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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04. 2020

<그리고 베를린에서>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 넷플릭스 추천작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여러분 길고 긴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늘 연휴의 끝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최근에 정말 인상 깊게 본 드라마를 한 편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한 여성이 누군가에 의해 머리를 깎이고 있고 눈에는 깊은 사연이 가득해 보이는데요. 이 작품은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그리고, 베를린에서>입니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넷플릭스 4부작 드라마로 뉴욕의 윌리엄스버그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독일로 도망가 자신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포스터 속의 주인공 에스티는 어떤 이유로 머리를 깎았을지, 그가 속한 하시디즘 공동체는 무엇일지, 그리고 독일에 간 에스티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함께 이야기 나눠봐요. 그럼 오늘도 함께해주세요.

에스티가 속한 하시디즘은 공동체는 정통파 유대교 신자인 하레디의 분파 ‘하시디즘’의 유대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엄격히 규정하여 인터넷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유대교의 율법을 공부하도록 하며, 생활도 유대교 신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에서만 이뤄집니다. 이런 폐쇄적 공동체에서 살아간 에스티는 스마트폰도 없고 유튜브도 볼 수 없으며 소시지를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복장도 머리도 독특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요. 남성은 털로 된 커다란 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은 턱까지 길러 돌돌 말린 모습입니다. 결혼한 여성은 다른 남자들이 미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머리를 밀게 되며 포스터의 모습은 주인공인 에스티가 결혼을 하여 머리를 미는 장면입니다.

이들은 결혼도 공동체 내에서 부모님들이 정해준 사람들끼리 진행합니다.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된 아픔을 갖고 있어, 많은 유대인 자손을 얻기 위해 여성들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해요. 따라서 여자는 남편의 몸을 즐겁게 해 주며 그 대가로 아이를 가져 유대인들을 늘리는데 ‘사용’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여자의 즐거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의무와 강압적으로 이뤄지는 성관계에 보다 못한 에스티는 ‘탈무드에서 남편은 반드시 아내가 기쁨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쓰여있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여자가 탈무드를 읽어선 안 된다고 화를 냅니다. 결혼을 하면 조금이라도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던 에스티의 기대는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엄마가 있는 베를린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에스티는 우연히 공연장에서 흘러나온 클래식 연주를 듣고 음악과 사랑에 빠집니다. 베를린으로 오기 이전에 남편 몰래 피아노를 배워왔던 에스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에 합류하고 싶다는 자신만의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된 오케스트라 친구들과 함께 강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이때 한 친구가 강 건너편에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에서 죽이자고 결정한 회의가 이뤄진 저택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 강에서 수영을 하냐고 묻는 에스티에게 친구는 ‘강은 죄가 없어’라고 말하죠. 쓰고 있던 가발을 벗어던지고 강에 들어가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은 에스티의 자유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이 작품의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베를린으로 도착한 에스티는 음악을 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공동체에 들키지 않고 낯선 타지에서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줄거리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 회차에 약 5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유대 공동체에서, 21세기 지금, 그것도 뉴욕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충격을 전해줍니다. 믿기지 않는 현실을 처음 마주하며 어느새 에스티의 삶의 진정한 자유와 꿈을 응원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일어난 점이었는데요. 데보라 펠만이라는 여성이 자신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라 하니 그 사실을 알고 보니까 에스티의 삶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종교를 벗어나도 우리 주변엔 알게 모르게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학벌만을 강요하는 사회. 꿈을 좇으라 하지만 꿈을 꿀 시간조차 주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 에스티를 통해 보여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티는 우리 모두에게 말합니다. “If not now, then when? If not me, then who?”(지금이 아니면 언제? 내가 아니면 누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은 귀중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집니다. 이 여성의 벅차고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 지켜보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가치와 꿈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한 번쯤 대담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에스티처럼, 데보라처럼  우리도 자신만의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에디터 SU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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