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SU Oct 10. 2020

김봄 에세이,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끝도 없이 나오는 ‘힐링’ 에세이가 지루하신가요? 아니면 경쟁을 강요하는 에세이에 지치셨나요. 알맹이는 없고 저마다 제 자랑하기에 바쁜 에세이에 싫증 나신 분들을 위한 에세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자칭 타칭 ‘보수 엄마와 진보 딸의 좌충우돌 공생기’를 닮은 책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입니다.

“엄마! 다 가짜 뉴스라니까. 그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네, 있어. 그거 유튜브 같은 거 계속 보고 그러니까 지그 세뇌돼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목소리가 커지자, 손 여사는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듯이 주먹을 들었다 말았다.

“이 빨갱이. 너도 큰일이다.”손 여사는 개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정치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 이제부터 엄마랑은 절교야.”
그때, 손 여사 왈“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중에서     

이 대화는 놀랍게도 정치 이야기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치킨을 뜯다가 시작된 대화죠. 치킨을 먹다가 난데없이 정치싸움이라니, 웃기기도 하지만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죠. 우리도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정치문제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읽었던 에세이들은 대부분 ‘내 생각이 맞아!’라고 선전하거나 나이브한 측면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에세이도 문학의 한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 봐왔고요. 그래서 에세이란 ‘자기 개발서와 함께 절대 내 돈 주고 사지 말아야 할 책’이란 편견이 있었습니다. 일전에 김봄 작가의 《아오리를 먹는 오후》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었고, 그래서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큰 맘먹고 책을 구매했었습니다. 재미없으면 가차 없이 별점 1점을 줄 생각이었죠. 책을 받자마자 펼쳤고, 저는 조용히 별점 5점짜리 후기를 남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답니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부마다 명확하게 구획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소설처럼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게 특징이죠. 손 여사와 작가인 ‘나’의 정치견해 차이로 시작한 글은 점점 가족들 간의 이야기로 범위를 넓혀갑니다. 인생이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처럼, 에세이에 나오는 사건은 극적입니다. 배를 잡고 깔깔 웃을 희극적인 이야기,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만큼 아려오는 비극적인 이야기. 자기 전에 생각나 피식 웃고 말 이야기. 주변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자아성찰적인 이야기. 지역감정, 정치성향, 반려동물, 사랑, 그때 그 시절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일들……. ‘나’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지점들을 지나 ‘나’로 귀결됩니다.      


전체적으로 재밌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벼운 즐거움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현대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구조적인 문제를 꽉꽉 눌러 담고 있기 때문이죠. 연령대를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담담하고 때론 톡톡 튀는 유머를 가진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가 이따금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의 문제나 ‘나’에 관해 말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 속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서입니다. 

내용이 만족스러운 것은 물론 자세를 바꿔가며 속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고양이 ‘아담’과 ‘바라’가 너무 귀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 묘미를 가장 잘 살린 이야기가 4부에 실린 ‘아버지와 회초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궁금하시다고요? 직접 사서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어떤 일은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습니다. 특히 구조적인 문제는 더 그렇죠. 다음 세대로 넘어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그런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갈등, 해묵은 기억과 공생합니다. 우린 어떻게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하니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협과 공생이 아닐까요. 목청을 높이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싸운다 할지라도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지켜주는 것.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묵직한 에세이, 지금까지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로하는 시,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