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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an 15. 2024

엄마의 연락

#치앙마이 일년살기

22년 7월, 생일에 집에 오라는 엄마의 연락에 이성의 끈을 놓고 한동안 집에 가지 않겠노라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참다 참다가 터졌다.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불안했다.


엄마는 나만 잡고 팼다. 그것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주는 일이 되었건 혹은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가 되었건 엄마는 나만 붙잡았고 요청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명령했다.


답변이나 해결이 늦어지면 참지 못하고 해결이 될 때까지 계속 닥달했다. 최소한 회사 근무시간에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으나 소용없었다.


힘들고 속상하다. 몸이 아프다. 무엇이 필요하다. 나는 못하니까 니가 해줘. 당장 해결해줘.


자신의 아들이나 남편에게는 절대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나만 붙잡았다.


엄마는 내 전담 일진 같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러한 엄마의 행동은 나이 서른이 넘어서 뒤늦게 독립을 한 이후 더 심해졌다. 주말마다, 김장/명절/생일 등 온갖 이유를 만들어 연락을 했다. 원래 같이 살 때는 챙기지 않던 행사나 기념일을 갑자기 챙기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주로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해서 고부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아닌가? 그 일은 며느리가 아닌 장녀인 나에게 발생했고 엄마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나쁜 딸'로 치부되었다.


독립은 했지만 엄마의 연락에 스트레스를 받느라 내 집에서도 전혀 쉬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이것은 회사 스트레스와 겹쳐지며 메가톤급의 우울증으로 발전했고 알콜 의존증도 심해져 갔다. 미쳐버리기 딱 1cm 전, 엄마에게 '한동안 집에 가지 않겠다'라고 힘겹게 내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걸, 엄마는 두 달 정도가 지나자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연락 안 할 거냐, 반찬 가져다주겠다, 김장김치 가져다주겠다, 명절에 집에 와라, 연말정산 해달라 등등.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연락이 이어졌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대화 요청은 없었다.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일방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내 말을 들어줘. 너의 존재의 이유는 그것뿐이야.


엄마의 연락이 나에게는 온통 이렇게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차마 카톡을 차단하지는 못해서 엄마의 연락을 확인 하고는 있었고, 그중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요구에는 응답을 했다. 아마 나의 이런 태도가 엄마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 원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있으니 엄마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거나 남편이나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




오늘은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잠시간 화가 났지만 삼성 매장으로 바로 가서 어떤 모델을 사라고 알려준 후 돈을 보내주기로 했다.


화가 난 이유는 핸드폰을 사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핸드폰을 새로 사고 싶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상황이 상상이 되어서 화가 났다.


우선 아빠는, 엄마의 남편은 절대로 엄마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않을 것이다. '니 딸한테 연락해라'와 같은 식으로 외면할 것이다. 혹은 '핸드폰도 쓸 줄 모르는 것이 무슨 새 핸드폰이냐'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언젠가 아빠가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면서 '너는 이런 것도 할 줄 모르지'라고 조롱하던 것이 떠오른다. 정말 나쁜 놈이다. 엄마를 대하는 아빠를 보면서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아빠는 너무 당당하게 나쁜 놈처럼 굴었다.


아들, 엄마가 늘 '불쌍하다'라고 말하는 아들 역시 돈이 들어가는 일 앞에서는 짜증을 내고 엄마 요청을 들어주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것이다. 얘는 자기 술 사 마실 돈이나 여자친구와 여행 갈 돈은 있으면서 엄마 핸드폰을 사줄 돈은 없을 것이다.


엄마 스스로 핸드폰을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자칫 비싸게 살까, 덤터기를 쓸까 봐 걱정할 것이고 혼자서 핸드폰 구매를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들이 이런 걸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성격이 급하다. 이것저것 비교해 보다가 짜증을 낼 것이고 이런 성격 때문에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만 붙잡고 매달리는 경향도 있다.


이 상황이 눈에 보이니까 내가 핸드폰을 사주는 것으로 빠르게 해결을 했고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엄마에게 잘해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다니.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인 걸까?


변명을 하자면 나는 엄마에게 감정적으로 돌봄을 받은 기억이 전무하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아빠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것과 이를 외면하는 엄마 밖에 없다. 엄마와는 추억도, 따뜻한 대화를 나눈 기억도 없다. 기억하자면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차가웠고 텅 비어있었다.


내가 생겨서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 때문에 원치 않는 남자와 결혼해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엄마를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이것도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성인이 되어 돈도 스스로 벌고 아는 것도 많아진 이후, 엄마는 나에게 너무도 당연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감정을 받아내는 것에서부터 잡일을 처리하는 것까지. 나는 아빠랑 동생이 저 모양이니 나라도 잘해줘야지, 동정심인지 의무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엄마를 대했다.


힘들고 지치는 이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왼손 하나쯤은 잘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마음을 엄마에게 말해볼까 싶었지만 오늘은 핸드폰을 새로 사고 그것도 내가 사준 것이라 기분이 좋을테니 그 감정을 망치지 말자, 목구멍 앞까지 나온 말을 다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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