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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Feb 01. 2024

창과 방패의 숨 막히는 대결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 체육관을 다니는 중이다. 글러브를 끼기 전 손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핸드랩이 오래되어 새로 하나 사면서 다른 용품들도 구경할 겸 치앙마이 시내의 한 무에타이 용품점을 찾았다.


가게는 나이트 바자에 위치한 곳으로 오후 7시부터 여는, 밤장사를 하는 곳이다.


Chiangmai muaythai shop & Thaikla muaythai


작년에 나이트 바자를 방문했을 때는 코로나로 인해 크게 타격을 받았다가 다시 회복하는 시기라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 다시 가보니 한층 더 활기를 찾은 모습이다.


요런 가게다


가게에 들어서니 주인장은 한 무리의 서양인 남성을 한창 응대하는 중이었다. 어쩌다 보니 대화가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양인 남성)

나는 돈이 없어. 깎아줘.


(주인)

돈이 없기는 왜 없어. 너 나이키 입었잖아. 태국 사람들은 돈 없어서 사지도 못해.


(서양인 남성)

아니야 난 거지야. 나는 완전 태국 현지인이야.


대화를 듣고 큰 소리로 웃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냈다. 금액을 깎으려는 손님과 방어하려는 주인의 싸움이 대단하기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서 서양인 손님들은 본인들이 거지라고 자처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주인은 '태국인들은 나이키도 사 입을 돈이 없다'며 자국민을 깎아내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 가운데 들어선 나는 핸드랩을 사려고 봤는데 '페어텍스'라는 브랜드의 핸드랩만 있어서 구매를 포기하고 나왔다. 내가 구매하고 싶었던 제품은 '트윈스'라는 브랜드의 핸드랩이었다. 두 제품은 면의 소재가 다르다. 페어텍스 핸드랩이 조금 더 부드럽고 트윈스 핸드랩은 더 빳빳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질감을 선호하여 트윈스 브랜드의 핸드랩을 사고 싶었다. 가게를 나가는 나를 두고 주인이 '태국에서 생산되는 핸드랩은 다 같은 공장에서 만드는 건데 브랜드만 다르게 붙이는 것'이라며 훈수를 두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웃으면서 알았다고 하고 가게를 나섰다. 상인에게 쉽게 설득당하기에는 내가 이미 너무 태국 고인물이 되어버렸다.


이 일을 겪고 나니 10여 년 전에 인도 여행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거의 10개월 가까이 인도-네팔-태국-캄보디아-라오스-인도네시아 등을 배낭여행을 했다. 첫 배낭여행의 첫 시작이 인도였다. 그전까지는 물건을 '흥정'해서 사본 적도 전혀 없던 나였는데 순식간에 야생의 정글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 시절에는 유튜브로 여행 영상을 미리 보고 가는 것이 흔한 시절은 아니었어서 여행책을 보며 여행을 준비했다. 책에도 흥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어서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었는데... 첫 시도부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상대방도 내가 인도에 첫 발을 내디딘 레벨 0의 여행자인걸 느꼈겠지. 흥정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인도는 다른 도시에서 온 인도 사람들도 물건을 살 때 바가지를 쓴다고 할 정도로 쇼핑의 난이도가 높은 나라다. 외국인 여행자들에게는 어떻겠는가.


인도에서 처음으로 '그 가격이면 안 살래'라고 말하며 뒤돌아서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렇게 해도 붙잡지 않는다면 상인 입장에서도 크게 남는 것이 없는 가격이라는 소리라서 그 금액을 기준으로 두고 다른 집으로 가서 구매하기도 했다. (80% 정도는 안 산다고 돌아서면 내가 원하는 금액으로 가격을 낮춰주었다)


10여 년 전의 인도 뉴델리 여행자 거리, 버스 터미널에 새벽에 도착해서 어리버리한 서양인 여행자들을 이끌고 오토바이 택시를 흥정해서 이곳까지 도착했다


이때 깨달은 것은 오히려 돈에 크게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흥정에 실패해 봐야 우리나라 돈으로 천 원 이천 원의 손해 수준이며 비싸봐야 몇 만 원이다. 아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그만이다. 인생 수업료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마음 편하다.


치앙마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각광받는 여행지가 되었고 치앙마이 여행 정보를 논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앙마이 여행과 관련한 불안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 물건을 싸게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ㅠㅠ, 일정을 제대로 짠 게 맞나요??ㅠㅠ 도와주세요 ㅠㅠ'


낯선 곳에서 혹시나 손해를 보여 여행할까 불안함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했다면 그 이후에는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한 나 자신을 위로해 주자.


이미 벌어진 일은 내 손을 떠난 것이다. 그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 마음은 통제가 가능하다. 

(이건 *데일리 필로소피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무에타이 용품 가게에 갔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다 달았다. 어쨌거나 인도의 콜카타라는 동네에 처음 도착해서 흥정도 전혀 못하고 벌벌 떨던 내가 이제는 어지간한 흥정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이 레벨업을 해냈다. 여행자 레벨이 1에서 10까지 라면 그래도 이제는 8 정도는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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