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삶이 담긴 헌책방

by 김준호

나른한 점심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이십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는 책장 사이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어깨가 조금 굽어 있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 한 권을 꺼내 겉장과 뒷장을 번갈아 본 뒤 다시 꽂았다.

손끝으로 책등을 훑으며 걷다가, 책장 끝에서 다시 한 권을 꺼냈다.


『데미안』이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제일 친했던 친구 준호가 자퇴를 했다.


"난 대학 안 갈 거야."


"왜? 성적도 괜찮잖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난 내 길을 찾을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자기 길이 따로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준호가 학교를 떠나기 전날, 그가 책 한 권을 건넸다. 『데미안』.


"너도 읽어봐. 우리 얘기 같아."


"우리 얘기?"


"응. 알에서 나오려는 새 얘기."


그는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싱클레어, 데미안, 아브락사스.

수능 준비로 가득 찬 머릿속에 들어오기엔 너무 낯선 이름들이었다.

결국 반도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준호와는 연락이 끊겼다. 가끔 SNS에 사진이 올라왔다.

여행 중인 사진, 일하는 사진. 사진 속의 그는 늘 웃고 있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대학을 졸업했고,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도 삼 년째였다.

오늘도 면접에서 떨어졌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과 조금 다르네요."


열네 번째였다.

부모님은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했다. 안정적이니까.

삼촌도, 친구들도 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며칠 전, 준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응… 너는?"


"나? 잘 지내. 힘들지만 후회 없어."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그 책이 떠올랐다.

『데미안』. 십 년 전, 읽지 못했던 책.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열여덟 살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스물여덟이 된 지금, 그 의미가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책장에 기대 선 채 몇 장을 더 읽다가,

결심한 듯 책을 덮었다.


"이 책 계산해주세요."


주인은 책을 받아들며 표지를 살폈다.


"예전에 읽으셨어요?"


"고등학교 때요. 친구가 줬는데… 그땐 이해가 안 됐습니다."


"친구분이 추천했군요."


"네. 자퇴하면서 이 책을 줬어요. 우리 얘기 같다고."


주인이 잠시 청년을 바라보았다.


"친구분이 데미안이었나 봅니다."


"네?"


"이 책에 나오는 데미안 말입니다. 먼저 알을 깨고 나간 사람."


청년이 책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저는… 싱클레어인 거네요."


"아직 알 안에 있는."


주인은 더 묻지 않고 책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친구, 지금은 어떻게 지내요?"


"며칠 전에 연락이 왔어요. 힘들지만 후회 없다고."


"그럼 잘 나온 거네요. 알에서."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은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싱클레어도 오래 걸렸습니다."


포장이 끝났다. 주인이 책을 건넸다

.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길을 보여줬을 뿐이죠.

나머지는 싱클레어가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청년은 책을 받아 들었다.


"친구분도 그랬을 겁니다.

이 책으로 길을 보여준 거죠. 따라갈지 말지는 손님이 정하는 거고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섰다.

밖에는 오후의 빛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잠시 서서 책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깨지지 않은 알처럼, 자기 안에 무언가가 가만히 떨고 있는 것을 느끼며.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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