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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19. 2020

작가 노희경의 필모그래피 4선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잡는 드라마 작가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오늘은 인간사의 지난한 고됨과 낭만적인 사랑을 동시에 그리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필모그래피 중 네 작품을 엄선해왔습니다. 아직 보지 않은 작품이 있다면 한 편 정주행 보시는 건 어떨까요?


1. 그들이 사는 세상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단어  ‘그사세’의 장본인, 그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걸맞게 화려한 조명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와 그 뒤에서 숨 가쁘게 시간을 보내는 PD와 작가를 비롯한 드라마국의 제작 현실을 담고 있는 드라마인데요. 드라마가 곧 인생이 되게 하라는 선배 정지오(현빈)와 그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존경하는 선배에게 곧 설득되는 주준영(송혜교)을 주축으로 진행하는 그들이 사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절망적이고 복잡한 상황,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점철된 자신을 한심해하는 인물들의 모습으로 공감을 얻는 한편,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랑 이야기로 제목에 걸맞은 드라마라 평가받기도 하는 작품입니다.

2008년 당시만 하더라도 대중들이 늘상 보는 화면의 뒷켠에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말하는 작품이 드물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죠. 외모로 인기를 얻은 현빈과 송혜교가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연기력을 평가할 수 있는 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송혜교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주준영 역할이 실제 자신과도 닮았다고 밝힌 바 있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방송국 어딘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냄과 동시에 카메라 속 다른 인생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 벅찬 일이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며 끝까지 작품을 만들어내고 높은 시청률이라는 성취까지 거두었을 때, 함께 그 기쁨을 나눌 동료가 곁에 있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겠지요.


2. 괜찮아 사랑이야

좋아하는 드라마를 물었을 때 고민 없이, 가장 먼저 대답하게 되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입니다. 지금 보면 필터링이 필요한 장면들이 몇몇 있지만, 당시 정신과 의사와 뚜렛 증후군, 품행 장애 등의 인물들을 꾸준히 노출시키며, 우리 모두가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살아감을 알려준 작품인데요. 처음 봤을 땐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끼면서 봤고 두 번째에는 괜찮다는 위로를 받으려 봤고, 그다음에는 인물 저마다의 서사를 곱씹으면서 보게 되는 상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랍니다. 공효진이 맡은 지해수, 조인성이 맡은 장재열 모두 자신만만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극복하지 못한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점이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

행동치료라는 명목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향해 토마토를 던진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시각적인 대비 효과를 활용해 시청자들까지 즐겁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축제와도 같은 씬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가장 아끼는 씬 중에 하나랍니다. 사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주인공들 사이의 티키타카와 명대사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작품이지요. 저 역시 말장난들 사이에 담긴 진심을 찾고, 위로를 얻은 적이 많아서 대사를 필사한 적도 있답니다. 지해수의 말을 포스트잇에 모아두는 장재열처럼 말이죠. 그러나 정신세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인 만큼 대화 장면만 지속되다 보면 아무리 좋은 명문들이 이어져도 자칫 피상적인 이야기의 나열이 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토마토 싸움 씬 뿐만 아니라, 축구 응원을 하다 바람피우는 남자 친구에게 과자 봉지를 던지는 장면, 호스로 물장난을 하는 역동적인 장면들이 종종 나와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주었다는 점에서 노희경 작가가 작품의 완급조절을 슬기롭게 해냈다는 생각입니다.


3. 라이브

경찰 드라마이지만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완성형 경찰이 아니라는 점에서 참신했던 작품. 같은 스펙의 남자 동기가 취업하는 것을 보고 공정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엄마를 위해, 저마다의 목표 달성을 위해 경찰이란 길을 선택한 이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번의 계절을 그린 라이브 1화는 대한민국에서 수험생활 또는 취업준비를 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 가능한 상황과 대사를 제시하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여러 뉴스와 기사들은 무능한 경찰, 비리 경찰을 조명하곤 하지만 여기에는 사명감 하나로 새벽까지 순찰을 이어가고 신고 접수에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는 경찰들이 있습니다. 일반 사기업의 인턴쯤이라 볼 수 있는 지구대의 시보 생활을 하는 이들과 그들의 사수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제가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꼬박꼬박 챙겨볼 만큼 매력 있는 드라마였는데요. 저마다 경찰이 된 이유가 다르듯이 경찰을 하면서 겪은 사건과 경찰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이유 역시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마다 사명감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 역시 불가피한 것이지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버텨내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4. 디어 마이 프렌즈

볼 때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마음이 아파서 아직 끝내지 못한 드라마. 뭐 사실은 고현정과 조인성이라는 배우 자체가 판타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 10~30대 출연자가 대부분인 최근의 미디어와 비교했을 때 40대 인물이 가장 어린 나이로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화제였지요. 다만 ‘꼰대’가 언급되는 게 지금의 정서와 약간 다르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단어라는 것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재질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꼰대라는 말로 형용하기엔 짜증 나지만 사랑스러운 어른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엄마의 친구들이 부담스럽기만 한 완(고현정)의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이기적이지만,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라면서 응원하게 되는, 시청자에게 양가감정을 부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미디어가 한 인간의 성장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면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선배라는 호칭과 동시에 반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주준영 역의 송혜교를 동경했던 예전도 생각났습니다. 지금에서야 자격지심을 가진 꼰대로 보이는 현빈도 당시에는 괜찮은 선배 같았지요. 그사세와 괜사가 보여준 저마다의 사랑과 인생의 희로애락 역시 아프지만 닮고 싶은 부분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수용자였던 당시의 제가 간과하고 넘어간 게 있었으니 드라마가 비춰주지 않는 인물들의 삶도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보고 싶은 데만 매몰되어 주준영과 정지오, 지해수와 장재열의 불우한 가정환경은 외면한 채 30대가 되어 자신의 커리어와 사랑을 펼치고 있는 캐릭터들의 인생을 맹목적으로 멋지다고 좇은 것. <라이브>와 <디어 마이 프렌즈>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 현실이 실제로 존재해주길 희망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는데요. 어쩌면 사람 냄새나는 작품이 최고의 판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희경 작가도 결국 사람인지라 열렬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일도 최근 있었는데요. 필자 역시 간접적으로 듣게 된 일화이긴 하지만 꽤나 충격을 받은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내재화된 부분들이 많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한편 노희경 작가의 신작은 신민아, 한지민, 이병헌, 남주혁이 출연하는 <here(가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의 연기로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NGO 기구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의 방식대로 어떻게 녹여낼지 궁금해지네요. 그럼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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