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헌책방은 늘 조용하다. 문을 열면 오래된 종이 냄새가 먼저 나를 맞는다. 오늘도 새로 들어온 책들을 정리한다. 한 권씩 들어 올려 먼지를 털고, 종이 가장자리를 살핀다. 어둡게 물들어 있는 책 한 권. 시간이 켜켜이 눌어붙은 색이다. 팔십 년대 이전, 어쩌면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를 책.
《모모》.
ai 생성표지를 쓸어내리자 햇살 속으로 먼지가 흩어진다.
그 가벼운 움직임에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 하나가 깨어난다.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창가에 앉아 있던 오후였다.
"고등학교 생각하면 어때?"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고개를 숙였다.
"지루하고 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대신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길은 멀리서 보면 더 길어 보여."
그리고 물었다.
"교실 청소할 때, 엉망인 교실 보면 어때?"
"언제 다 하나 싶죠."
"그럴 때 네 책상 하나만 생각하면?"
"그건 금방인데요."
"그거야. 한 책상, 한 자리, 한 번의 빗질. 그렇게."
단순한 말이었지만,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마음 어딘가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놓인 느낌. 그것만 남았다.
선생님은 서랍에서 책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손때가 낡은 책 한권.
"이건 시간 이야기야."
그날 밤 책을 펼쳤다. 폐허가 된 원형극장,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소녀.
사람들은 그녀 곁에 앉아 말을 했고, 모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말이 끝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져 있었다.
거리의 청소부 베포도 있었다.
다음 한 걸음만 보라고, 다음 한 번의 호흡만 생각하라고 그는 말했다.
선생님의 말이 겹쳐졌다.
회색 옷을 입은 사내들도 나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끼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서둘렀다.
웃음을 미뤘고, 쉬는 법을 잊었다. 그럴수록 시계는 더 빨리 갔다.
겨울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루는 길었고, 그 하루가 반복되었다.
어느 날, 시험 공부 계획표를 보다가 숨이 막혔다. 한 주일 안에 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때 문득 베포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 한 걸음만.'
나는 계획표를 덮고 문제집을 폈다. 오늘은 수학 열 문제. 한 문제, 또 한 문제.
창밖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는데, 잠시 손을 멈추고 그 빛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쥐어짜지 않아도 달아나지 않았다.
하루가 쌓였고, 어느새 나는 다른 쪽에 서 있었다.
지금 헌책방의 책장 앞에 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책들 사이에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은 이 한 권이면 충분하다. 표지를 닦고 자리를 잡아준다.
그것으로 하루는 제 몫을 다한다.
《모모》를 책장에 꽂는다. 언젠가 이 책을 집어 들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사람, 너무 빨리 걷다 숨이 찬 사람.
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이미 알고 있다.
길은 언제나,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