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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12. 2023

치앙마이에도 당근마켓이 있다면 좋을 텐데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왔다. 


퇴사를 함과 동시에 2주 만에 집을 정리하고 전세 계약을 마무리하고 모든 짐을 32인치 트렁크와 20인치 캐리어, 작은 백팩에 욱여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약 만료일, 이게 내가 가진 짐의 전부다

퇴사는 차라리 쉬웠지, 4년간 지낸 집과 짐을 정리하는 것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게 힘든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당근마켓(당근으로 사명을 변경했지만 당근마켓이 더 입에 붙는다)의 엄청난 도움을 받아 겨우 물건을 처분했다. 어플에는 2주 동안 20건 정도를 진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책을 무료 나눔 할 때는 여러 권을 한 건으로 올리고 여러 명과 거래한 것을 생각해 보면 30건 정도는 족히 진행했을 것이다. 덕분에 매너 온도가 47.4도까지 올랐다.


당근온도가 거의 100도에 육박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졌다


자전거처럼 팔기 쉬운 물건들은 금방 팔렸는데 팔기는 애매하고 버리기는 너무 멀쩡한 물건들이 훨씬 많았다. 이를테면 좋은 책인데 내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서 판매 가치는 없어진 책이나 깨끗하지만 사용감이 있는 하얀 그릇 같은 것들이다. 혹시나 해서 무료 나눔으로 당근마켓에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하루에도 여러 건의 당근 거래를 진행했다. 무료로 물건을 받아갈 때 대부분 멋쩍어하시는 것이 공통점이었는데 내 입장에서는 쓰레기가 되었을 물건을 다시 사용해 주셔서 오히려 고마웠다. 누군가는 작은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셨다.


나는 엄청난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에 질려서 분리수거나 재활용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해 쓰레기를 줄인다는 회사에 입사한 적도 있다. 정부사업과 연관된 업무였는데, CEO분이 실제로 환경에 대한 인식은 낮고 정부사업을 쇼핑하듯 돈만 보고 진행하기에 빠르게 퇴사했다. 진심으로, 그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정부사업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겠지만 이 나라에는 도둑이 정말 많다. 정부사업을 제대로만 진행해도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근마켓을 사용하니 편의성뿐만 아니라 의의라는 측면에서도 최고였다.


아,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환경기업은 당근마켓이구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중고나라라는 사이트가 있기는 하지만 플랫폼화에 실패하였고 결국 사기꾼들의 온상으로 남았다. 당근마켓은 엄청난 편의성과 UI UX를 기반으로 빠른 시간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 모습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쓰레기로 버릴 물건에 새 생명을 부여했고 각박한 현대사회에 이웃이 있다는 점에 대해 환기시켰다.


지역 기반으로 다양한 수익모델을 붙여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부디 잘 되기를 바란다. 매출이 잘 나야 당근마켓도 계속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은 기술과 프로덕트가 있다고 외쳐대지만 실제로 그런 스타트업은 손에 꼽는다. 제대로 작동하는 앱 하나 만들기 어려워한다. 그런데도 대표들은 자신이 구글 CEO나 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근마켓의 임직원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당근마켓을 통해 수많은 물건을 팔고 나눴지만 그럼에도 남은 물건이 한가득이었다. 큰 박스로 세 개 정도는 기부했고 생활 쓰레기는 혼신의 힘을 다해 분해하여 버렸다.


기부는 주로 굿윌스토어에 한다. 천성이 시니컬하여 자선단체라든가,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다는 단체를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디 제대로 된 회사이길 바라며 주로 옷을 기부했다. 이때, 쓰레기로 버릴만한 물건은 쓰레기로 버렸다. 멀쩡한 옷들만 추려서 기부했다. 기부한다며 쓰레기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생활쓰레기 중 나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원터치 모기장이었다. 모기장의 모양을 잡아주는 철사 같은 것이 잘리는 재질이 아니었다. (자르려고 하면 쇳가루가 나왔다.) 최선을 다해 모기장을 찢고, 철사는 손으로 구부렸는데 구부려지지 않아서 손이 다칠 지경이었다. 특수 폐기물을 담는 마대자루를 사서 버렸는데 이 철사는 그냥 땅에 묻히는 건가, 심히 죄책감을 느꼈다.


원터치 모기장, 분해하느라 죽는줄 알았다

그렇게 물건을 정리하고 치앙마이로 떠나는 날, 나는 이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건만 치앙마이에 도착하여 필요한 물건을 몇 개 더 샀다. 아직은 완전히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에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도 당근마켓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물론, 치앙마이에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는데 당근마켓의 편의성에 비하겠는가. 중고로 스쿠터를 살까 고민 중인데 이건 시도도 못하고 있다.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Kaidee라고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도 있지만 당근마켓을 따라가긴 멀었다. 태국은 거주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 비율이 매우 높아서 이들이 쉽고 편리하게 필요한 물건을 거래하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수수료를 지불할 것이다.  


당근마켓은 해외진출을 하지 않기에는 이미 너무 훌륭한 플랫폼이라 꼭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당근마켓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수록 쓰레기는 줄어들 것이다. 물건을 오래 사용하거나, 중고를 구매하거나, 재활용을 하는 것보다 새 물건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를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쪽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만큼 그 반대편에 물건을 오래 쓰는 세력? 집단도 존재했으면 좋겠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다. 카페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고 치앙마이 시 전체에는 지금 이 순간 못해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들은 매일매일 쓰레기를 만들어내는데 그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지금의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쌓이고 있을 것이다. 생산을 멈추지 못하겠다면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생산만큼의 중요성을 두고 전 세계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쓰레기는 없다, 어디에 쌓이는 걸까?

그래, 매달 회식 자리에 끌려갈 것에 고민하는 것보다 이런 생각과 고민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퇴사를 하기 잘 한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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