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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an 25. 2024

한 템포 쉬어주기

#치앙마이 일년살기

무에타이를 할 때는 한 템포를 쉬어주어야 한다.


무에타이 훈련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에타이 훈련은 다음 영상처럼 진행이 된다.


https://youtu.be/8XMGCWKE4NA?si=v2XNY-PB35bP7Xed


코치가 Pad라고 불리는 훈련도구를 손과 발, 허리춤에 차고 연습하는 사람이 코치에게 킥이나 펀치 등의 공격을 실제로 하는 것이다.


코치는 어떤 공격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여기에 맞춰서 연습자는 공격을 하게 된다.


코치는 초보자들에게는 펀치, 킥등의 공격을 짧게 요구하지만 수준이 조금만 올라와도 '콤보'라고 불리는 다양한 콤비네이션 공격을 연습시킨다.


코치가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긴 콤비네이션 공격을 요구할 때는 순서를 외우지 못해 버벅거리기도 한다. 나는 방향감각이 좋지 않은 편이라 훨씬 더 많이 버벅거리는 편이다.


그러다 최근에 체육관에 상주하는 세 명의 코치 중 한 명의 코치가 '다음 공격을 하기 전에 짧게 끊어주고 공격해라'라는 말을 해주었고 그렇게 하자마자 즉각적으로 큰 효과를 보는 중이다.


이게 뭐라고 다들 열심히 운동하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


이를테면 [왼손 잽+양손 어퍼+왼발 킥]이라는 콤비네이션 공격을 한다고 하면, 왼손 잽을 치고 잠시 숨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잡아 양손 어퍼 공격, 이후에 다시 자세를 잡고 왼발 킥을 하는 것이다.


물론 최상위 선수들은 중간에 멈추는 동작을 아주 짧게 가져가기에 콤비네이션 공격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연습이 되었건 실제 시합이 되었건 무에타이는 킥까지 해야해서 체력적으로 힘든 행위이고 숨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고 다음 공격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자세가 흐물흐물해지기 쉽다.

(*균형 잡는 측면에서 무에타이가 복싱보다 확실히 어렵다)


Pad 연습을 하면서 내가 계속 그랬다. 주문받은 공격을 실행하는 것에 급급해서 호흡과 자세를 전혀 가다듬지 않고 코치가 들고 있는 Pad에 펀치나 킥을 갖다 대기에 급급했다.


코치의 말대로 한 템포 끊고 다음 공격을 하는 연습을 하니 오히려 콤비네이션도 부드러워지고 모든 공격에 힘이 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작정 막무가내처럼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템포를 쉬어주면서 숨도 쉬고 자세도 정비해야 공격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건 비단 무에타이 훈련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서 혼자서 감동하면서 무에타이 연습을 하고 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도 일단 한 템포 쉬면서 상황을 살피고 다음 액션(공격)을 위한 자세를 세팅하고 나서 액션 하자.


요즘 계속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말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인데 이것과도 연관이 되는 깨달음이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 템포를 끊고 다음 액션을 준비하는 것은 결국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나 자신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는 유년시절 부모님과의 애착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불안형과 회피형이 혼합된 애착유형의 사람으로 자라났다. 이것은 내가 가진 뚜렷한 특징이며 삶을 살아가는데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힘든 상황도 웃어넘길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힘든일이 있다면 불안에 떨거나 회피해 버렸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상황에 사로잡혀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만 나이 37세가 되어서야 아주 조금씩, 너무도 느린 속도로 내 삶을 통제하는 것을 배우려고 쌩고생중이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라도 깨닫고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무에타이를 잘하려면 무식하게 힘만 센 것이 아니라 기술도 쓰고 속도나 템포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경지까지 다다른다면 나는 무에타이뿐만 아니라 내 인생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희망이 보인다.


선수도 아닌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인 나는 퇴사 후 치앙마이에서 나만의 무에타이 훈련캠프를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건 결국 더 나은 삶을 살아보기 위한 나의 투쟁이었구나. 이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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