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일년살기
언제부터인가 제시간에 기상하지 못하고 있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집에 들어와서 점심을 먹고, 이 글을 쓰려고 앉아서 초고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또 '내가 왜 불안한가'에 대해 집중했다.
가족으로 인해 불안하고, 언젠가 다시 엄마에게 끌려서 집으로 불려 들어갈 것에 대해 불안하고. 그리고 그것은 불안을 넘어선 공포고.
그러다 잠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글을 보고 순간 속이 편안해졌다.
원래 나는 불안감 때문에 항상 은은하게 속이 불편한 사람인데 이 문구를 보고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부모님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데 나는 왜 이리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해서 내 삶을 고통으로 밀어 넣는 걸까? 부모님을 통제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그건 나의 헛된 욕심 아닐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 신경 쓰자. 부모님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불안을 해결하고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엄마보다는 내가 더 우선이다.
이 아름다운 날씨의 치앙마이에서 불안함만 생각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이 한심하단 말인가? 그 어렵다는 금주도 해내는 중인데 내가 왜 한심한 거지?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계속 금주에 성공한다면 그것만 해도 충분한 업적이다. 나는 가장 통제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을 통제해 냈다.
잘했네, 잘했고 나 정말 잘하고 있네.
나의 오늘을 구해준 문장은 '데일리 필로소피'라는 책에서 읽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스토아 학파'라는 철학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책으로 엮었다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고민이 지금에도 소용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의 고민도 이미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해결을 위한 답이 나와있다는 것이고 나는 답안지를 보고 나한테 적용시키면 되지 않을까?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내 고민의 답이 이미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것이라면 더이상 모르는 것,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