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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17. 2023

한국인의 치앙마이

#치앙마이 일년살기

누군가는 치앙마이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모든 도시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애초에 히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거나 조용한 자연환경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던 도시의 모습이 변한다면 이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커지는 법이다. 그런 여행지를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10년 전, 인도를 여행하다가 북부의 '맥그로드 간즈'라는 곳을 찾았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곳이다. 어느 밥집에서 다른 여행자와 인도 남부의 '고카르나'라는 해변 마을을 여행했고 무척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내 뒤에서 한 외국인 할머니가 내 말에 끼어드는 것이 아닌가. "고카르나도 이미 변한 지 오래야." 나에게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 이미 그녀의 눈에는 너무도 많이 변한 모습인 것이다. 이런 일화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할 수 없다.


치앙마이의 경우도 10년 전부터 종종 찾았고 지금은 1년을 살러 와 있다. 치앙마이의 10년 전 모습을 기억하고 그래서 치앙마이가 번잡해졌다는 의미를 이해하나 생각보다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한다.


치앙마이가 여행지로서 더 유명해지기도 해서 그런지 10년 전에는 정돈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던 지역까지 조금 더 깔끔한 모습으로 정돈되고 더 많은 밥집과 카페가 들어서서 도시의 모습이 한층 더 세련되어졌다는 느낌은 확실히 있다.


어찌 되었건, 나는 큰일이 없다면 이곳에 1년을 더 머물게 될 것이고, 이로서 치앙마이라는 도시를 '꽤 잘 안다'라고 말하는 이방인 대열에 낄 수 있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2023년의 치앙마이는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치앙마이 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시다. 언젠가부터 불어닥친 한 달 살기 열풍을 주도하는 지역으로 입소문을 타서 작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여행 유튜버들은 이곳에 한 번씩은 들러 한 달 살기를 하는 것 같고 이는 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치앙마이로 끌어들였다.


한국에서 한 달 살기 집을 구해주는 서비스인 리브 애니웨어가 치앙마이에서도 서비스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숙소를 구할 때 가장 비싼 방법은 리브 애니웨어 > 에어비앤비 > 직접 숙소와 컨택하기의 순서다)


태국 여행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도 덩달아 호황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글이 올라오고 인터넷 카페만 참고해서 여행이 가능할 수준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정보가 올라온다. 특히 숙소에 대한 질문이 모든 질문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 치앙마이에 오래 거주하는 터줏대감 같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에 매우 빠르게 답을 달아준다. 심지어는 어떤 숙소의 샤워기 수압이 어떻냐는 질문까지 빠르게 답변해 준다.


이런 정보는 도움이 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앙마이를 찾는 사람이 100명이라고 하면, 100개의 치앙마이가 존재한다. 100명에게 치앙마이는 다 같을 수 없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유튜브에서 좋다고 소개된 숙소가 나에게는 나쁠 수 있고, 맛있다고 소개된 음식이 내 입맛에는 별로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정보에 집착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보를 구하고, 찾아내고, 이에 맞추어 여행한다.


지금 내가 지내는 숙소도 어떤 한국인이 블로그에 너무 상세한 리뷰와 영상을 올린 바람에 해당 호수의 예약이 되느냐는 질문이 폭주하고 있어 숙소의 매니저가 힘들어하고 있다. 모든 한국인이 리뷰에 나온 그 방을 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연락을 한다고 했다.


여기에 가치 판단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어 서글펐다. 나처럼 용감하게 퇴사를 하고 치앙마이에 장기 거주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면 다들 힘들게 시간을 내서 오는 여행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확보한 시간을 1분 1초라도 낭비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한국인의 생활은 고달프고 그만큼 여행은 완벽해야만 한다


치앙마이는 서구권 국가에 비해 멋있거나 깨끗한 도시는 아니다. 동남아 국가들 중 태국의 인프라가 앞서있는 것은 사실이나 거리는 깨끗하지 않고 비가 조금만 왔다 하면 물바다가 된다. 태국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수질이나 공기의 질도 나쁘다.


태국의 버스 격인 썽태우, 치앙마이에 현재 시내 버스는 없다
태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정리되지 않은 전선

다만 태국 북부 지역 사람들 특유의 친절함과, 수많은 카페와 밥집, 적당한 물가, 다양한 배울 거리 (무에타이, 요가, 언어 등)가 어우러져서 장기로 와서 살기에 적합한 도시가 되었고 이것이 한 달 살기의 인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치앙마이가 휴양지인 것도 아니고 무엇을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 도시도 아니다. 치앙마이를 여행지로 택했다면 조금은 마음 편히 유유자적함을 느끼길 바란다.


어제 일자리를 찾아 태국으로 몰려드는 주변 국가의 청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미 몇 년 전 다큐멘터리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상 속 한 미얀마인 여성은 400만 원 정도 하는 아들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서 외식을 절대로 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고향 가는 차비를 아끼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또 갈아탔다. 이 영상을 월세 14,000바트(56만원)짜리 콘도의 침대에 누워서 시청하던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어디선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읽은 것 같은데, 서구권 국가가 부유한 것은 그들의 능력 때문인 것이 아니라 그냥 운이 좋은 것이라고.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넘에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치앙마이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굳이 빈부격차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운이 좋아 이런 생활을 누리고 있다면 조금은 더 책임감 있게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귀국 후 자본을 축적하는 길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을 때 그 방법이 누군가에 대한 착취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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