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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국국어교사모임 Jan 26. 2021

학교 차원에서 국어 수업을 바꾸려는 노력

조경선 광양 이음학교 jksksh1018@hanmail.net

며칠 전, 여수에서 근무하는 이동윤 선생님이 수업을 공개해 주었다. ‘자기 성찰 글쓰기’로 수업을 했는데, 본인의 과거 일기장과 세줄일기 애플에 쓴 글을 먼저 보여 주었다.

“공개 수업 디데이 2일 전. 시간을 할애해 주신 분들에게 무엇으로 다가갈까. 나를 드러내 보이는 그것이면 진정성이 있으려나. 2020년 9월 16일”

고3 일반고 남학생 교실이었다. 수시 전형을 위한 학생생활기록부를 마감한 이후, 교실에 들어가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선생님은 ‘10대 때 마지막 국어교사로 기억될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교사로 남고 싶지 않았고’, 수능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단다. 선생님 수업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가치는 ‘인식을 넘어 행함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선생님은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만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독자와 평생 작가로 읽기와 쓰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선생님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있었기에, 고3 학생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글쓰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 내 개선사항’을 주제로 동료 교사와 교과융합 프로젝트를 했다. 《화법과 작문》에서는 건의문 쓰기를 하고 《경제수학》, 《심화수학》에서는 설문 통계와 해석을 하고, 《독서》, 《영어 독해와 작문》에서는 발표를 했다.

진심 어린 태도, 동료와 협력, 교사에 대한 학생의 믿음이 있었기에 고3 교실에서 학생 참여 수업이 가능했다. 


여럿이 학교상을 협의하기 

나는 올해 전라남도교육청 위탁교육기관인 위스쿨로 학교를 옮겼다. 교직 생활 15년 동안 인문계 고등학교 두 군데, 특성화고등학교 두 군데에서 근무했다. 앞으로는 전라남도교육청 공립 대안학교에 있게 됐다. 이곳에서는 학업 중단 위기에 있거나 정서적으로 위험군에 있는 학생, 무기력한 학생을 위탁받아 특별교육을 한다. 케이이에스에스 교육통계서비스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1년에 초등학교에서 0.7%인 17,797명, 중학교에서 0.7%인 9,764명, 고등학교에서 1.6%인 24,978명이 학교를 떠난다. 공부를 포기하고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들, 옆 친구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학생들에게 마음과 손, 시간이 미치지 못함이 미안해서 나는 그 곁에 있고 싶었다.

우리 학교는 이번 학기부터 대안학교인 각종학교로 바뀌었다. 위탁형 기숙형 대안중학교인데, 국어와 사회 교과만 필수 이수 시간의 2분의 1을 하고, 다른 교과는 대안 교과 활동을 주로 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학교 교육과정을 만들 때 교사들이 여러 번 협의를 해서 우리가 바라는 이음학교의 모습을 이렇게 정했다.

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기다려 주는 학교,

② 상처를 딛고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학교,

③ 다름을 인정하고 지지를 통해 웃음꽃이 피는 학교

핵심 교육 가치를 요약하면 성찰과 회복과 존중이다.

대안 교과는 심성 계발과 상담, 공동체 회의, 노작과 자연, 건강관리, 공예, 자기 도전 프로젝트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교과 구분 없이 모든 교사가 힘을 모아서 참여한다.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협의회를 여러 번 열며 만들어 나갔다. 학교 밖 교육 시민단체, 지역의 학부모,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서 경험이 많은 분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도 만들어 의견을 모았다. 나는 교육과정의 방향을 정하고 중심 가치를 세우는 과정에 참여해 기록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아서 했다.

국어 수업의 목표는 ‘나와 세상을 잇는 국어교육’으로 했다. 학교 이름이 ‘이음’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살렸다. 학생들이 삶과 가정, 학교, 세상을 이어 나가기를 바라며 꼭 필요한 만큼 국어교육을 하고자 했다. 국어 수업만이 아니라 모든 교육 활동에 이 목표가 깃들어 있기를 바란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선도위원회 결과로 특별교육을 이수하려고 오는 경우가 많다. 지각과 결석이 잦아 학교에서 중도 탈락할 위기에 있거나 가정환경이 어려워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 주로 온다. 정신과 병력이 있거나 담배, 게임, 도박 중독인 경우도 많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공부를 포기하고 학교에서 지지와 존중을 받아 본 경험이 아예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모든 활동을 선생님들이 동행하는데, 그래서 국어 수업 시간에만 국어교육이 일어나지 않는다. 언어에 대한 이해와 표현 활동이 실생활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일상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언어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월요일과 금요일에 한 주를 열고 닫는 ‘가족회의’를 한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면 신뢰 서클의 형식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모든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이 점점 입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더 잘 말하게 된다. 말하는 태도는 거칠고 교사들에게는 반항적으로 들려 불편할지라도 교사가 먼저 귀와 마음을 열면 학생들도 점차 변화,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공동체 규칙을 지키지 않아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을 경우에도 가족회의를 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공유하고, 어떻게 책임을 지며 성찰할지에 대해 모두 의견을 말하고, 마지막에 해당 학생이 어떻게 할지 선택한다. 사제동행 자성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담임 선생님이 그 과정을 쭉 함께한다. 나 역시, 무슨 일이 있어서 우리 반 학생과 5킬로미터를 같이 걸었다. 걷는 시간 동안, 학생이 먼저 말을 걸어오고 해서 제법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2학기 국어 시간에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제에 맞게 듣고 말하기, 야영 계획 세우기, 체험 활동 소감 나누기, 영화 소감 나누기, 시집 필사하기, 그림책 읽기를 했다. 이때 각종 질문 카드와 김선미의 《매일 질문》(더디퍼런스, 2018)을 이용했는데 좋았다. 이 책은 부제가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100일의 기적’인데, 거기에 담긴 100개의 질문이 단순하지만 와닿았다. 시집 필사하기는 김용택 시인이 엮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 2015)로 했다. 우리 학교는 북카페 같은 공간에 책이 보관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그림책을 보며 수업을 했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인물과 사건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욕을 너무 많이 해서 가족회의 안건으로 삼자는 어느 선생님의 제안에 공감하여, 국어 시간에 욕 수업도 했다. 이비에스 영상인 <욕의 반격> 보기, 욕의 기원 알아보기, 욕에 담긴 감정이나 욕구 알아보기, 욕을 대체할 수 있는 표현 찾기를 했다. 한마디로, 지금 내가 만나는 학생들의 삶, 국어 능력 수준, 흥미를 살펴서 수업을 설계했다. 그러면서 지금 학교교육이 담아야 할 가치와 내용을 수업에 담고자 한다.

학생들이 툭 던지는 “왜요? 그냥요”라는 언어 표현에 담긴 속마음과 욕구를 알아채고 대화를 이어 가는 어른이 교사가 아닐까 싶다. ‘흔들리며 피는 꽃, 서로 존중하는 우리들’이 우리 학교의 슬로건인데, 흔들리며 피는 꽃에는 교사인 우리들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시대정신을 교육에 담기 

학교 차원에서 국어 수업을 혁신하려면, 교육 활동 전반에서 구현하고 싶은 가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가 퍼지며 몇 달 만에 빠르게 많은 위기와 변화가 있었다. 교사나 학생이 아프면 집에서 쉬라고 하고, 온라인 개학에 비대면 원격수업이 들어오고, 학생 수가 많은 학교는 교차로 등교하며 동시에 학교에 머무는 학생 수를 제한했다. 명절 대이동을 자제하고, 비대면 온라인 쇼핑과 배달이 늘어났다. 접촉 불안을 느끼며, 실업과 폐업 속에서 고립을 느낀 사람들은 파산과 우울증을 겪는다. 단체 회식과 노래방 문화, 초대장을 발송해 치르던 대규모 예식과 장례식도 취소된다. 커피 전문점의 드라이브 스루가 확산되고, 집콕으로 신체 발달 문제, 일상 파괴가 나타났다. 실현 가능성을 의심했던 기본 소득이 이슈가 됐다.

2020년 9월 20일에 예술인들이 개최한 ‘절멸, 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 퍼포먼스가 열렸다. “자, 이제 죽을 시간. 가는 마당에 유언을 남기겠다. 하나, 동물이 최대의 피해자임을 인정해라. 둘, 서식지 파괴를 중단하라. 셋, 세 가지 마약을 끊어라. 탈-성장. 탈-개발. 탈-육식! 넷, 기후위기를 진짜 위기처럼 대하라. 다섯, 우리 조상들의 화석은 연료가 아니니 도굴을 삼가라. 여섯, 사람 중심이란 말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일곱, 당신들이 이룬 모든 건 ‘값싼 자연’ 덕분이었다. 제값을 치르라. 여덟, 지속 가능성 말고, 가능성의 지속을 추구하라. 아홉, 썩지 않는 물건 그만 좀 써라. 열, 앞으로 동물한테 경어체를 써라. 자, 우리는 간다. 당신들보다 먼저 간다.”는 내용이다.

‘인간을 위한 공장’에 갇혀 있는 동물의 입장으로 세계를 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전염병이 있기 전에 오래전부터 지구의 경고가 있었다. 인류의 경쟁적인 자본주의와 수탈은 지구 생태를 파괴해 나갔다. 지난해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전 세계 많은 청소년들이 지구 온난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 세계가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미래 세대인 자신들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내용으로 금요일마다 학교 대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교육에 어떤 가치와 내용을 담아야 할까. 전문적 학습공동체든 교과협의회든 연수와 독서와 토론 마당 곳곳에서 교육의 가치를 새롭게 세우는 공부와 토론이 시급하다. 생명과 안전, 지속 가능한 공존과 연대, 진정한 성장이 중요하다. 지금 여기에서 구현해야 하는 가치를 교육과정 안에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 때이다.

시대정신을 교육에 담는 일은, 교사에게 잘 가르치고자 하는 동기 유발이 된다. 관행대로 교과서 강의 수업과 입시 문제집 풀이 수업에 한정되지 않고, 왜 지성이 담긴 수업을 해야 하는지 교사가 내적으로 납득하게 되는 까닭이다. 


덜어 내고더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초창기에 학교 혁신에 대해 가장 많이 한 일은 새롭고 의미 있는 일을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덜어 내기, 내려놓기, 멈추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학교의 모범 사례를 가져다 적용해 보는 것에만 열중하다 잘못하면, 교사와 학생들이 너무 바쁘다. 혁신 담당자가 바뀌거나 학교를 옮기면, 그전에 해 오던 좋은 교육 활동들이 지속되지 못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수업 외 시간에 이벤트 치르듯 행사를 하면 실패한다. 교육적 효과가 부족한 교육 활동, 전시성 행사, 관습적으로 해 오고 있지만 불필요한 업무처럼 교사의 열의와 시간만 축내는 일은 과감히 덜어 내야 한다. 좋은 결과물을 공유해야 한다는 높은 책임감이나 결국 자신만 소진되는 열정, 소수 학생에게만 혜택이 가는 활동은 줄여 나갔다. 학교를 바꾸려면 교무행정사 선생님들이 공문 처리 전문성에 집중하도록 하고, 선생님들은 수업, 학생 자치와 생활교육에 더욱 집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했다.

학교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동료 교사이다. 동료 교사에게 실망과 불편함이 생기면 학교 혁신은커녕 출근하는 일상의 발걸음도 무겁다. 동료에 대한 이해와 존중, 배려와 협조에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다. 나도 모든 선생님에게 인정과 지지를 받고 싶었고,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각자의 경험과 입장의 차이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가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멈추기다. 담는 것만큼 비우는 것도 혁신이라고 많이 느낀다. 너무 많이 담아서 복잡해진 것에 대해 되돌아본다.

진정성 있는 태도로 교육의 가치를 담아 구성원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수업을 멋지게 해서 세상을 잇고 싶다.  


글쓴이 소개

제가 근무하는 전라남도교육청 위스쿨이 2020년 9월 1일 자로 대안중학교로 전환됐습니다. 이곳에 온 학생들의 삶과 언어 표현, 그 이면의 속마음과 배경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짧고도 맑은 가을날, 독서보다는 자전거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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