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Sep 06. 2023

왜 치앙마이였을까?

#치앙마이 일년살기

너무 힘들거나 감정적일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나쁜 결정을 하게 된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너무 배가 고플 때 장을 보러 가면 굳이 살 필요가 없는 것들을 고르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나도 그랬을지 모른다. 


가족, 회사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퇴사 및 치앙마이 1년 살기를 결심했다. 태국에서 1년간 합법적으로 머물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한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교육비자였고 한 번에 1년짜리라 선택에 더 신중했어야 한다. 나는 거의 일사천리로 치앙마이 대학교 어학원과 컨택하여 1년 수업료(그래봐야 160만 원...) 절반에 해당하는 비용을 카드로 지불하고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보니 공황발작이 오고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는지라 여차하면 어학원 비용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이동할 생각이다. (치앙마이 대학교에 한번 수업료를 지불하면 교육비자 발급이 거절되지 않는 이상은 환불 불가다.)


그래서 치앙마이에 온 것을 후회하냐고? 그건 아니다. 


치앙마이는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2~4월 정도 기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살기에는 괜찮은 도시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것이다. 이미 치앙마이도 너무 번잡해져서 싫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치앙마이에 머무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치앙마이가 존재한다. 


나에게 치앙마이는 모든 것이 적당히 다 괜찮은 도시다. 적당히 저렴하고 적당히 여유롭고 적당히 바쁘다. 서울에 비하면 치앙마이가 시골 수준인 것은 맞지만 대형 쇼핑몰도 두 개나 있고 최신식 콘도(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도 즐비하다. 맛집과 카페는 그 수를 셀 수도 없다. 


치앙마이 외곽의 쇼핑몰과 콘도, 이런 모습도 치앙마이가 맞다 

치앙마이에 처음 왔던 10년 전에 비해 분명 물가는 많이 올랐다. 특히 집값이 크게 오른 것을 체감하는 중인데 1인 생활자 기준 10년 전에는 한 달에 6천바트(24만 원) 짜리 방도 '좋은 방'이라고 했던 반면 지금은 그 기준이 적어도 1만 2천바트(48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1만바트(40만 원)도 애매하고 그것보다는 조금 더 줘야 좋은 방을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번화한 님만해민 지역의 고급 콘도는 월에 2만바트(80만 원)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그 이외의 물가는 여전히 한국에 비해 매력적이다. 매일 스타벅스를 가는 것이 아니라면 50바트(2천 원) 정도면 괜찮은 수준의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고 일반적으로 태국 분들이 많이 드시는 식사 메뉴는 한 그릇에 60~70바트(2400~2800원) 정도면 먹는다. 물론 태국에서의 1인분은 양이 너무 적어서 두 그릇은 시켜야 배가 찬다. 만약 종종 집에서 식사를 해 먹는다면, 식재료도 한국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다. 방금 마트에서 장을 봐왔는데 감자가 1kg에 60바트(2400원)더라. 재래시장에서 샀으면 더 저렴했을 것이다. 


한바구니에 10바트, 400원짜리 야채


비싼 식당도 즐비하지만 아무리 비싸도 한국에서 적당히 즐기는 수준이며 1천 바트(4만 원) 짜리 한 장을 들고나간다면 분위기 좋은 곳에서 양껏 즐기고 들어오기에 부족하지 않다. 남쪽의 파타야나 푸켓 수준은 아니지만 치앙마이도 유흥을 즐기고자 마음먹는다면 그럴 수 있는 곳이다.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나... 이 집을 10년 전부터 갔는데 여전히 과일 스무디가 2천 원 미만이다. 번화가인 님만해민으로 가면 이보다 두 배는 더 비싸다.


우리의 고국에 비해 저렴하고 생활 인프라도 나쁘지 않은 점은 전 세계 사람들을 치앙마이에 모이게 만들었다. 치앙마이에서는 적은 비용으로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살인적인 월세에 시달린다는 서양인들은 치앙마이에서 더한 만족감을 느끼지 않을까? 1년간 수입 없이 살면서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만 챙겨야 하는 내 입장에서 치앙마이는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치앙마이행을 택하기 전, 전세가 만료되는 시기여서 한 달 정도는 전셋집을 알아봤는데 서울에서 2억 미만으로는 좋은 컨디션의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공인중개사 분들은 어떻게든 나에게 더 비싼 집을 권유했고 하나같이 '이 금액으로는 여기서 방 못 구해요'를 외쳤다. 전세 대출 이자를 지원해 줄 테니 4억짜리 집에 들어가라는 공인중개사도 있었다. 이 불쾌한 경험도 내가 태국행을 빠르게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리라. 


언젠가부터 불어닥친 한 달 살기 열풍에 치앙마이도 제대로 편승하여 많은 한국인들이 치앙마이를 찾는다. 길 가다가도 심심치 않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어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여기는 대한민국 치앙마이 시(市)'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브에는 치앙마이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앞다투어 숙소, 맛집을 리뷰하고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을 찬양한다. 


사진, 혹은 영상에서는 카메라 뷰파인더 속의 모습만 담기에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과 치앙마이의 실제 모습은 꽤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장 크게는 치앙마이는 오토바이와 차량이 매우 많아서 길가에서는 소음과 매연에 시달려야 하며 그 옆에서 바로 만들어 파는 길거리 음식의 위생상태도 장담할 수는 없다. 도로 상태도 좋지 않고 걸어 다니기도 나쁘다. 


이런 쉽지 않은 도로상태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라?'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힙한 장소에 도착하게 되는 는 곳이 치앙마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번잡해졌지만 매우 힙해졌다. 때로는 한국의 연남동이나 성수동 보다 더 감각적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울창한 나무나 야자수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감성에 죽고 못 사는 여행객들에게는 이런 공간이 감격을 선사하리라. 

넓은 정원이 있는 귀여운 카페, 비행기 소음과 오토바이 소음은 사진에 담기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 탓에 많은 사람들이 치앙마이에 거주하기 위해 방문한다. 누군가는 은퇴 생활을 즐기고 누군가는 태국 현지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 나처럼 홀로 장기거주를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도 많다. 


누군가는 나처럼 운동만 죽어라 하고 누군가는 공부를 하며 누군가는 유흥을 즐긴다. 정말이지, 사람 수 만큼수백 수천 개의 치앙마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치앙마이는 어떠한 곳입니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치앙마이에는 나무가 정말 많아서 초록색을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과 햇빛이 강해서 어디서 사진을 찍건 잘 나온다는 것이다. 

치앙마이 마야 쇼핑몰에서 내려다본 도심 풍경


만약 치앙마이에 방문하게 된다면, 유튜버나 블로거가 소개하는 치앙마이가 아니라 여러분만의 치앙마이를 찾을 수 있기를.


아, 그래서 내가 치앙마이를 선택한 것은 1년간 수입 없이 살아야 하는데 그 수준에 맞춰서 적당히 살기에 물가가 저렴하며 각종 맛집과 카페가 많아 생활하기에 편리하고 무에타이나 태국어 공부 등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참, 살기 적당한 곳이다 치앙마이는. 


이곳에서도 나는 무언가 성취하여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만 이곳에서의 1년 만큼은 그 압박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황발작 후 중간점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