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2

삶이 담긴 헌책방

by 김준호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다 우편함에서 총 동문회지를 꺼냈다. 습관처럼 훑어보다 눈이 멎었다. 대학 시절 경제사학 교수님의 소식이었다. 지난겨울, 석좌교수로서의 마지막 학기를 마치며 책을 내셨다고 했다.

카페에서 읽던 모리 교수의 책이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노교수가 제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강의들. 교수님도 당신의 마지막을 책으로 남기셨구나 싶었다. 모리 교수는 제자와 마주 앉아 말로 건넸고, 교수님은 활자로 남기셨다. 방식은 달랐지만 결국 같은 것이었다.

모리 교수는 루게릭병으로 몸이 굳어가는 동안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용서에 대해.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질문하고, 함께 찾아갔다. 시간이 줄어들수록 말의 무게는 늘어갔고, 그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인생의 가장 큰 질문들에는 단순한 답이 없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함께 나아간다."


문득 교수님의 첫 강의가 떠올랐다.

교수님은 교탁에 기댄 채 천천히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공부하려는 사회과학은 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답을 만드는 겁니다. 대신 터무니없는 억지는 안 됩니다. 스스로 내린 정의에 논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이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다른 강의에서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모든 역사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것이 반복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원인을 모른 채 결과만 본다면 삶을 예측할 수도, 과거를 반성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는 그저 노트에 받아 적었을 뿐이었다.

광고 대행사에서 기획서를 쓰고 카피를 쓰면서도 그 말씀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광고주가 원하는 메시지가 있고, 소비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답을 만들어야 했다. 정해진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억지여서는 안 됐다. 왜 이 제품이어야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논리를 세워야 했다. 소비자가 왜 이 제품을 선택하는지 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득력 있는 카피는 쓸 수 없었다.

20년을 그렇게 일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책방을 운영한다. 광고 카피 대신 책을 고르고, 메시지 대신 이야기를 건넨다.

일은 달라졌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사람과 말 사이, 그 어딘가에.

손님이 들어오면 나는 묻는다.


"어떤 책을 찾으세요?"


어떤 이는 제목을 대고, 어떤 이는 한참을 머뭇거린다. 나는 그 시간을 서두르지 않는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그 사람의 답은 그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

두 스승은 다른 말로 같은 것을 말씀하셨다.


"답은 여러분이 만드는 것입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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