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SU의 쉐어컬쳐
안녕하세요. 에디터 SU라고 합니다.
저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의 책을 거의 다 읽을 만큼 열성적인 팬 또한 아닙니다.
'김영하'작가님. 당신을 떠올리면 당신의 작품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을 거쳐 최근에 <여행의 이유> 등 꽤 많은 작품들이 생각이 납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2010년 1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활동한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나영석 PD와 함께 TVN <알쓸신잡>에 당신이 출연했을 때. 정확히 시즌 1에 출연했을 때가 2017년 6월이었으니까요. 팟캐스트를 중단한 시점과 맞물려 있습니다. 웬 뜬금없이 2017년까지 활동한 팟캐스트를 언급할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당신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사랑합니다.
물론 저 또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현재는 2019년을 지나 2020년에 접어들었으니. 그동안 다른 문학 팟캐스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만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개취일 가능성이 높은 부분이라 공감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통계를 봤거나 김영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을 통해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2017년 6월부터 업데이트되지 않는 당신의 팟캐스트를 중복해서 듣는 이가 꽤 많다는 것을요. 물론 구성은 단순합니다. 가끔 단편 소설을 다 읽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책의 일부분을 읽고 당신의 소회나 느낌, 또 선정된 책과 얽힌 에피소드 등을 말하는 방식이지만. 꽤 훌륭합니다. 그러니까 좋다. 괜찮다. 들을만하다. 보다는 훨씬 좋다는 의미의 훌륭하다는 건데요. 제가 볼 땐 당신의 목소리가 40%를 차지하고. 그다음은 당신이 연기자나 성우 출신도 아니지만 오디오 연기라고 할까요. 인위적인 연기 톤 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오디오 연기가 30%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30%는 솔직함입니다. 그건 유명 작가를 떠나 한 사람의 화자와 청취자 간의 교감이라고 표현할까요. 솔직하고 진지하고 담백한 느낌이 청취자로 하여금 당신과 함께 한다는 공존과 공감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너무 그립습니다.
<알쓸신잡>에 당신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움보다는 뭔가 불길한 감정이 앞섰습니다. 팟캐스트는 지금의 유튜브처럼 대안 미디어로서 주목받고 있진 않지만. 글쎄요. 대체재보다는 보완재 정도라고 할까요. 2017년도 팟캐스트 상황은 시사 프로그램과 <지대넓얕>. 레거시 라디오 방송의 재활용 콘텐츠가 상위권을 차지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의 팟캐스트는 문학 오디오 콘텐츠에서는 독보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늦게 업로드되는 것으로 유명한 당신의 콘텐츠를 기다리는 심정에서 <알쓸신잡> 출연은 더 이상 팟캐스트는 불가능하겠구나 싶은 암묵적 서비스 종료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왜 불길한 마음은 틀리지 않는 것일까요.
<오디오 *립>에 당신의 오디오 콘텐츠가 올라온다거나. <밀*의 서재>에서 당신의 오디오 콘텐츠를 발견할 수는 있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오디오 콘텐츠. 즉 프로모션용으로 제작하는 오디오 콘텐츠를 듣게 되면. 앞서 언급한 당신의 팟캐스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건 나쁘다라기 보다 즐겨 찾던 동네 백반집이 프랜차이즈 가게로 변한 뒤 처음 방문해서 먹는 밥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이거 아닌데.
https://tv.naver.com/v/3698604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는 당신의 유명세 덕일까요. 조심스러워진 언행과 <알쓸신잡>에서 만들어진 어떤 캐릭터와 섞인 묘한 또 다른 당신의 탄생은 소장 욕구에서 소비욕구로 변경된 느낌이었습니다. 나만 알던 맛집이 TV에 소개되어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복잡한 심정과 닮아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말도 안 되는 투정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많이 바쁘시고 방송국에서 또 다른 콘셉트로 당신을 섭외하기 위해 노력과 무엇보다 작품 활동을 위한 일련의 시간 또한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팟캐스트를 위한 오디오 콘텐츠 업데이트를 해줄 수는 없을까요. 제발요.
당신이 남긴 팟캐스트 콘텐츠들이 꽤 여러 방면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소설 속 이야기들과 해석들은 잠 못 이루는 울렁거림을 만듭니다. 현대인에게 울렁거림과 같은 감정적 동요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재와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신이 수면 팟캐스트라고 언급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산책용 팟캐스트가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매일 전쟁을 치르는 현대인들에게 사색을 제공하는 콘텐츠는 유용함을 넘어 치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AI가 추천해주는 모든 소비시장 속에서 큐레이션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저에게 아니 수많은 당신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팬들에게 당신은 작가이자 큐레이터였습니다.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사람 '김영하' 역시 당신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본질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가끔 팟캐스트를 통해 인사했던 허심탄회한 목소리가 당신의 실체와 더 가깝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오늘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적어도 5번 이상 반복해서 듣다가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없어서라기 보다 더 이상 당신과 교감을 느낄 수 없다는 자괴감? 그 화는 당신을 향한 화가 아니라. TVN 나영석 PD를 향한 원망 섞인 화였습니다. 만약 당신을 섭외하지 않았다면 팟캐스트를 지금까지 계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해석의 결과였습니다. 이 글을 당신이 읽을 일은 없겠지만. 행여 우연히 보게 된다면 팟캐스트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집 앞 산책로를 걸었던 수많은 시간 동안 언제 가는 당신이 팟캐스트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과 함께. 유치하지만 소망이라고 말할 정도로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유명세를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잠깐 잊고 있었던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으로 만약 돌아온다면 저를 포함한 당신의 팟을 애청했고 지금도 듣고 있는 수많은 애청자들의 삶이 풍성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합니다. 수면용이든. 산책용이든. 공부용이든. 그저 김영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소중한 콘텐츠가 사라지는 아픔이 없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