할 것 같다. 가능하면 머리, 얼굴 화장, 전신 세 가지로. 그러면 보완할 점이나 잘 된 점을 다음 대회에 반영할 수 있으니까.
민요는 메인 홀이 아닌 교실 두 개 크기의 작은 홀에서 진행되었다. 민요 신인부(학생과 전공자가 아닌 나 같은 아마추어) 참가자는 총 10명이다. 스태프 한 명이 출석을 부르더니 한꺼번에 들어오라고 했다. 아마도 한 명씩 입·퇴장하느라 소비하는 시간과 들락날락할 때 나는 소음을 줄이고자 그런 것 같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땡 치는 분이 앉아 있고, 신발을 벗고 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서 방석에 앉아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다. 그 바로 왼쪽엔 고수가, 정면엔 5명의 심사위원이 앉아있다. 9명은 홀 맨 뒤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렸고, 1번부터 노래를 시작했다.
초한가 가사를 되새기고 있는데 1번이 부르는 노랫가락 가사가 자꾸만 파고 들어온다. 마이크도 없는데 소리가 얼마나 큰지 내 머릿속의 초한가 가사를 다 파내는 것만 같았다. 그냥 편안하게 할 걸, 끝까지 가사 한번 되짚어보겠다고 하던 게 끝까지 가보기도 전에 내 순서가 되었다.
몇 줄 부르지도 않았는데 맨 가운데 앉은 심사위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옆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뭐지? 가사는 안 틀린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표정이 심각한 거지?’ 하지만 나는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호흡이 달려서 충분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입안에 자꾸 침이 고이는데 배운 대로 박자를 빨리 끊고 침을 삼키는 것을 하지 못해서 숨이 ‘꼴깍’ 넘어가고 말았다. 살짝이긴 했지만 음정 틀린 것보다 더 불길했다. 눈치챘으려나? 챘겠지?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겨우 마쳤고, 다행히 평범한 땡을 받고 내 순서는 끝이 났다.
10명이 다 부른 뒤 한꺼번에 퇴장을 했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친구가,
“너 소리 작아.”(무심하게)
“아예 안 들려?”(걱정스러운 마음에)
“들리긴 들리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좀 작아. 심사위원 앞에서 ‘피를 토하듯이’ 불렀어야지~” (선생님처럼 말한다)
“그럼 나 상 못 타겠네?”(얘가 심사위원도 아니건만)
“응, 못 타.”(확신에 찬 어조로)
김밥집 하는 친구가 싸온 김밥을 먹으면서 그 친구에게 ‘야~ 네 김밥 별로다’라고 얘기하는, 빈말 절대 못하는 친구이다.
그래도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30여분 동안 작은 상이라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 보았다. 나의 귀는 아직 다 트이지 않아서 확연하게 잘하는 사람의 노래는 구분이 조금 되었지만, 애매하게 잘하는 분들을 나와 견주어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차마 꼴등은 상상해보지 않았고, 내 뒤에 두세 명은 더 있겠지 생각했다. ‘꼴깍’까지 했으면서….
친구가 5분에 한 번씩 나가서 로비 벽에 심사결과가 붙었는지를 확인하고 왔다. 무용, 기악, 판소리, 연기 등 다른 분야의 신인부는 다 결과가 나왔는데 민요가 늦어지고 있었다. 옷도 불편하고 예감도 안 좋고 빨리 옷을 갈아입고 싶었지만 1%의 확률, 내가 가장 작은 상이라도 받는 이변이 생길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친구가 다시 나갔다 왔다.
“… 옷 갈아입어. 가자!”
내가 나간 민요 신인부는 총 12명이 신청을 했고, 2명이 기권을 했으며, 노래는 10명이 불렀다. 10등은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저기 저분, 땡 좀 쳐 주세요.” 해서 거의 강제로 종료되었다.(‘노래를 충분히 들었으니 그만해도 좋습니다.’의 평범한 땡과는 다른 땡으로 사료됨)
나는? 땡 받은 사람의 바로 앞인 9등이다. 적어도 내 앞의 8명은 큰 실수 없이 편안하게 노래를 하신 분들이고, 맨 앞의 4등까지는 상도 받았다. 나는 숨을 ‘꼴깍’ 삼켜서 소리를 먹어 버렸고, 심사위원에겐 호흡이 불안정해서 노래하다 실려 갈 것 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내 기억엔 안 틀린 것으로 되어있지만 한 번쯤 틀린 가사를 굳이 땡을 치지 않고 살려두었으려나 짐작도 해 본다.
사실상 꼴등이다. 치명적인 결과이다. 좀 창피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기분은 별로였다. 그렇다고 4명 안에 들 만큼 잘한 것도 아니기에 인정. 꼴깍은 했지만 ‘저기 저분, 땡 좀 해 주세요’ 소리는 안 들었으니 그나마 다행. 선생님은 ‘공력을 더 키우라는 응원으로 생각하라’고 위로해 주시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 이 대회에 다시 나가서 4등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