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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09. 2023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치앙마이 일년살기

온몸이 천금만금이다. 


금요일 무에타이 수업을 끝내고 밤 11시엔가 잠이 들어서 다음날 9시에야 겨우 일어났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지 3주 차, 무에타이를 시작한 지도 2주 차가 되어가는 참이다.


내가 지금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은 정통 무에타이 체육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에타이 초보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금은 가볍게 무에타이를 '체험'시켜주는 곳으로 약간의 스트레칭과 단체운동을 진행한 뒤 개인별로 4분 4라운드씩 '미트를 잡아준다.'


미트를 잡아준다는 말은 코치들이 미트(mitt)라는 훈련기구를 착용하고 직접 1:1로 훈련을 진행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pad work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무에타이 미트 훈련 참고 이미지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하는 경험이 전 세계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이 훈련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시합 경험이 풍부한 코치들이 나와 호흡하면서 훈련을 시켜준다. 한국에서는 시간당 5~7만 원을 내고 PT를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태국 무에타이 체육관에는 경험이 풍부한 코치들이 체육관당 적어도 4~5명씩은 포진해 있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은 매우 힘들게 가르치는 전통적인 무에타이 체육관의 방식에서 살짝 벗어나서 일종의 '피트니스 사업화'된 무에타이 체육관이다. 4라운드씩 미트를 잡아주지만 일일이 수강생들의 자세까지 교정하지는 않는다. 에어로빅처럼 땀 흘리면서 수강생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형형색색의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여성 수강생의 비율이 높다.


또한 일반 무에타이 체육관과 달리, 많은 수강생들을 받기 위해 월-토 하루 다섯 타임의 수업을 진행한다. (정통적인 체육관은 1일 2회 훈련이 기본) 한 시간 반씩 진행되는 수업시간에 4명의 코치들은 모든 수강생들에게 4라운드씩의 미트 훈련을 제공한다. 훈련을 시키는 코치들도 지치는 게 눈에 보인다.


나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수강생이고 스스로 어디를 고쳐야 할지 알고 있어서 이 정도의 수업으로도 충분하고 지금은 스테미너를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기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렇게 가볍게 훈련하는 대신 비용도 정통 체육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일반 체육관이 1회 300바트 수준이라면 여기서는 최대 1회 150바트 수준으로 수업 참여가 가능하다)


그렇게 점점 수업에 적응이 되어갈 즈음, 수강생이 너무 많아졌는지 다른 체육관 코치님이 파견을 나오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분이 이틀 연속으로 나를 가르쳐주시는 거라.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진짜 무에타이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 체육관의 코치들은 말하자면 MZ세대, 20~30대 코치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열심히 일하지만 기본적으로 태도는 가볍다. 파견 오신 분은 그들보다는 월등히 나이가 많은 분인데 매우 FM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 본 그 어떤 무에타이 코치님들보다도 나에게 파워풀하게 킥을 찰 것을 주문했다. 내가 하는 모든 동작을 하나하나 짚어주었고 미트 훈련이 끝난 후에는 다른 외국인과 짝을 지어서 기술 훈련까지 진행해 주었다.


내가 킥을 차면, 상대가 킥을 잡고 백스핀 엘보우로 공격하는 기술을 연습시켜 주셨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오랜만에 종아리에 멍이 들고 머리까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한 라운드씩 훈련이 끝날 때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내가 훈련하는 것을 보고 다른 태국인 수강생들이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내가 킥을 차는 강도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이 분께 이틀간 훈련받고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뻗어버린 것이다.


너무 힘들었지만 이 경험은 지금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었다.


원래 운동도 익숙해지면 단계를 높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를테면 맨몸 스쿼트 하루 100개 하기가 익숙해지면 무게를 들거나 혹은 맨몸으로 해도 속도를 높이거나 쉬는 시간을 줄여서 단계를 높이라고. 그렇게 해야 운동능력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한다.


꼭 성장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야 운동을 오래 지속하게 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성장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확인해야 재미를 붙이고 운동을 지속할 자신이 생긴다.


지금까지 무에타이뿐만 아니라 복싱, 수영, 웨이트 트레이닝, 크로스핏 등 다양한 체육관에 다녔는데 오래 다닌 체육관은 다들 이랬다. 복싱 같으면 미트 훈련을 하다가 스파링으로 넘어갔고 웨이트 트레이닝은 무게를 높였다. 내 수준을 파악하고 다음 단계의 훈련을 제시하였다.


반대로 수강생들과 시시덕거리고, 내가 무게를 많이 들면 '무게충이야?'라고 말하던 코치도 있었다. 물론, 그 소리를 듣고 얼마 후 나는 체육관을 옮겼다. 참 바보 같은 코치였다. 매월 경영난에 허덕여서 친구 좀 데리고 오라고 수강생들에게 볼맨 소리를 했는데, 수강생의 운동능력 성장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그런 경영난은 겪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렇게 전문적이지 못한 체육관들은 수두룩하다.


성과를 내는 것을 중요시하는 회사에서도 제대로 된 관리자들에게 인력 관리를 맡겨야 한다. 내 이전 관리자는 내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 말하자 '사회생활은 원래 다 이런 것'이라고 말했고 직원 성장보다는 월 1회 회식을 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할 말이 많지만... 더 안 하겠다...)


지금 드는 생각은, 무엇이 나의 성장이고 성장을 위한 방법인지 내가 스스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걸 알아야 나의 코치 혹은 관리자가 나에게 제대로 된 코칭을 제공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도 안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내가 내 자신의 관리자가 되는 방법도 있다. 잘못된 관리에 휘둘리지 않고 내 자신의 관리는 내가 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소중한 나의 인생이다.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라고 어버버버 하고 넘겼다가는 내 인생의 소중한 몇 년이 날아가거나 심각하게는, 인생의 방향성 자체가 최악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다.


새로운 코치님과의 훈련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2주, 이번 체육관을 다니는 기간이 끝나면 조금 더 정통적으로 무에타이를 가르치는 곳으로 옮겨볼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무에타이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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