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SU Mar 01. 2020

넷플릭스 숨은 명작 추천 : 영화 <탈룰라>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오랜만에 영화로 인사드립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회사에서는 신규 서비스 준비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고 있어요.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그 와중에도 이틀에 한편 정도는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건, 너무 미국식 영화들이 많다고 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제3세계 영화나 유럽의 비주류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미국식 사고와 이슈로 구성된 영화가 물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독 방식이라 쉽게 영화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콘텐츠 소비 방식 또한 콘텐츠 밸류를 떨어뜨리지 안 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꽤 훌륭한 시리즈물이 있다는 점과 나만의 명작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즐거운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 영화를 보자마자 포스팅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탈룰라>입니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인공 '탈룰라'(엘런 페이지 분)는 그녀의 밴에서 먹고 자는 홈리스 여성입니다. 어느 날 남자 친구가 떠나자 남자 친구를 찾기 위해 남자 친구 엄마인 '마고'(앨리슨 제니 분)의 집으로 찾아가는데요. '마고'는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유한 작가입니다. 아들도 떠나고 남편도 떠난 빈자리엔 유일한 애완 거북이만 남아 있는데요. 거북이조차 삶을 마감하며 '마고'를 떠나게 됩니다. 성공한 삶으로 보이는 '마고'의 삶은 외롭고 고독한 삶입니다. '탈룰라'는 '마고'를 만나 도움을 청하지만, '마고'는 거절하며 쫓아냅니다. '탈룰라'는 배고픔을 못 참고 호텔에 들어가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훔쳐먹습니다. 그러다 '캐롤린'(태미 블랜처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캐롤린'은 '탈룰라'가 청소부인 줄 알고 들어오라고 하며 아이를 봐 달라고 합니다. '캐롤린'은 술을 마시고 있었고, 자신의 딸을 '탈룰라'에게 맡깁니다. 갓난아기를 놓고 나갈 수 없었던 '탈룰라'는 어쩔 수 없이 '캐롤린'의  딸을 돌봐주게 됩니다. '캐롤린'은 만취해서 호텔 숙소로 들어오고, '탈룰라'는 아이를 놓고 나가려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고민 끝에 유괴를 결정하게 됩니다. 탈룰라는 '마고'를 다시 찾아가 당신 아들의 딸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마고'는 '탈룰라'와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들은 함께 동거를 시작합니다.

좋은 영화의 기준을 정하기란 너무 어렵죠. 어쩔 땐 특정 영화가 왜  좋은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때도 많습니다. 요즘에는 그게 배우의 역량에서 나오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는데요. 극 중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배우가 노력하는 것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겠지만, 왜 인물이 이렇게 말을 하고 행동할까를 배우 스스로가 완전히 동화되지 않으면 관객들은 개연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결국 배우로 시작해서 배우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 <탈룰라>에서 <주노>로 유명한 '엘런 페이지'의 연기를 보며 더욱 극 중에서 배우가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한 여성이 홈리스로 산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까라는 현실감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도적 가족의 한계

일본 감독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많은 작품에서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역할, 그리고 제도의 허구를 통렬하지만 가슴 따뜻하게 작품에 반영해 왔는데요. 그의 작품 <어느 가족>에서도 연대로 뭉친 가짜 가족이 오히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정상적인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홈리스로 살며 정처 없이 방황하는 탈루라의 삶, 남자 친구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탈룰라는 바로 거절합니다. 이는 정상적인 가족에서 자라진 못한 탈룰라에게 결혼이란 부정적인 트라우마일 뿐이죠. 어쩌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2세가 태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결혼을 거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 <탈룰라>는 결혼 자체를 믿지 않는 '탈룰라'의 모습에서 제도적인 가족의 한계를 영화의 기본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고'와 '탈룰라', 그리고 유괴한 아이와의 결합은 겉으로 봤을 때 도덕적이거나 정상적이진 않지만, 이들이 경험했던 가족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개인의 결핍을 채워주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성들의 이야기

'탈룰라'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마고'는 떠나버린 남편과 아들의 빈자리를 이들이 채울지 모른다는 기대를 합니다. '마고'입장에선 자신이 꿈꿔온 가족은 붕괴되었고, 좌절과 외로움의 삶에서 '탈룰라'의 출연은 새로운 가족에 대한 기대감이자 실패한 결혼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탈루라'가 아이를 유괴,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릴 적 본인이 겪었던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던 기억 때문입니다. '캐롤린' 역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심각한 외로움과 산후 우울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피해자입니다. 단순히 '캐롤린'이 아이를 방치했다고 비난하기 전에 그녀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캐롤린'의 남편은 뒤늦게 나타나 '캐롤린'을 비난합니다. '캐롤린'에게 남편이란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던 그림자 같았던 남편일 뿐입니다. '마고'에게 남성이란 언제든지 본인이 원한다면 가족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무책임한 사람들인 것이죠. '탈룰라'의 존재는 '캐롤린'에게 육아의 책무를 혼자서 지고 있는 고통을 아이와 분리시켜주면서 가족의 해방을 제시하고. '마고'에게는 무책임한 남성들로부터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제공함으로 혈연 가족으로부터의 해방을 부여합니다. 영화 <탈룰라>는 현대사회에서의 결혼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한계를 3명의 여성을 보여주며 솔직하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더 이상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 2세를 갖는 필연적인 삶의 구성요소로서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아예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인데요. 단지 혈연으로만 묶여야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처럼 동성 친구와의 결합 또는 입양 제도를 통해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만드는 것, 물론 결혼 자체를 하지 않고 혼자만의 삶을 영위하는 것 또한 우리는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탈룰라'가 꿈속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할 때 붙잡았던 차 손잡이. '마고'가 공원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다 잡은 나무줄기는 우리를 구속하는 어떤 현실 제도와 개인 간의 갈등을 의미합니다. 나를 붙잡았던 관습적인 제도를 과감히 뿌리친다면 삶의 새로운 해방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SU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리운 '김영하' 팟캐스트를 위한 진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