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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an 23. 2024

금주 150일 차 맞이 소소한 끄적거림

#치앙마이 일년살기

날짜를 세어주는 어플에 152라는 숫자가 찍혔다.


치앙마이 도착 후 5일 만에 금주를 시작했으니 치앙마이에 온 지도 벌써 5개월이 다 되었다는 의미.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소주 한 병을 처음 마신 이후 장장 16년간을 음주생활을 했다. 150일간 금주를 하고 보니 대체 왜 그렇게 술을 마셔댔을까,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치앙마이라는 환경에서의 금주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치앙마이는 음주의 천국이라 할 수 있을만큼 도처에 저렴한 술이 널렸지만 술의 유혹이 있을만한 환경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그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술을 마셨다면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왁자지껄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음주보다는 외로움을 택했다. 밤에 운동 끝나고 귀가하고 나면 아예 밖에 나가지를 않는다.


작년에 치앙마이에 왔을 때는 집에 들어온 이후 씻고 나서 뭐에 홀린 듯 길을 나섰었다. 맥주랑 안주 거리를 사 와서 숙소에서 마셨다. 다음날 아침은 해장하러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갔고.


밤이 되면 습관적으로 술을 사러 나갔었는데 그 습관을 깨고 나니 술 생각은 나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는 포인트는 딱 하나였다.


이렇게까지 인간관계에 손을 놓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조바심.


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태국 친구를 사귀어봐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술자리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저녁 약속이라도 잡아야 한다. 치앙마이에서는 특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학원에서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미 따로 모여서 술자리를 갖고 서로 친하게 지낸다. 같은 반 누군가는 나에게 '술 안 마시면 너는 뭐해?' 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다 전직장 팀장이 떠올랐다. 술을 무척이나 즐기는 사람으로 꼭 나이 어린 직원들을 대동하고 마시는 것을 원했다. 자기보다 열다섯 살은 어릴 직원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집에 일찍 들어간 여직원에게 '그립다'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는 철없는 사람이었다. (철없다고 표현하는 건 쌍욕을 하긴 뭐해서 순화한 것) 호남형 인간에 술을 좋아하는 그는 회사에서는 나이스 가이로 통하기도 했다.


이 때 분위기에 휩쓸려 왁자지껄 하하호호 정신없는 대화를 함께 나눈 사람들 중 지금 연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내가 외롭다고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빼앗던 그 팀장놈. 나는 외롭다고 술에 의존하고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지. 나는 내가 싫어하던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지 말아야지.


밤에 술을 사는 습관을 깨고, 저녁 약속을 원천 봉쇄하고, 심심한 마음은 무에타이 수업을 듣고 오토바이(라고 말하기에는 사실 125cc 스쿠터) 라이딩으로 해소하였다.


그래, 음주는 '심심한 상황'도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심심하니까 귀가 길에 술을 사고 심심하니까 술약속을 잡고.


주중에는 무에타이 수업을 들으며 체력이 남아나지 않게 내 몸을 달달 볶고 주말에는 종종 왕복 3시간 거리의 라이딩을 하면서 몸을 달달 볶는다. 이렇게 하고 나면 힘들어서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달까.


술 생각이 안 나도록 몸을 움직이는 전략은 한국에 돌아간 이후에도 계속 활용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금주 150일을 맞이해서 집 뒷산(?)인 도이수텝 산에 올랐다. 도이는 태국어로 산이라는 뜻이니 수텝산이라는 뜻 정도 되겠다. 뒷산인데 해발이 1676m로 치앙마이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인 '왓 프라탓 도이수텝'이 있는 곳이다. 사원까지는 오토바이로 천천히 오르면 40분 정도 걸리는데 여기서 또 30분 정도를 오르면 캠핑장도 나오고 커피농장도 나오고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마을도 나온다.


치앙마이를 자주 왔으면서도 몰랐는데, 이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쪽이 겨울철에는 벚꽃이 피는 것으로 유명한 관광지였다.


쿤 창 키안 벚꽃 명소


이제 거의 끝나갈 무렵이라고 하는데 아직 벚꽃이 만개해 있어서 생각지도 못하게 태국에서, 그것도 깊은 산속에서 벚꽃을 즐기고 낭떠러지 옆에 걸쳐있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실제로 보면 더 아름답다
한국의 벚꽃과는 품종이 좀 다른 듯 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트레킹 코스가 이어진다, 주말에 다시 가서 짧게라도 트레킹을 해볼 예정  
낭떠리지 옆 카페, 뷰가 저세상 뷰다


벚꽃을 볼 수 있는 장소는 벚꽃과 커피나무가 어우러져서 신비로운 정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해발이 1700미터나 되는 곳이니 자연환경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구나, 감탄하며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이 나의 금주를 축하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며, 치앙마이에서 나는 금주생활을 잘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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