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Automation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로 들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현재 시점에서 Data Driven Creative(이하 DDC)의 수준은 일부 Display 광고(대부분 웹과 모바일의 배너광고) 소재를 Audience Data(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루핑 하거나 일련의 기준으로 필터링 및 타게팅 해서 광고 소재를 자동으로 개발하는 DCO(Dynamic Creative Optimization)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수준이라면 이러한 광고 최적화 프로세스를 짤막한 Snackable 광고 영상에 반영하는 정도랄까?
DDC는 DCO?
Data Driven Creative의 개념은 이에 대해 어떤 기대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바로 위에서 언급한 DCO도 분명 DDC의 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광고인들은 Display Advertising(DA)의 영역을 '광고' 일이라기 보다는 '디지털' 또는 '매체' 부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조직 또한 그렇게 분할되어 있다. 즉, 이 영역을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소재의 효율화 내지는 '디지털 광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매우 기능적인 작업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 광고업무가 대부분인 중소 독립대행사의 크리에이터들에게는 DA광고 즉, '배너' 광고 소재를 개발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이겠으나, 종합광고대행사 및 전통적인 광고대행사의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아직도 '남의 일'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광고인들에게 DDC는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개념일 수 밖에 없을 것으며, DDC가 DA 및 DCO를 너머 전체 캠페인 크리에이티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개념이자 프로세스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출처 : Thunder Experience Cloud Blog)
Multi Persona를 활용한 Multi Creative
DA광고 제작 효율화 차원으로 적용되고 있는 DCO 외에 그나마 조금 더 발전된 DDC라고 한다면, Data를 활용해 타겟 소비자들의 특성을 Multi Persona로 구분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Multi Creative 소재를 제작, 해당 타겟별로 광고 노출을 최적화 함으로써 광고 효율을 높이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필자도 디지털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던 시절 이런 멀티 크리에이티브 캠페인을 진행해본 일이 있다. 물론 이때는 제대로 데이터를 활용했다기 보다는 소비자 집단의 속성(성별, 연령 등) 기준으로 분류하고, 이들에게 광고를 노출하게 되는 시점과 컨텍스트를 미리 고려해서 18개의 다양한 영상광고 소재를 만들었다. 또한 타겟 그룹에 따라 각각 만들어진 광고는 주중과 주말, 일과 시간과 퇴근 이후 등 광고가 노출되는 일정과 상황에 따라 미디어 플랜을 차별화해서 집행되었다. 여러 가지로 우여곡절도 많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노출만을 조절했던 때에 비해서 훨씬 더 높은 효율과 소비자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나름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이 남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정해진 예산 안에서 18 개의 멀티 크리에이티브 소재를 만들어야 하기에 18개 소재를 단 하루, 한 스튜디오에서 모델의 의상, 프롭과 상황 연출을 통해 소화해내야 했다. 결국 제작에서의 수익 창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둘째, 집행한 광고에 대한 소비자 반응 데이터와 인사이트가 이후 후속 캠페인에 반영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소비자 데이터는 광고주에게 귀속되어 있기에 광고 반응 이후의 행동 데이터를 연결된 흐름 속에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얻어진 인사이트를 후속 캠페인으로 이어갈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데이터에 근거한 멀티 페르소나, 다양한 페르소나를 적용한 크리에이티브 소재를 개발하고 미디어 플랜에 반영하는 접근은 여전히 그 발전 가능성이 열려있다. 단일소재를 활용할 때보다 분명 더 좋은 효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멀티 소재의 제작비 역시 효율화 하더라도 대행사와 제작사가 최소한의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수준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 더 많은 데이터 인사이트가 반영될 수 있는 데이터 접근과 지속적인 결과 반영이 멀티 크리에이티브 캠페인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초개인화 DCO 그리고 AI 루반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 보자. 현재 DDC의 대부분은 DCO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DCO가 DDC의 궁극적인 모습이라고 만족해 할 수는 없지만 광고 소재와 효율의 최적화 측면에서는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으며, 계속 그 기술과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영역이다. 이미 중국의 경우는 이 DCO가 단순히 소재 제작을 자동화 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방대한 소비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AI 엔진을 통해 타겟 페르소나별 DCO의 수준이 아닌 초개인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사례가 있다.
중국의 최대 이커머스 업체인 알리바바는 이미 2017년부터 소비자들의 커머스 데이터를 비록한 각종 소비자 행동, 프로파일 데이터를 활용해 Luban이라는 AI 엔진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루반의 DA 광고 제작 능력은 1초당 8000개, 하루에 4000만개의 동일하지 않은 개별적 배너를 제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2017년 광군제 때 루반이 디자인한 배너의 수는 총 4억개에 달했으며, 만약 사람이 디자인했다면 1개당 20분으로 계산할 경우 100명의 디자이너가 약 700년간 작업해야 하는 분량이다. 이 기간 동안 루반이 만든 배너를 통한 상품 조회수가 전년 대비 100% 이상 늘어났으며 2017년 광군제 하루 동안 알리바바가 올린 매출은 28조를 달성했다고 한다.
Luban이 만든 초개인화 배너 샘플
너무 어마어마한 숫자에 압도되어 잠시 시선을 빼았겼다면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보자. 중국은 이미 2017년 이전부터 AI를 활용한 DCO 개발 노력을 기울여왔고 Luban은 지금쯤 엄청난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통해 더욱 정교하고 강력한 AI 엔진으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이런 중국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의 DCO, 그리고 DDC는 어쩌면 아직도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니나, 중국은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 전반에 있어서만큼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수준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AI CD와 Human CD의 대결
조금 지난 사례이긴 하지만, 2016년 일본에서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이른바 AI Creative Director와 휴먼 Creative Director의 대결이다. 맥켄에릭슨 제팬에서 진행한 이 시도는 일본의 껌 브랜드인 클로렛츠(クロレッツ, Clorets) 민트탭 제품을 주제로 AI CD(그 혹은 그녀의 이름은 AI-CD β)가 낸 아이디어로 만든 광고와 휴먼 CD의 아이디어로 만든 광고를 Blind Test를 통해 평가한 것이다. 아래는 그때 사용되었던 두 광고물이다(예전 유튜브에 올라와있던 영상을 다운받아 놓은 것인데 저작권 이슈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 Test 광고 1 >
< Test 광고 2 >
어떤 광고가 AI가 만든 광고일까?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휴먼 CD가 만든 < Test 광고 1 >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이겼다고 웃으며 위안을 삼을 일일까? 득표수는 54 : 46, 근소한 차이로 휴먼 CD의 광고가 이긴 것이다. 광고대행사에는 많은 CD들이 있다. 각 CD들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고, 경쟁력 또한 다르다. 그런 '사람' CD들이 만든 광고를 Blind Test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누군가의 아이디어는 더 좋게 평가받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AI가 낸 아이디어가 사람과의 대결에서 저정도의 근소한 차이로 졌다면, 사람 CD가 낸 아이디어의 대안이거나, CD가 최종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레퍼런스 아이디어들 이상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궁금증이 발동했다. 어렵게 어렵게 수소문해서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현지 담당자와 연결되었고, 일본어에 능통한 당시 회사 고문님의 도움을 얻어 컨퍼런스 콜을 진행했다.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AI 알고리즘을 만들었는가였다. 대답인즉슨 과거 10여년 간의 일본 TV 광고를 분야별로 나누고, 각 광고물들의 메시지, 소구방법, 모델, 톤&매너 등등을 분류해서 Tagging하고 이를 기준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었다고 했다. 솔직하게 과연 그정도의 데이터로 AI 알고리즘이 만들어질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단, 이 프로젝트를 한국에서도 해볼 수 없겠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저작권료로 1억 엔을 요구했다. 그럴 돈도 없었거니와 대단한 알고리즘도 없어보이는 그 프로젝트에 10억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바로 국내 데이터 분석의 대가를 찾기 시작했고, 수소문 끝에 지인을 통해 KAIST에서 데이터 분석 연구실을 운영하시는 교수님과 연결되었다. 급하게 제안서 형태의 문서를 만들어 무작정 찾아뵙고 한번 시도해보자 말씀드렸더니 관심을 보이셨다. 그래서 그 연구실에서 근무하시는 홍모 박사님과 함께 사전 리서치를 진행했다. 역시나 우리나라 과거 TV 광고를 리스트업하고, 일정 기준을 만들어 Tagging하면서 알고리즘을 만들어보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몇 개월 간의 사전 작업 끝에 낸 결론은 유의미한 알고리즘을 만들기엔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물리적으로 사람(알바생)을 동원해서 우리나라 역대 TV 광고를 전수조사 한다면 데이터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도 있었겠지만, 확보해놓은 예산도 없었고 그만큼의 노력과 비용을 투입할 만한 여력이 없어 결국 마음을 접었다. 비록 여러 제약으로 인해 중단했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다.
AI가 쓴 카피, 그리고 AI와 함께 만드는 광고영상
미국의 AI 전문 스타트업 Persado는 사람이 쓴 100만여 건의 카피를 서사, 감정, 묘사, 기능, 형식, 배치의 여섯 가지 조건으로 나누어 AI에게 학습시켰고, AI가 작성한 카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재학습시키면서 소비자 반응율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카피를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미 JP Morgan, MS, Verizon, CITI Bank, MetLife 등은 퍼사도와 계약을 맺고 Persado에게 자사 광고의 카피 라이팅을 의뢰하고 있다.
Persado의 AI가 만든 광고와 일반 광고의 효율성 비교
한편, 일본의 렉서스는 런던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The & Partnership, 기술회사인 Visual Vocie, IBM의 인공지능 왓슨, 호주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 응용과학팀 MindX 등과 협업하여 인공지능 광고를 만들었다. 이들은 국제 광고제인 '깐느 라이온스'의 역대 수상작들을 영상, 텍스트, 오디오 등으로 나누어 분석했고 성공적인 광고의 공통적인 요소를 도출, 이를 스토리에 반영해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의 성공 여부를 떠나 데이터와 AI, 그리고 사람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시도가 있었다는 것 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AI의 등장과 발전에 대한 인류의 기대는 매우 크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 또한 적지 않다. 실제로 AI의 등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KBS의 교양 프로그램 명견만리에서는 201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진행한 연구인 '우리의 직업을 얼마나 컴퓨터에게 내줄 것인가'란 보고서를 근거로 앞으로 사라질 직업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방송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702개 직업 중 20년 안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47퍼센트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송한 뒤로 이미 5년이 흘렀으니 이제 15년 남은건가?
과연 광고계, 광고 관련 직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장은 크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가 많다고,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등장한다고 사람이 가진 잠재적 능력과 통찰을 갑자기 뛰어넘거나, 그 자리를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분명 영향은 있겠지만, 오히려 사람이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자신이 하는 일의 성과를 훨씬 더 높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AI가 미리 준비한 여러 시안을 검토하면서 카피라이터의 창의성을 더하게 된다면, AI가 준비한 영상광고 스토리라인과 추천 모델, 추천 카피와 톤앤매너 등을 참고해서 Creative Director의 정교하고 섬세한 연출을 가미한다면, AI가 제시한 타깃 소비자별 메시지를 반영하고 DCO를 통해 제작된 배너를 광고 효율 최적화에 반영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AI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사람이 지시하고, 검토하고, 실행해야 한다. AI가 내 일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광고의 어떤 직능에 있던지 내가 해왔던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노동집약적 과정을 데이터에 근거해 제시해준 AI의 추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의 업무 효율과 효과는 크게 향상될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그러나 우리 인류는 그 변화를 이끌어 가면서 스스로의 지경을 더 넓혀왔다. 나에겐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인용하는 명언이 있다. 저명한 비평가, 커뮤니케이션 학자였던 마샬 맥루한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정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미디어가 우리 자신의 확장이며, 이 미디어의 개인적 및 사회적 영향은 우리 하나 하나의 확장, 바꾸어 말한다면 새로운 테크놀로지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도입되는 새로운 척도로서 측정되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수준을 뛰어 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나는 인공지능 역시 우리 자신의 확장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잘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당할 것인가는 우리가 하기 나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