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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비튬 Jun 23. 2020

어쩌다 소개팅

대학원생에게 소개팅이란...

대학원생에게 소개팅이란…


대한민국에 실험실 생활을 하는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연애가 얼마나 힘든 지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물론, 많이들 한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연애를 하는 사람도 

결혼을 하는 사람도 많다. 

나만 못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연애라는 게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감정 소모도 심하고, 

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같은 실험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더욱 싫고.. 

연애가 하고 싶지만 안 하고 싶은 상태랄까??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이랑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아가기도 귀찮고..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백문백답을 

서로 교환하고 숙지한 다음에 만나고 싶은??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나이 30을 넘어 중반으로 영차영차 매일 달려가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연애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모습보다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 안된다라고 세상에 이야기를 하자라는 

이상한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게 내 나이 30살. 그리고 석 박통합 3년 차.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당연히 소개팅. 

그리고 나는 횟수 제한을 걸었다. 

한국인은 숫자 3을 좋아한다고 “알쓸신잡”에서 그랬으니까,

일 년에 딱 3번 소개팅을 해야겠다.

난 이렇게나 연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 나만의 룰을 잘 지켜왔다. 

그동안 만난 소개팅 남들은 스펙이 나름 다 빵빵했다. 

좋은 학교 나온 사람, 좋은 회사 다니는 사람, 

좋은 차 가지고 있는 사람 등등 

그렇지만 나는 돈벌이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비루한 대학원생….



결국 나의 자격지심 때문인지, 내 학력 때문인지, 

내 돈벌이 때문인지, 내 나이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 인연이 아니어서였는지, 

소개팅으로 한 번도 사람을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은 없었다.

소개팅으로 만나는 건 

진짜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실험실에만 맨날 콕 박혀 있는데, 

다른 곳에서 누군갈 만날 기회가 있냐 말이다…






그리고 32세. 석 박통합 5년 차. 

올 해도 나의 소개팅 횟수를 다 채웠다. 3번 땅땅! 

32세는 바쁜 한 해였다. 

졸업도 준비하면서, 밤새는 실험도 많았고, 

후배 오빠도 가르쳐야 했고, 모교로 강의도 나갔다. 

특히나, 내 모교는 충청도라서 하루 강의 다녀오면 

하루가 날아가는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어떻게 20대 때는 여길 다닌 거지?

 물론 통학한 적은 없지만…



아무튼, 

이 바쁜 32세의 마지막이 코 앞으로 다가와 쌩하고 

지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강의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고, 

밤새는 바쁜 실험도 끝났고,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올 해도 끝난다!! 

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소개팅할래요?”




평소 같으면, 거절했다. 

정말 바쁜 한 해였고, 

올해 소개팅 횟수는 다 채웠으니까. 

근데, 막 12주짜리 실험을 끝내서일까? 

아님 뭐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좋아요”




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바쁜 일상…

실험, 학교, 수업 준비, 강의, 실험, 학교….. 

무한 반복의 삶.



처음에는 왜 연락이 안 오지? 했다가, 

잊고 있을 무렵

한 2주쯤 지났을 무렵 연락이 왔다.



충남 천안에 강의하러 다녀오던 날,

기차를 타고 오는 나를 배려한 그의 장소 선택으로

용산역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평범했다.

사실 지금 아무리 떠올려봐도 

소개팅 날의 그 남자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옷도 기억나고 머리 모양도 기억이 나는데, 

얼굴은 기억에 없다.



통통했고, 안경을 썼고, 뽀글 머리에 남색 코트를 입고,

줄무늬 셔츠에 파란색이었던가? 자주색이었던가? 

스웨터를 입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색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스웨터가 파란색과 자주색 두 개 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만)



용산역 동그란 안내데스크를 따라 서있는다고 말했는데, 

나를 못 찾았다.

거기에는 마치 약속이 있는 자들의 모임처럼 

띄엄띄엄 원을 그리고 휴대폰에 얼굴들을 박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분명 이 중에 그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는 나를 못 찾았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고 나서 나는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한 전화를 받은, 

나와 반대편에 서 있던 그 남자에게 내가 찾아갔다. 




만나자마자 식사를 하러 갔다.

미리 생각해둔 장소가 있었나 보다.




식사는 “매드 포 갈릭” 




웨이팅도 있었다. 

웨이팅 하면서도 명함을 건네고, 

말을 쉬지 않고 한다 이 남자.

분명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어색한지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2살이 많았고,

프리랜서로 경영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석 박통합으로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과는 달랐지만, 

연구실 생활을 해서인지

뭔가 말이 잘 통했다.



그렇게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는 내게 끊임없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는지 계속 물어보았다.

나도 신나서 대답한 거 같은데, 

아무튼 두통이 심했다…



뭔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거 같은데, 

기억나는 건,

이 남자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고,

난 대답을 많이 했고,

매드 포 갈릭은 여전히 내 입맛에 짰고,

밥은 그가 샀으며, 차는 내가 샀고,

차를 다 마시고 그가 치웠다 정도??




그리고 이번 소개팅을 통해 얻은 결론.


1.     앞으로 나는 소개팅을 하지 말아야겠다. 

벌써, 석 박통합 5년 차. 

이제 졸업하고, 외국 나가서 공부할 계획인데, 

이 나이에 소개팅 나온 사람들은 결혼을 생각하니,

이건 소개팅의 암묵적인 룰에 위반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개팅을 하지 말아야지.


2.     만약에 만약에 소개팅을 하게 된다면, 

이제 그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퇴근 후, 

빼곡하게 계획이 짜 있어서 너랑은 데이트할 시간도 없고 

너랑은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어필하지 말아야지.



이 두 가지 결론을 얻고, 소개팅을 마쳤다.

소개팅을 끝내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의 

안부 카톡 정도는 했던 거 같지만,

다음 날 연락이 없었다. 




“그래 뭐. 소개팅이잖아. 

나는 이제 안 할 것이다 소개팅!!”




이라고 소개팅 다음 날 간 결혼식에서 친구에게 말했다.

남편을 데리고 온 내 친구는,

절대 그러면 안된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러지 마”



라고 했다.




멀리 간 결혼식이 끝나고 

1호선을 혼자 타고 다시 학교 실험실로 돌아오는 길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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