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해지되었다는 소식에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집콕 생활을 이어가실 듯해요. 칩거 생활이 이어지면서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시간이 길어진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무분별한 SNS 생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만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보게 되어 여러분과 함께 그 내용을 공유할까 해요. 이 포스팅을 접하게 된 구독자 분들은 주변의 많은 분들과 <소셜 딜레마>를 시청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저녁시간을 보내는 건 어떠실까요?
넷플릭스는 <소셜 딜레마>를 두고, 중독과 가짜 뉴스에 시달리는 현대사회. 실리콘 밸리 전문가들의 자신들이 만든 소셜미디어를 주의하라는 용기 있는 경고.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한 영화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지금과 같은 좋아요, 또는 추천 동영상과 같은 알고리즘을 만든 당사자들의 경고는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그 알고리즘을 만들기 전으로 회귀할 수 있는 확장 프로그램을 다운 받기를 권고하며, 각종 푸시 알림을 끄기를 당부합니다. 갑작스러운 경고에 독자 여러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실지도 모릅니다. "내 핸드폰을 마음대로 클릭하고 스크롤하는 것이 무슨 문제지?", "나를 위한 추천 동영상을 보는 건 별 일 아니잖아?" 하지만 알고리즘은 여러분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사회현상들이 어쩌면 거대 IT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야기된 것이라면 말이 달라질까요? 알고리즘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알고리즘은 곧 코드에 내재한 의견이라 하는데요. 최근 만들어진 단어 그로스 해킹, 머신러닝은 결국 막대한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것으로 연결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부유한 IT기업들, 그들은 왜 돈을 벌까요? 실리콘 밸리에 몸담았던 이들은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당신이 상품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더 오래 보는지,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는지, 평균 사용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스스로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인공지능은 우리를 하나의 자원으로 보고 채취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뉴런들로 구성된 거대한 뇌를 만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이 역시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이 모든 내용이 음모론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모든 사업이 늘 꿈꾸는, 성공이 보장된 광고 공간을 갖는 것이 용이해졌고, 감당할 자본이 있는 기업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점진적으로 바꾸는데 이미 막대한 광고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광고 감독을 꿈꿨고 현재 IT기업 취직을 꿈꾸고 있는 저로서는 상당한 충격과 회의가 들었습니다. 10년 전의 전문가들도 회의를 느꼈는데, 나라고 윤리적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허무함을 나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소셜 딜레마>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고 제 나름의 결론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윤리적 디자인을 요구하는 인간적 기술연구소의 수장 크리스탄 해리스는 지메일 서비스 팀 재직 당시를 회상하며, "그 누구도 덜 중독적이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이 회상 신은 <소셜 딜레마>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는데요, 저는 그의 말에서 상당한 충격을 얻고 맙니다. 전 세계 20억 명의 아침을 깨우는 메일 알림 설정의 디자이너가 20~35세 50명 백인 남성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 말이죠. 물론 디자이너 구성의 편중을 핵심 화두로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더 거대한 담론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요.
1996년 이후 출생자를 일컫는 Z세대에 포함되는 제 경우에, 중학교 2학년 당시 페이스북에 처음으로 가입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처음 사게 되면서 생긴 일이었죠. 미얀마는 지금도 핸드폰을 개통하면서 대리점 기사가 페이스북 계정에 로그인하고 화면에 띄워주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미얀마 국민에게 인터넷은 곧 페이스북인 셈이죠. 이러한 플랫폼의 단일화는 정치적, 개인적 분극화를 일으키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며 고립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한 전문가는 가장 단기적으로 미국의 내전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와, 고등학교 2학년 당시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었으며 2년 전에는 트위터 계정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플랫폼에 계정이 있기 때문에 주체적인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저는 시스템에 속고 있었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1년~2013년 사이 미국 청소년들의 극심한 우울 증세가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10대 소녀 중 10만 명이 자해로 인한 입원을 겪었으며 이 수치는 10대 중반에서 62% 증가, 10대 초반에서 189% 증가하며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더 끔찍한 건 자살률도 함께 상승했다는 것인데요. 자존감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청소년 시기에 이를 장악하는 소셜미디어를 접한 것은 Z세대가 최초입니다. 인간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비평에 관심을 가지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1만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의 비평을 인식하도록 발전해 왔을까요? 또는 5분마다 사회적 인정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을까요? 인간은 아직 이를 감당할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따분할 수도 있던 다큐멘터리에 흥미로운 서사를 녹여낸 <소셜 딜레마> 드라마는 주로 전직 개발자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가족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식사시간이라도 스마트폰을 보지 말자며 어머니가 스마트폰을 가둬둔 통을 망치로 깨부수는 둘째 딸, 한동안 보지 못한 피드를 탐독하느라 늦잠을 자는 것은 물론, 정치적 선전에 과도하게 노출된 탓에, 극 중도파 시위에 참여한 아들과 폭력적 시위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 이모가 함께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결말은 정말이지 처참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데요. 가상의 상황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면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현실로 느껴져 여전히 여운이 남는 장면입니다.
사실 소셜미디어는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장기기증자를 찾았고, 사회문제를 해결했으며, 한동안 만나지 못하던 사람과 당장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었죠.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 댓글과 좋아요 기능 역시, 사회의 따뜻함과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음을 '좋아요' 버튼 개발자는 말합니다. 이렇듯 소셜미디어는 연결되고자 하는 인류의 생물학적 본능에 기반해 만들어진 서비스였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이를 인간의 취약점으로 판단, 적극적이고 상업적인 형태로 이를 이용해왔죠. 이를 단순히 자본주의의 말로라고 보기엔 2016년 미 대선의 결과, 홍콩 민주화 시위와 같은 세계적 이슈와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타겟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독재 주의자 또는 전제 주의자의 손에 들어갔을 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눈을 뜰 필요가 있습니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고 아서 클라크는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집단적 의지야말로 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 말합니다. 저 역시 이 말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다큐멘터리 시청 중반에는 그동안의 인터넷 생활에 대한 근본적이고 충격적인 감정들이 밀려왔지만, 제 나름의 결론은 이 모든 것을 피하지 말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해답을 모색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인문학도인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역사와 지금의 상황을 놓고 역사에서의 해답을 모색함과 동시에 새로운 기술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강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더 깨달을 필요를 느꼈습니다.
다른 매체에 비해 소셜미디어는 여전히 법망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도 많습니다. 한 전문가는 수도나 전기처럼 사용하는 만큼 요금을 내는 방식으로 기업의 데이터 축적에 대한 세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합니다. 신선하고 꽤나 솔깃한 방법 같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인터넷에 처음 보급된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언급되고 있는 개인 정보보호 문제가 완화될지도 모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려다간 재정적 한계에 봉착하게 될 테니 말이죠.
버크민스티 풀러는, "유토피아가 될지, 모두 사라지게 될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길의 유토피아가 있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덧붙여 저는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난 후 시간 예산안을 작성하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했습니다. 각종 알림도 가능한 수신하지 않기로 설정을 바꾸었고요. 여러분도 나름의 방법으로 건강한 소셜 라이프와 보다 값진 삶을 영위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