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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국국어교사모임 Jan 26. 2021

공유와 나눔으로 수업이 성장하다

김은규 부산 만덕고 poet612@hanmail.net

- 《고전 읽기》 수업 기록과 함께


2020년 시작을 앞둔 2월 말, 국어교사 8명이 둘러앉았다. 담당 학년과 교과를 나눠서 결정하는 시간. 어떤 분은 1년 생활을 결정하는 거라며 굳은 마음으로 나선다지만, 나는 어떤 과목이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교육과정표를 받아들었다. 뭐라도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마다 내 수업의 부족함을 느끼고 조금씩 고쳐 가며 지내왔다. 수업 나눔 동아리와 학년별 수업 공개가 1년 동안 쭉 이어질 테니, 그 활동을 하면서 수업을 발전시켜 가리라는 기대가 있기도 했다.

나는 2015 교육과정의 진로 선택 과목 《고전 읽기》를 선택한 2학년 24명의 학생들과 1학기 동안 주 4시간 만나는 수업을 맡았다. 교과서를 받으러 담당 선생님께 갔더니, 아, 웬걸 �《고전 읽기》 교과서가 없어요. 왜 그럴까요?�하셨다. 처음엔 살짝 불안했는데, 또 어느새 새롭게 기대가 됐다. 나는 이 수업 시간에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하면 나는 좀 힘을 덜 수 있을까? 참고라도 할까 싶어, 이전 교육과정의 교과목으로 편성되어 있었던 《고전》 과목의 수업 자료를 지역의 선배 선생님으로부터 받아 두고 설렁설렁 넘겨 보았다. 그리고 개학을 목전에 둔 2월 말까지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고전 읽기》를 밑줄 그어가며 세 번을 읽고 수업의 얼개를 대략 잡아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번져서 개학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업 변화의 시작수업 나눔 

발령과 함께 지역 국어교사모임에 발을 들여놓았다. 2주마다 모여서 수업 나눔을 하고, 청소년 독서교육을 공부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선배 선생님들이 손수 재구성해서 만든 수업 자료와 수업 흐름을 공유하는 거였다. 학습 목표를 효율적으로 재밌게 달성하는 데 적절한 읽기 자료를 고민하거나, 수업을 어떤 활동으로 구성할지 생각을 나누었다. 여러 사람이 생각을 모으다 보니 수업 자료가 근사하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든 학습지로 수업을 하고 나서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수업에 활용한 읽기 자료의 적합성, 발문, 활동지 구성에 대한 검토가 많았다. 거기서 나는 사범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수업�을 배웠다. 그때 내 관심은 어떻게 하면 수업이 실패하지 않을까였고, 이 관심의 대상은 학생이 아니라 수업을 하는 나에게 맞춰져 있었다. 잘 �가르치면� 학생은 잘 배울 거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으로 16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8년 3월에 지금 근무하는 만덕고등학교로 옮겨왔다. 만덕고등학교는 2015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한 혁신학교다. 혁신학교에서는 학생활동중심수업, 토론식 수업, 배움중심수업 등의 수업을 주로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약간의 부담감과 함께 수업을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 마침 그해 1월 전교조에서 여는 연수에서 배움의 공동체를 진하게 접할 기회가 있었다. 3일 동안 미리 동영상으로 찍어 놓은 수업 대여섯 개를 보고 이야기를 깊게, 편안하게 나누는 연수였다. 짧은 기간에 정말 많은 수업을 봤다. 게다가 수업을 보고 난 뒤에 나누는 대화는 그전과 너무 달라서 놀라웠다. 이전에는 수업과 교사를 평가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학생들의 배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교사의 �가르침�이 중심이 아니라 학생들의 �배움�이 중심이었다. 아, 수업은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이구나!

교사는 전문직이다. 특히 수업에서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선생님들 가운데, 나도 그렇지만 수업에서 어려움을 겪고 혼란을 겪는 분들이 많았다. 아니,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려 하는 경우도 많았다. 교사 본인 스스로 전문가라고 말하기엔 머쓱한 분위기도 있다. 그것은 수업을 배우지 못한 사범대학 교육과정의 문제이기도 했고, 폐쇄적인 교사 문화 때문이기도 했다. 의사들은 임상의 경험이 곧 실력이고 명성으로 이어지는데, 교사들에겐 임상 경험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제도와 문화는 거의 없었다. 뜻 맞는 교사 몇몇이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지난날 교육계의 풍경이었다.

교사의 수업 전문성이 향상되려면, 무엇보다 많은 수업을 관찰하고 이야기 나누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야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두려움이 옅어질 수 있다. 수업의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다.

우리 학교는 수업을 열고 협의하는 제도와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1년에 아홉 분의 선생님이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 약속으로 정해져 있고, 선생님들의 자발성에 기초해서 일상의 수업을 공개하고 공부하는 �수업 나눔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문화는 제도를 뒷받침하고, 제도는 학교의 문화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도 여전히 이런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분들이 적지만 있다. 그리고 수업을 여는 일에 동의하더라도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우리 학교에 근무하며 여러 차례 수업을 열었지만,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안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열면 열수록 부담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수업을 여는 데 안전함을 느끼는 학교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수업을 바라볼 때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문화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문화는 교사 공동체의 꾸준한 공부와 실천에서 생겨나는데, 거기에서 동료성이 회복되고 수업이 바뀐다. 


학생 파악을 시작으로 한 고전 읽기》 수업 

다들 경험했지만, 3월 개학이 미뤄지고 이후 온라인 개학이라는 너무나 낯선 상황을 맞이했을 때, 나는 우울했다. 대면수업을 하지 못해서도 그랬지만, 수업 공개와 협의, 수업 나눔 동아리 활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활동들을 하면서 내 수업을 돌아보고 발전시키고 싶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수업을 주제로 만나는 일들이 많기를 기대했는데, 그전처럼은 하기가 어려워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고전 읽기》도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애초엔 동서양 고전을 부분 발췌해서 읽고 토론하고 글 쓰면서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환경을 당분간 받아들여야 하고, 집단 감염병의 상황에선 수업의 재료와 방법을 더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생각과 상황이 궁금했다. 《고전 읽기》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고전 읽기》을 통해 배우고 싶거나 성장하고 싶은 점이 무엇인지, 각자가 생각하는 책 읽기 수준이 어떠한지를 구글 설문으로 조사했다. 학생들은 스스로 책을 잘 안 읽고 있고, 책을 좀 읽기를 바라며, 이 수업을 통해 책을 좀 읽는 사람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거의 책 읽기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나 역시 책 읽기가 삶을 성찰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힘을 길러 준다고 생각해 왔고, 마침 온라인 환경은 책 읽기에 적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학기 동안 책 3권을 읽고서 인간다움을 생각해 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첫 책으로 카뮈의 《페스트》를 골랐다. 책 선정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했다.

첫 온라인 수업이 4월 17일이었다. 세월호 수업을 구글 설문으로 했다.세월호를 소재로 삼은 김요아킴의 시 ‘세월이 잔인하다’를 낭송하는 음원을 녹음해서 제출하고, 인상 깊은 구절을 골라 그 이유를 쓰고, 세월호 참사 추모관에 기억의 글을 남기는 활동으로 마무리했다. 학생 활동의 결과물을 전체 교직원에게 공유했더니, 수업의 흐름을 여쭤 오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때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하나. �같은 교과 선생님들끼리 수업에 활용하는 플랫폼에 다 모이면, 그 자체로 수업 나눔과 협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내가 구글 클래스룸에 개설해 둔 《2020 고전 읽기》 플랫폼에 국어과 선생님 모두가 들어오시면 그것으로 수업 공유와 협의가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아쉬우나마 이렇게라도 온라인 환경에서의 수업을 서로 공유하면 막막했던 온라인 수업의 두려움을 걷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주변 선생님 몇 분과 이런 아이디어를 나누면서도 실천하지는 못했다. 나도 마음의 장벽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소설 《페스트》를 준비할 동안, 코로나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주제로 수업을 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종철 선생님의 ‘코로나 사태와 장기 비상 상황’(2020.3.6.), 서울교육청 오디세이학교에서 펴낸 자료 《0교시, 코로나 읽기》, 유튜브에 올라 있는 전문가의 인터뷰 영상을 활용해서 코로나와 생태, 코로나와 자본주의, 코로나와 소외를 생각해 보았다. 일생일대의 이 사건이 우리 삶과 뗄 수 없음을 생각하기에, 이 자료들은 아주 적절했다. 그 사이에 24명의 학생이 앞으로 읽을 《페스트》를 모두 준비했다. 책이 어려워서 학생들이 잘 읽을 수 있을까 염려하시는 선생님도 계셨고, 지금 상황이랑 비슷해서 재밌게 읽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도 계셨는데, 일단 시작은 괜찮았다. 


코로나 시대페스트를 읽다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에서 이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의 독서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읽는 책의 권수도 적었지만, 책의 종류도 판타지나 자기개발서로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학생들이 책을 주도적으로 읽고 이해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교사의 주도와 개입이 상당 부분 들어가는 것으로 수업의 방향을 정했다.

온라인 수업은 줌과 클래스룸을 둘 다 활용했다. 일단 책 읽기, 내용 설명하기, 질문하기는 줌으로 했고, 내용과 생각 정리 활동은 클래스룸에서 구글 문서나 설문지를 써서 학생들이 정리하게 했다. 책 읽는 활동은 대략 30분-35분 정도 했는데, 책 읽는 모습만 보여도 된다고 했다. 책 넘기는 것만 보여도 됐다. 나도 같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간혹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책장이 긴 시간 넘어가지 않는 학생은 따로 불러서 깨웠다. 30분 정도 책 읽기를 끝내고 나면, 학생들의 질문을 받았다. 앞부분에는 질문이 잘 없었고, 중간 이후부터 질문이 조금 있었다. 특히 파늘루 신부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추상적인 종교 이야기라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학생들이 읽기에 조금 지루해하거나, 사건 전개상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부분에서 중단을 하고 내용 확인, 인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제를 내서 평가 자료로 삼았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내는 학생들의 실력을 살펴서 이해 정도를 파악하고 보충 설명을 해 가는 식으로 수업을 했다.

학생들이 읽기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기에, 과제는 어렵지 않은 수준에서 단순 사실을 확인하는 것 중심으로 했다. 일단은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고, 읽고 나서 모둠별로 독서 대화를 하면서 인간다운 행동, 윤리적 행동, 사회적 재난에 대응하는 인간의 태도를 생각하는 게 핵심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설명과 함께 읽고 활동하는데 총 16차시가 들었다. 마지막 시간에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책 대화하기를 모둠별로 했다.

소설을 같이 읽으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고,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교사가 설명을 했기 때문에 인물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대화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리외의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모두가 후한 점수를 줬다. 간혹 개인의 삶이 거의 없는 리외의 행동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대화의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좀 문제적이었던 건, 페스트 상황에서도 개인의 이익만을 좇고 있는 인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들의 생각이었다. 윤리적이지 못한 인물의 행동을 �재난의 상황에서라도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옳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독서를 통한 삶의 성찰이라는 《고전 읽기》의 목표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윤리적 독서가 되지 않는 대화에는 개입을 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페스트》 읽기 수업은 첫째 책 읽기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둘째 페스트와 코로나 상황을 비교하면서 읽으며, 셋째 인물의 행동을 통해 인간다운 삶, 윤리적인 삶을 생각하는 것이 목표였다. 《페스트》는 사회적 재난 앞에서 우리 각자의 삶의 태도를 생각해 보기엔 적절한 소재였다. 지금처럼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를 앞에 두고 관련된 작품을 골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온라인 환경에서 교사의 일방적 강의나 교사가 자신의 학생을 고려한 노력이 없는 교육 콘텐츠로 하는 수업은 깊은 울림이 없다. 환경에 맞는 소재를 찾아서 교과 목표를 달성해야 학생들의 배움도 의미가 있고, 교사의 자존감이 지켜진다.

이 수업을 하면서 독서 활동은 온라인 환경에서 의미 있게 진행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생의 삶을 돌아보게 한 수레바퀴 아래서 

두 번째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였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기대했던 대로 학생들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수업의 목표를 �학생으로서의 삶을 생각하는 서평 쓰기�로 삼고, 수업을 했다. 줌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에서는 《페스트》를 읽을 때처럼 읽기와 개인 과제 위주로 진행을 했고, 등교 수업에서는 모둠별 토의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자기 생각을 확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을 다 읽는 데는 7차시가 걸렸다.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서로 나누는 활동을 주로 했다. 인물이나 사건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소설의 사건과 관련해서 자신의 삶과 관련한 질문을 5개씩 만들어 보라고 했다. 학생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생각해 보는 것이 책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한스의 아버지는 왜 한스에게 그렇게 공부를 강요했을” 라는 생각하기 쉬운 질문부터 “한스의 불행한 삶이 엄마의 부재와는 관련이 없을까?” 같은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질문을 만드는 학생까지 있었다. 그리고 “한스는 신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나는 왜 공부를 하나?”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질문을 만들기도 했다. 한 모둠이 4명의 학생인데, 이렇게 각자가 질문을 5개를 만들면, 20개의 질문이 모인다. 그 가운데 3개의 질문을 선택해서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게 하고 정리를 했다. 3개의 질문을 선택할 때는 20개의 질문 중에서 관련 있는 것끼리 묶어서 새로운 질문으로 해도 된다고 했다.

모둠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사람, 사진을 찍고 발표하는 사람. 이렇게 역할을 주니까 한 명도 소외되지 않고 모둠 활동에 참여했다. 대화를 나눈 내용은 발표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었다. 책 내용과 자신을 이해하는 활동을 하고 난 뒤에는 이 작품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모습 3개씩 찾아서 정리하는 개인 과제를 내서 사회적 문제까지 사고하도록 이끌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서평 쓰기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은 송승훈 선생님의 한 권 읽기 연수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클래스룸에 쓰는 방법을 안내하고, 서평을 메일로 받았는데, 수업 중에 정리한 것을 잘 엮는 것만 지도해도 학생들은 무난히 해내는 편이었다. 


평가배움을 정리하다 

《고전 읽기》는 진로 선택 과목으로 9등급제가 아니라 A, B, C 등급으로 절대평가를 한다. 평가는 기말시험과 과정평가 두 개로 잡고, 각 50%씩 반영했다. 과정평가는 읽기 영역 20%, 쓰기 영역 30%로 해서 수업 중에 한 학생 활동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평가 항목




반영 비율




채점 기준





읽기 포트폴리오




20




수업 시간 중에 고전을 읽고, 내용을 정리한 결과를 관찰한다.


- 읽기 포트폴리오가 주어진 활동을 모두 정리했을 경우 100점 부여


- 읽기 포트폴리오 결과물이 빠지는 횟수에 따라 5점씩 감점


- 성취 수준에 따라 감점할 수 있음







쓰기 포트폴리오




30




수업 시간에 고전을 읽고, 고전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는 완결된 글을 쓴다.


- 글쓰기 활동은 수업 시간을 활용해서 진행


- 최종 평가 자료는 고쳐쓰기 활동까지 하고 난 후의 자료가 대상임


- 글쓰기 준비, 글 쓰는 과정, 고쳐 쓰는 활동도 평가 내용에 포함


- 잘함 30%, 보통 50%, 미흡 20%로 하고, 잘함에서 2-3편은 아주 잘함, 미흡에서 2-3편은 아주 미흡으로 평가


- 평가는 최종 평가와 과정 평가의 합산으로 함


- 아주 잘함은 100, 잘함은 90, 보통은 80, 미흡은 70, 아주 미흡은 60으로 함


- 성취수준에 따라 매 등급 사이 중간 점수도 줄 수 있음





기말시험은 서술형 100%로 오픈북으로 했다. 채점은 제시한 조건의 충족 여부와 내용 서술 정도에 따라 조금씩 점수의 차이를 뒀는데, 대체로 60% 정도가 A등급이 나왔다. 과정평가와 최종 합산을 하니 A등급(80점-100점) 60%, B등급(60점-80점) 30%, C등급(60점 미만) 10%가 나왔다. 평가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 후하게 점수를 줬다 싶지만, 애초에 설정한 목표를 생각하면 적절했다. 다만, 대학에서 절대평가 성적을 어떻게 입시에 반영하는지 더 분명하게 알려지면 좋겠다.

기말시험 문제는 다음과 같이 두 문제를 냈다. 

[문제 1] 카뮈의 《페스트》에서 중요한 두 인물을 골라 ‘페스트’에 대응하는 방식을 쓰고, 자기 의견을 서술하시오. (50점)

《조건 1》 두 인물의 대응 방식을 정리할 것

《조건 2》 두 인물의 대응 방식의 차이가 드러날 것

《조건 3》 두 인물의 대응 방식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평가)이 드러날 것

《조건 4》 최소 2개의 단락으로 구성할 것 

[문제 2]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수레바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주인공 한스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하시오. (50점)

《조건 1》 한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서술할 것

《조건 2》 한스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추론해서 서술하고, 그 이유를 서술할 것

《조건 3》 이 책 제목에 쓰인 ‘수레바퀴’의 의미를 한스의 삶과 연관 지어 서술할 것

《조건 4》 최소 2개의 단락으로 구성할 것                     

채점 기준




배점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인물의 삶에 대한 이해가 완전하며 표현력이 뛰어날 때




50점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인물의 삶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하며 표현이 적절할 때




40점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인물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30점





위 조건을 부분 충족하고 인물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20점





내용 이해, 표현에 따라 부분 감점 가능함.







처음에 기말시험 방식을 안내했을 때, 학생들의 표정은 어리둥절, 무슨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얼굴이었고, 자주 시험에 대해서 물어 왔다. 시험이 끝나고 �이렇게 치는 거 어땠어?�하고 물었더니 �음, 잘 모르겠어요. 좋은 것 같기도 하고�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래서 구체적인 답을 듣고 싶어서 다시 �뭐가 좋았다는 거지?�라고 물었다. 학생은 �한 학기 동안 이야기 나누고 읽은 걸 정리하는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답해주었다.

나는 �정리하는�이라는 말에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래, 평가가 점수대로 순서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생각한 걸 정리하는 기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온라인과 등교 수업을 병행하면서 여러 가지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새로운 기기를 익히느라 몸과 마음이 긴장해 있던 때도 많았다. 그래도 24명 학생과 함께한 《고전 읽기》 수업은 나에게 교사로서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신뢰하는 마음이 됐고, 학생들의 배움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단단하게 갖게 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이런 나의 마음을 학생들 앞에서 들려주었다. 공부와 배움의 목적이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이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배움에 임하자는 당부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마지막 과제를 냈다. 《고전 읽기》 수업으로 스스로 배우고 얻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쓰게 했다. 

- 솔직히 페스트를 읽을 때 어려웠다. 이 수업을 통해 평소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고 흥미도 생겼다. 책 읽기 전 선생님의 해설 덕에 따라가기 수월했다. 사회 문제와 연관 지어 책을 읽으니 더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인생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얻은 것이 많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 생각을 나누고 말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진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워서 고전 읽기 수업을 잘 선택했다.

- 책을 읽으면서 나와 사회를 연결 지어 보는 게 흥미로웠다. 고전이 딱딱하지만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혼자서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다른 사람이랑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다 같이 같은 책을 읽고 모둠을 짜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많이 배웠다.

- 편한 마음으로 와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가는 수업이었다.

- 선생님의 마음, 인내, 생각

- 학교 교육과정에 책 읽는 과목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책 읽는 그 자체, 생각을 함께 나누는 과정,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부담이 없는 수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나는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배움�을 경험한 것 같아서 교사로서 아주 뿌듯했다.

기말고사 이후 2주간 배병삼 교수의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사계절, 2005)를 읽기로 하고, 학교 예산으로 책을 사서 나눠 주었다. 동양 고전을 읽고 싶어 한 학생들의 호기심도 반가웠고, 가까운 지역에 있는 저자와의 만남도 가능해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수업 계획을 현실성 있게 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뜻 있는 무엇을 수업에서 하려면 기말시험 뒤가 아니라 학기 중간에 해야 한다. 


수업교사의 존재를 드러내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난 1학기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길을 찾아갔다. 내가 잘 모르는 건 동료에게 물어서 도움을 받았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후배 선생님에게도 업무와 관련해서 생각을 묻고 방법을 찾은 경우가 많았다. 학교의 일들은 이렇게 서로 묻고 도우면 훨씬 가벼워진다. 수업도 마찬가지다. 수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평가 방법, 수업 장면을 서로 공유하고 협의하면 수업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이 일은 교사 스스로 노력하고, 학교가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협의의 문화가 어려움을 이겨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학기 교육 활동 성찰 모임에서 같은 교과끼리 협의를 하면서 잘 헤쳐 왔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혼자서 맡은 과목이라 동료들과 깊게 협의하지 못했지만, 간간이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국어과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수업의 길을 찾곤 했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2학기에는 수업 나눔 활동을 해 보자는 제안을 다른 선생님들이 한다.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 학생들의 성장을 수업으로 돕고 싶다는 마음이 그 말에서 읽힌다. 교사는 역시 수업으로 존재가 드러난다.  




글쓴이 소개

공동육아조합, 마을밥상조합, 학교협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럿이 함께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거기서 배우며 성장하고 있어요. 여섯 가구가 같이 집을 지어 사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고요. 가끔은 혼자서 지리산을 걸으며 침묵에 빠지는 것도 좋아해요.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마음에 새기고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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