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삶이 담긴 헌책방

by 김준호

가을 오후의 헌책방.

먼지 냄새와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허름한 재킷, 단정한 머리. 손에는 낡은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주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천천히 책장 사이를 걸었다.

구경하는 듯했고, 찾는 듯했다.

노란 표지 앞에서 그의 손이 멈췄다.


『어린 왕자』.


그는 책을 펼쳤다.


"아빠, 여우는 왜 울어?"

"친구랑 헤어져서."

"나도 아빠랑 헤어지면 울 거야."


딸의 여덟 번째 생일에 사준 책이었다.

아내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는 혼자 딸을 키웠다.

매일 밤 딸의 침대 옆에 앉아 이 책을 읽어주었다.

딸은 늘 한 장만 더 읽어달라고 했고, 끝까지 읽는 데 석 달이 걸렸다.


지금 딸은 스물아홉이다. 결혼해 부산에 산다. 결혼식 날, 딸도 울었다.

여우가 왕자와 헤어지며 울었던 것처럼. 그도 울었지만,

서로에게 그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책을 덮었다.


"오래된 책이네요."


주인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예전에 딸에게 사준 책과 같은 판본입니다."


그는 책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주인이 가격표를 확인하며 책을 펼쳤다.


"좋은 책이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들 하지만…."


"딸이 좋아했습니다. 특히 여우 장면을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겼다.


"길들인다는 건 누군가에게 소중해지는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매일 밤 읽어줬습니다."


"따님이 좋아하셨나 봅니다."


"네... 끝까지 읽고 나면 또 처음부터 읽어달라고 했어요.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주인은 더 묻지 않고 책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결혼했습니다. 작년에요. 부산에 삽니다."


"멀리 가셨군요."


"네. 보고 싶어도 자주 못봅니다."


말은 거기서 멈췄다. 주인은 비닐을 접으며 천천히 말했다.


"왕자도 자기 별의 장미를 두고 떠났죠."


포장이 끝났다. 주인은 책을 내밀었다.


"다시 읽으면, 전과는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그는 책을 받아 들었다. 가볍지만 무거웠다.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헌책방을 나섰다.

주인은 한동안 그의 뒷모승을 바라보았다.

낡은 서류 가방을 든 손과, 헌 책을 든 손.

두 손의 무게가 서로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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