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자 - 2. 첫 번째 증인: 염라대왕 - 질서와 책

2. 첫 번째 증인: 염라대왕 - 질서와 책임

by 김준호

흰색의 공간 한가운데에, 마치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추는 듯한 불길한 소리와 함께 압도적인 흑색의 무게가 쏟아져 내렸다. 그 흑색은 단순히 빛이 없는 어둠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의 업보가 응축된 관념 그 자체였다. 그 무게가 응축되어, 이윽고 권위와 엄정함을 담은 염라대왕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의 등장은 이 절대적인 공간에 법칙의 무게를 강제로 주입하는 듯했다.

염라대왕의 관복은 깊은 밤하늘처럼 짙었으며, 그의 형체는 미동도 없이 이 공간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는 신을 향해 고개를 숙였으나,

그 태도는 굴종이 아니라 법칙에 대한 숭고한 존중에 가까웠다. 그의 눈빛은 개인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새겨진 모든 존재의 생애 기록을 한 번에 읽어내는 듯한 냉철함이었다. 그의 손에는 끝없이 두루마리가 풀려나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인류 역사의 모든 선행과 악행의 목록이 끝없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근원(根源)이시여. 그리고 질문하는 영혼이여.

명부(冥府)의 집행자는 소환에 응했다. 너의 질문은 나의 균형과 심판에 대한 불만인가? 나는 인과율의 집행자로서 여기에 섰다.

나의 법은 너희의 감정과 동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인과율에 의한 계산만이 존재할 뿐이다. 신은 너희에게 존엄을 주었기에, 그 존엄에 대한 최종 판단은 너희의 유한한 시간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신의 방관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법칙의 불변성'을 증언한다."


나는 나의 의식의 전 존재를 그에게 집중하며 반문했다.


"염라대왕이여. 당신이 집행하는 심판의 정당성에 대해 묻겠습니다!

당신은 오직 인간의 삶이 끝난 후에야 나타납니다.

현세에서 악한 자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죄 없는 이들을 짓밟을 때, 당신의 정의는 어디에서 잠들어 있었습니까?

당신이 말하는 인과율은, 힘없는 약자에게 '현세의 고통은 찰나이며, 사후에 보상받을 것이다'라고 속삭이는 신이 만든 가장 기만적인 위안 아닙니까?

당신의 질서는 당신 신의 잔혹한 방관을 감추기 위한 거대한 시간 지연책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정의는 너무나 느리고,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염라대왕은 나의 격앙된 질문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주변을 감싸던 흑색의 관념이 더욱 짙어지며, 나의 주장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인간이여, 너는 유한한 시간의 착시 속에 갇혀 영원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구나. 너희의 삶에서 몇십 년의 찰나는 영원의 기록 속에서는 가장 사소한 미세 진동에 불과하다. 너는 나의 정의가 느리다고 말하는가? 나는 완벽한 정의를 위해 유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내가 너희가 원하는 대로 현세에 즉각 개입하여 악한 자를 벌하고 선한 자에게 상을 준다면, 너희는 더 이상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너희는 그저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진 짐승에 불과해질 것이다. 신은 너희에게 존엄을 주었기에, 너희의 선택에 대한 최종적인 계산은 너희의 유한한 시간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너희의 자유가 신의 간섭 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나의 의식은 염라대왕의 답변을 즉각 논파하고자 했다.


"자유 의지? 신은 악을 행할 자유만을 주었을 뿐, 그 악에 맞서 승리할 정의로운 힘은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질서는 악한 자에게 현세에서 죄를 지을 시간적 여유와 무한한 부귀영화를 누릴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죄 없는 아이가 굶어 죽어갈 때, 당신은 '그것이 과거의 업보일 수 있다'라고 말하며 그 희생을 정당화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존엄'입니까? 당신이 말하는 인과율은, 신이 만든 창조적 실패와 도덕적 무책임을 은폐하는 가장 완벽한 논리적 방패입니다! 당신이 기록하는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신이 방치한 고통 아닙니까? 당신은 신의 가장 무자비한 집행관입니다. 당신의 심판은 악행의 기간을 보장해 주는 신의 시간 지연형 폭력에 불과합니다!"


염라대왕은 허공에 손을 들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흰색의 공간이 열리며, 무수히 많은, 빛나면서도 어두운 입자들이 회오리치는 듯한 관념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업보의 파편들이었다.


"이것이 너희가 살면서 남긴 업보의 흔적이다. 내가 재는 것은 단순히 행위의 선악이 아니다. 나는 너희의 의도와 너희의 무의식적인 파동, 그리고 그 모든 행위가 우주에 미친 영원한 잔향까지 세밀하게 계산한다. 선한 자가 고통받는 것은 그들 영혼에 남은 과거의 빚일 수 있으며, 악한 자가 흥하는 것은 그들이 미래에 치러야 할 영원한 대가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기록하고 계산할 뿐이다. 너의 고통은 너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류는 영원히 고통받아야 했단 말입니까? 당신의 질서가 신의 사랑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습니까? 사랑이 있다면, 왜 그 질서를 자비로 덮어 고통을 멈추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법칙이 바로 신의 무자비함을 증명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정의는 악의 번성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허락함으로써,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필연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신이 전능하다면, 왜 인간이 고통을 겪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정산'되는 이 결함 투성이의 방식을 고수했습니까? 신은 완벽한 질서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완전하고 잔혹한 질서를 선택한 것입니다!"


염라대왕은 흑색의 기운을 내뿜으며 나의 감정적인 질문을 눌렀다.

"불필요한 자비는 질서의 파괴를 의미하며, 그것은 곧 혼돈을 초래한다. 신은 너희에게 책임감 있는 자유를 주었기에, 그 자유의 결과까지 스스로 책임지게 했다. 너는 심판자를 비난하지만, 너희 세상에서 가장 큰 공포는 심판이 무너지고, 정의가 사라졌을 때가 아니었느냐? 나는 너희가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결국은 모든 것이 기록되고 계산된다는 근원적인 안정을 제공한다. 나의 존재는 신의 방관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법칙의 불변성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여기에 섰다. 네가 이 법칙을 부정하고 무질서를 원한다면, 너는 곧 영원한 무(無) 속으로 소멸하게 될 것이다. 너의 고통은 너의 자유에 대한 대가였음을 깨달아라."


염라대왕의 길고 장황한 증언은 나에게 고통의 책임을 전가하는 우주적 회계장부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의 투쟁을 자유의 결과에 대한 책임 회피로 규정했다. 그의 무거운 형체가 서서히 옅어지며 흑색의 잔향을 남겼다.


"염라대왕은 질서와 책임의 필연성을 증명했다. 너는 그 책임을 지고도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는구나. 다음은 나의 증인이다. 너희 인간이 그 모든 외부적 심판과 질서로부터 완전히 탈출하려 했던 길을 제시한 증인이다. 고통의 근원을 자기 내부의 탐구에서 찾았던 자, 석가모니를 소환하라."

작가의 이전글소환자 - 1. 절대자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