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인상적인 두 번째 만남
짧고 인상적인 두 번째 만남
그에게서 온 카톡은
결혼식 잘 끝나서 학교에
다시 가고 있냐는 문자였다.
어제 첫 만남에서 주말에 무엇을 할지 물어봐서
결혼식에 간다고 했더니,
몇 시에 하는지,
예식장이 어딘지 묻기에
‘뭐 지? 이 사람?’
했더니만,
결혼식 끝나서 학교로
돌아가는 시간이 길 것을 알고,
그 시간을 노렸나 보다.
어머나.
나 같은 디테일 변태한테 최적화되었군.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 내내
카톡을 주고받았다.
결국 주말 동안에 주고받은 카톡의 성과는
다음 주 목요일 만나기로 함
그리고 말을 놓기로 함
2살 많은 이 남자에게,
한 번 본 이 남자에게,
나는 한 학기 같이 산 기숙사 룸메이트 언니들에게도
말을 못 놓았는데,
심지어 지금도 친한 그 언니에게!!
‘이 남자 뭐 지??’
아마도 온라인이라서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해서
편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카톡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밝았다.
월요일에는 실험이 있던 날.
새벽 2시 좀 넘어서 실험이 끝나는 일정이었다.
2시에 해야 하는 실험 때문에,
집에 못 가고 기다려야 하는 일정.
어김없이 월요일에도 카톡의 핑퐁 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은 몇 시에 끝나?”
“오늘 실험이 있어서 2시에 끝나”
“그럼 어떻게 집에 가??”
“택시 타고 가지 ㅎㅎ”
“혹시, 괜찮다면, 내가 집에 데려 다 줘도 될까??”
‘이 남자 뭐 지…?’
왜 한 번 본 날 데려 다 준다는 거지??
그리고 우리 이미 목요일에
만나기로 약속도 해 놨는데?!?!
평소에도 의심 많고, 남 잘 안 믿는 내가
그날은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
“그래 좋아”
그 카톡을 보내자마자 실험실에서 친한 쌤에게로 달려갔다!!
“선생님!! 그 남자가 데리러 온대요!!!”
이런 경솔하고 경솔한 실험실 맞춤 인간이여..
지금의 나 과거의 나를 대신해서 창피하다..
왜 그런 말을 하고 다녔는가…
아무튼, 선생님은
그 남자가 쌤한테 마음이 있는 거 같다고,
오라고 한 쌤이 더 대단하다고 했다.
나도 내가 좀 그런 듯…
야심한 밤에,
실험실을 포함에 이 건물에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내가 뭘 믿고 저 남자보고 여기 오라고 했을까??
지금도 풀리지 않는 나의 첫 번째 미스터리
11월의 어느 날 새벽 1시
그는 내가 일하는 건물 1층에 도착했다고 카톡 했다.
밤 9시가 넘어가면, 건물 통제를 하기 때문에,
카드키가 없으면 건물에 출입할 수가 없다.
그가 오기 전부터 안경에서 렌즈로 바꿔 끼고,
BB 크림도 살짝 발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험실도 한 번 쓸고 닦고 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으니,
어서 오렴!
일층 현관문을 열어서 보니,
그는 건물 앞 큰 나무가 있는 화단 옆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손짓을 하자
그가 건물로 쏙 들어왔다.
“춥지?”
그는 주머니에서 따뜻한 두유를 꺼내 줬다.
“고마워…”
그와 함께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어색함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말이 많다.
내가 실험을 해야 하는 시간까지는
약 1시간가량의 시간이 남았기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두 번째 만나는 사람 치고는
우리는 많이 가까워져 있었다.
간단한 실험이었기에,
새벽 2시.
나의 실험은 끝났고,
그와 함께 건물을 나와 그의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갔다.
그는 매우 매너 좋게 집 근처에 내려줬다.
세상이 흉흉하니, 남자에게 집을 알려주지 말자!
내 신조에 맞춰서 근처 골목에 내렸다.
이 남자는 끝까지 우리 집 앞까지
데려 다 주고 싶어 했으나,
두 번 밖에 못 본 남자를 믿을 순 없었다.
그렇게 짧고 굵은 두 번째 만남이 끝났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남자는 이 날 나에게 퐁당 빠졌다고 한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새벽 1시의 나를 보고,
열정을 다해서 본인의 일을 즐기는 나에게 빠졌단다.
근데, 눈 충혈된 거는 렌즈 때문이야.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