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서울 등명중 hapum1123@naver.com
세상을 뒤덮은 코로나19는 자율연수 휴직자의 삶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올해 저는 휴직 사유에 ‘몸과 마음의 재충전’이라고 써내고, 비수기 해외여행을 휴직 목적 1순위에 올려두고 있었습니다. 이십 대에 혼자 걸었던 파리의 골목길을 딸아이와 함께 누비고 다닐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여행은커녕 몇 달째 다니던 운동 센터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의 개학 시기도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휴직을 했는데 강도 높은 무급가사노동만 계속됐습니다.
여행에 운동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유튜브를 보면서 홈트(홈트레이닝)를 하다가 달리기 앱을 알게 됐습니다. 8주 동안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대로 하면 누구나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달리기할 때마다 도장이 찍히는 기록 방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깜빡이면 주저 없이 다음 신호를 기다렸던, 무슨 재미로 달리기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저는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마스크까지 쓴 채로.
30분 달리기에 도전하는 첫날은 1분 천천히 달리기와 2분 걷기를 다섯 번 반복했습니다. 1분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고작 1분 달리기가 이렇게 힘든데 30분 달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미심쩍었습니다. 귓가에 파고드는 트레이너의 응원을 받으며 스물네 번 달리기를 하고 도장을 모두 받았습니다. 멈추고 싶은 순간에 가장 힘이 된 건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제가 함께 뛰고 있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같이 달린다는 믿음이 생기면 발을 내디딜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작은 학교에 계속 근무하면서 혼자 하는 수업에 익숙했습니다. 한 학년을 전담하던 시절에는 매주 한 시간 책을 읽고 수행평가로 서평 쓰기를 할 때도 협의를 거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의욕이 넘쳐서 어렵지만 매우 좋은 책을 목록에 넣는 욕심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어긋난 만남으로 책을 포기하고 싶은 몇몇 아이들과 씨름하다 지쳤던 일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일도 혼자 하면 힘이 빠졌을 때 어려워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다음 해에 옮겨 간 학교에서는 한 학년 수업을 둘이 나누어 들어가게 되었는데 같은 학년을 맡은 선생님과 큰 교무실에 같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 자리는 교무실 정수기 바로 옆이었는데요. 물을 받으러 갈 때마다 선생님 옆에서 한참 이야기하고 자리에 돌아오면 즐거운 여운이 남았습니다. 마주 앉은 동갑내기 수학 선생님이 그런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둘이서 학년협의회를 너무 즐겁게 한다고요. 그러고 보니 수업 내용 협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제 본 수목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가 어느새 보고서 쓰기 수업 구상으로 이어지는 식이었으니까요. 수석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주신 독서 모임도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2013)와 ≪제가 살고 싶은 집은≫(서해문집, 2012)을 읽고 잔서완석루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경험을 드러내 보이던 순간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정동길을 걷고 산 다미아노 북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국어과와 음악과는 뮤지컬 수업을 같이했고 학기말에는 여러 선생님과 교과통합수업을 했습니다. 교사들이 자주 만나고 깊은 대화를 나누니 수업이 달라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함께 수업을 고민하면서 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함께 여는 국어교육≫ 가을호의 초점은 ‘학교 차원의 국어교육 혁신’입니다. 국어 수업의 변화가 교사 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학교 문화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이전과는 다른 것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학과 김성천 선생님의 인터뷰는 학교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혁신적인 수업에는 교사의 성찰과 좋은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이 바탕이 되는데 학습공동체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아홉 명으로 시작해서 일 년 만에 서른 명이 참여하는 학습공동체를 키워낸 김영희 선생님의 글은 학습공동체를 내실 있게 운영할 방법을 찾는 선생님들께 명쾌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러 해에 걸쳐 공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교과 간 주제통합수업을 이끌어간 과정을 담은 정은경 선생님의 글을 보면 성공적인 주제통합수업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전종옥 선생님은 학교 교육과정을 민주시민 교육과정으로 체계화한 서울형 혁신학교 마곡중학교의 수업 이야기를 전해 주었고, 김은규 선생님은 수업 나눔과 학생 성장에 방점을 둔 부산의 혁신학교 만덕고등학교에서 고전 읽기 수업으로 학생들과 만난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교육에 어떤 가치와 내용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더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기를 말하는 조경선 선생님은 학교 혁신을 시도하려는 선생님에게 실천에 바탕을 둔 지혜로운 조언을 건넵니다.
중학교 수업사례에는 추풍령 작은 마을에서 생태 문제에 집중한 김기훈 선생님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학교 밖을 넘나들며 세상을 바꾸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수업으로 아이들의 배움과 삶이 영글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고등학교 수업사례로는 수업 짝꿍과 협업해서 실전 면접과 주장하는 글쓰기를 무려 고3 학생들과 해낸 최시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비에스 교재를 내려놓고 싶은 고3 담당 선생님들께 용기를 드릴 겁니다.
미술관을 닮은 대안학교에서 맥락을 읽는 수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한성종 선생님의 글은 제도권 안팎의 학생들을 두루 살펴보게 합니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읽고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전신자 선생님 인터뷰에서 오랜 연륜과 수업을 향한 열정이 묻어납니다. 자유학기 주제선택활동을 준비할 때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 분과 물꼬방에서는 코로나19로 취소 위기에 놓인 연수를 온라인으로 살려냈습니다. 김지은 선생님의 연수 기획기는 유튜브 실시간 영상과 패들렛을 이용해서 수강생의 만족도가 높은 온라인 연수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은사님과 같이 해직 교사가 되었던 권오경 선생님이 ‘위대한 평교사’ 배창환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며 깊은 존경을 담아 쓴 글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배기연 선생님의 사는 이야기에서 다문화 학생들과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힌트를 얻습니다.
《함께 여는 국어교육》 여름호를 읽고 네 분 선생님께서 독자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일을 여럿이 하면 더 신이 납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어 여럿이 한자리에 모이는 마라톤 대회는 취소되었지만 정해진 기간에 각자 원하는 곳에서 달리기를 하는 버츄얼런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뛰고 있을 누군가를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달립니다. 초보 러너인 저는 선생님들이 동료와 함께 이 힘든 시기를 굳건하게 건너시길 바라면서 달리겠습니다.
편집위원 이정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