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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11. 2023

유난떨기

#치앙마이 일년살기

지금의 나는 내가 살던 한국 사회에 대해 꽤나 반항을 하는 중이다.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 퇴사하고, 미혼이고, 태국에 와서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다. 여기에 내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누군가는 꽤나 놀라고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리라. 


20대 중반이었나,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배우고 돌아온 후 서울 신촌의 어느 킥복싱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계속하려고 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운동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네요'라고 말한 코치도 있었다. 


이전 같으면 이러한 반항을 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숙면까지는 취하지 못하나 마음만큼은 태어나서 이렇게 편한 적이 없다. 이제야, 나는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살 거다. 


여기에 더해서 내가 먹는 음식도 대세의 흐름에서 한 발짝 벗어나려고 한다. 


유튜브, TV 예능 등에서 비치는 태국과 음식문화는 화려하기 그지없고 출연자들은 태국 음식의 맛을 찬양하기 바쁘다. 그것이 모두가 행복한 길이다. 


나 역시도 태국 음식에 거부감이 없고 잘 먹는 편이지만 이제는 내 식욕을 단속하기로 했다. 꼭 태국이어서가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는 음식이 많다. 한국처럼 태국 음식도 엄청난 양의 설탕과 MSG를 사용한다. 식재료가 매우 저렴한 편인데, 많은 식재료에 농약을 사용하고 이에 대한 규제도 느슨한 편이라고 한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안 쓰고 있다가 한 통에 11바트(440원)하는 소금을 산 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보니 맛소금이었고 건강한 맛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태국 염전이 꽤나 오염되어 있다고 했다. 


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3개월 인도 여행을 하면서 길거리 음식을 거부감 없이 다 먹던 사람인데 혼자서 유난을 떠는 건가, 이런 생각을 했다. 


유난, 식단 조절을 할 때 종종 듣던 말이다. 다들 가공식품, 피자, 치킨 등을 먹을 때 나만 안 먹겠다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도 열심히 참석해야 했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 내 삶의 궤도를 되찾기 위해 이곳 치앙마이까지 왔으니 유난, 떨어보자는 결론.


그래서 히말라야 소금이라는 것을 샀다. 한 통에 11바트짜리에 비해 이건 99바트. 우리나라 돈으로 4천 원가량이다. 이 정도는 내 몸에 쓸 수 있다. 회사 홈페이지까지 들어가 꼼꼼히 살펴보니 공정무역이네, Vegan이네 이런 마크가 붙어있다. 


왼쪽이 히말라야 소금, 오른쪽이 태국 맛소금 가격은 9배 차이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식자재를 대량으로 파는 마트에 가서 1kg에 70바트(2800원) 정도 되는 닭가슴살을 사 왔다. 이 닭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길러졌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보관상태도 스테인리스 진열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오후쯤 되어 가보면 닭가슴살이 녹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조금 가격대가 있는 마트에서 개별 포장 되어있고 좋은 사료를 먹여 길렀다는 표시가 된 제품으로 바꾸었다. 


야채나 과일 등 기타 식재료는 치앙마이 대학교 농업대학교 건물 안에 있는 유기농 식품 전문 매장에서 구매한다. 해당 매장 바로 앞에는 태국 왕실에서 인증한 제품을 판매하는 Loyal Project 매장도 있는데 이곳의 식재료 품질도 좋은 편이다. 


Aggie Hut


농업이 영어로 agriculture라서 응용해서 Aggie라는 네이밍을 하지 않았을까? 가격은 일반 식재료보다 조금 비싼 수준. 이를테면 토마토 작은 거 한 봉지에 1200원 정도


외식을 아예 끊는 것은 지속 불가능하고 태국을 즐기는 태도도 아닐 것 같아서 외식의 경우 조리 상황을 내가 볼 수 있고 주방이 깔끔한 곳을 골라 가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을 파는 곳은 피하기로 했다. 


그러면 태국까지 왜 왔어요?라고 물을 수 있겠는데 일단 매일 1 카페만 해도 치앙마이는 본전을 뽑고도 남는 곳이라 큰 아쉬움은 없다. 


유난 떤다는 소리에 꺼지라고 해야 한다. 술도 끊고, 매일 세 잔씩은 마시던 카페인도 하루 한 잔으로 줄이니 몸이 한결 가볍다. 술 대신 제로칼로리 음료를 물처럼 마시다 두통이 심해져서 끊었는데, 두통도 사라졌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건강을 해치는 것은 투자로 치면 매우 멍청한 투자다. 술을 마시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만 좋은 술로 마실 생각이다. 


제품 = 돈이다. 모두들 돈을 벌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최대한의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장려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 몸의 값어치에 어울리는 소비를 하고 싶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파타고니아 창업자가 얼마나 괴짜고 환경보호에 진심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도 파타고니아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쓰인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자신이 믿는 신념을 밀어붙여서 파타고니아 같은 기업을 일군 괴짜 CEO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위안을 받는다. 모든 회사가, 경영자가 비용 절감의 가치를 외칠 때 파타고니아 창립자는 등반 장비의 품질을 높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도 유난을 떨었고 세상의 쯧쯧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회사들이 사라져 갈 때 굳건히 이 세상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번창하고 있다. 


결론은, 누가 나에게 '유난을 떤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내가 독보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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