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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10. 2023

술과 음식을 권하는 사회

#치앙마이 일년살기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은 흔히 해당 캐릭터가 정서적으로 허기져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굳이 이 내용에 대해서 풀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그것이 '왜 그러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때로는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는다. 아니, 어쩌면 항상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음식과 술이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마신 소주 1병을 시작으로 주량이 계속 늘었다. 나의 주량과 정신상태는 매우 확실한 상관관계를 가졌는데, 불안하면 할수록 술이 늘었다.


술뿐만이 아니었다. 술만 마시는 경우가 없으니 안주와 함께 먹었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건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과 음식을 찾았다.


그러다 20대 중반인가, 초절식을 하면서 15kg을 감량했는데 그 이후로는 마음 놓고 술과 음식을 먹지는 못했다. 어떻게 뺀 살인데 술과 음식으로 망치겠는가.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했고 결국 소위 말하는 '먹뱉'이라는 방법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쉽게 말하면 폭식을 하고 토해냈다. 그런 생활을 적어도 3년 이상은 지속한 것 같다. 확실히 폭식증과 알콜의존증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도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른다)


이런 생활 끝에, 술이 나에게는 백해무익한 것을 뼈저리게 인지하게 되었으나 이제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이라는 관문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회식이란 걸 했다. 어째 내가 만난 대표나 상사들은 다들 술을 좋아했고 딱히 나를 좋아하지는 않아 보였지만 내가 회식에 빠지는 것은 싫어했다. 가장 최근의 회사는 실리콘밸리식 경영방식을 채택한다는 스타트업이었는데, 그곳도 똑같았다. 한 달에 한 번 술을 마실 것을 웃으며 강요하는 팀장이 있었고 경영진은 그를 좋아했다.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주변에는 '쿨하고 멋진 팀장'으로 알려졌기에 그의 강요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언젠가 팀원들이 이번 회식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으니 그는 '그럼 오고 싶은 사람들만 오라'고 말했고 그 말이 부담스러워 연차 낮은 여직원들은 회식에 안 가겠다는 의사를 철회하고 회식에 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는 어떻게든 회식을 진행했다. 해당 회사에서 이사의 직위를 가진 자는 술에 취해서 회사 메신저에 '아재들이랑 술 한 잔 하실 분들 오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미친놈이 회사 돈으로 술 마시면서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이 댓글을 차마 달지 못했다.


왜 음식과 술 이야기를 하느냐면, 어젯밤 본 유튜브 '먹방 콘텐츠' 때문이다. 참 기이할 정도로 많은 먹방 콘텐츠가 존재했다. 보면서 조금은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먹방 콘텐츠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기 때문이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거주하는 태국 치앙마이는 술과 음식이 널린 공간이다. 어느 관광지가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사람들이 치앙마이에 온 이유가 오로지 술과 음식인 것처럼 보일만큼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먹고 술을 마시고 마신다. 지금은 여행의 순간이고 치앙마이에 언제 또 오겠는가. 관광객들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에서 음식과 술을 소비한다.


로컬 위스키라면, 큰 거 한 병에 만 원대이다. 알콜의존증이 있는 사람에겐 너무 위험한 환경


나도 치앙마이에 도착하자 마자는 음식과 맥주를 바리바리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레오 비어의 맛을 느끼며 '그래, 내가 태국에 왔구나'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다행인 건지 아닌지... 치앙마이 도착 5일 차에 공황발작을 경험하고는 그날 이후로 쭉 금주 중이다. 스마트폰에 디데이 어플을 깔아 두었는데 오늘이 금주 17일 차라고 한다. 이렇게 오래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거의 몇 년 만이다.


금주를 했다는 숫자는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까?


음식의 경우도 슬슬 저녁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시도 중인데 한꺼번에 극단적으로 식단을 진행한다면 유지하기도 어렵거니와 오히려 폭식이라는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바나나, 호밀빵 등 건강한 음식은 집에 늘 챙겨두고 배가 고프면 조금씩 먹는다.


여기서의 고민은, 영원히 금주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혹은 절주 하는 방법을 배울지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정말 즐거운 자리가 있다면 함께 술을 마시고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술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하는 방법 말이다. 나는 외로움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면 절주 할 자신은 없는데 말이다.


아직 답은 모르겠지만 치앙마이에서 해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확실히 정립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가능했을 일이다. 팀장이 웃으며 회식을 강요해도 나도 웃으며 '아 저는 밤에는 푹 쉬고 다음날 가뿐하게 일을 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하고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인간은 자신의 말을 거절하면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그런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주위에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의 이미지로 비쳤다. 내가 알콜에 의존증상이 있고 이것이 큰 문제로 작용했음을 주위에서는 모른다.


여기서는 술과 음식이 나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 살건 이 라이프 스타일을 지켜내고 싶다. 그것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 투자자들에게는 우리가 이러한 기술과 프로덕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투자를 받고서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회사는 싫다. '자동화'를 통해 자동으로 돈이 벌리는 시스템을 만든답시고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소홀히 하는 회사도 싫다. 내가 나 자신을 극도로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기로 한 만큼, 나에게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 그만큼의 돈의 값어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싶다.


자꾸 글이 선언문처럼 되는 이유는 글의 목적이 자기 암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가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정리하고 내가 진짜 뭐라도 된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 확실히, 술보다는 글쓰기가 더 좋다. 머리가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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