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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n 26. 2024

반야심경과 김부각

#치앙마이 일년살기

책 [반야심경 마음공부 :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인생이 편안해지는] 을 드디어 완독했다.


1/3 정도만 읽다가 안 읽고 있었는데 어제밤에 뭐에 홀린듯 호로록 나머지 2/3 부분을 읽어버렸다.


책을 다 읽고 유튜브 채널을 둘러 보는데 누가 김부각 먹방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푸하하,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 급식에서 반찬으로 김부각이 나왔는데 왜인지 냄새가 역해서 약간의 구역질을 해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나 김부각 싫어해'라고 말하며 김부각을 싫어하는 것이 나란 사람인양 행동하고 다녔다. 지금도 굳이 김부각을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나는 뭔가 한 번 결정하면 쉽사리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아마도 아빠에게 받은 영향이 아닐까 싶다. 아빠는 누가 무엇을 잘못하면 20년이 지나도 그 잘못을 물고 늘어진다. 한 번 잘못한 사람은 영원히 잘못한 상태인 것이다. 아빠의 이런 모습이 싫었지만 정신차려 보니 나도 아빠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김부각은 귀여운 예시고 이것이 사람으로 확장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아빠는 감히 아빠에게 대들고 아빠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한 나를 영원히 미워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어린 시절 나에게 폭력을 휘두른 아빠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파국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반야심경이라는 매우 심오한 불교경전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페이융'이라는 작가는 나에게 그러지 말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고정관념에 갇혀서 괴로워하지 말라. 내가 이 책에서 받은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불교 경전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보았다. 매우 심각한 찍먹 수준이라 아마 죽기 전까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찍먹을 해보았음에도 참으로 좋았다.


나라는 것, 우리 몸,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 우리의 감정, 우리의 감정으로부터 파생되는 생각. 이 모든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단 1초도 머무르지 않고 계속 흘러간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고정관념을 버리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와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었는데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누가 산소호흡기를 내려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영원히 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원히 아빠에게 상처받은 상태, 지극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최선을 다해 믿었다.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은 다 허상이고, 그러므로 이로부터 파생되는 감정도 다 허상이라면 고통받는 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책에서 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허무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것에서 해방되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내가 너무 오래 고통을 붙잡고 있었구나.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사실 치앙마이에 와서 읽은 책 중에서 내가 감명을 받은 책은 죄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기는 했다. 내가 이런 내용의 책에 꽂힌 까닭은 어떻게든 과거의 고통을 놓지 못하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발악하는 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발악의 와중에 가장 나에게 큰 파장을 남긴 것이 이번 책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겪은 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실패로 규정하며, 이제 30대의 끝을 바라보며 '더 이상은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고 차라리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라는 깊은 우울함에 빠져 있는 나.


하지만 사실 그런 나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죽지 않아도 나는 언제건 죽을 것이니 그저 마음을 다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금을 살아라.


이런 걸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갖으려고 하니 저자는 친절하게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라는 말을 해주며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사실 더 어렸을 때는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들어도 와닿지 않았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극심한 우울함에 빠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허무주의 때문에 고통받고 나서야 이런 이야기가 눈과 귀에 들어온다. 나 자신의 가장 밑바닥, 어두운 면을 보고 나서야 그 반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이 고통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았다.


책의 저자는 죽음의 필연성과 숙명성이 생명에 의의를 부여한다며 당장 내일 죽는다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것을 주문한다.


내일 죽으면 오늘 당장은 뭘 하고 싶은지, 그게 뭔지는 또 아직은 모르겠지만 보다 더 치열하게 찾아보려고 한다.


일단, 치앙마이에서 한국 식품 파는 곳에 가서 김부각이 보이면 하나 사야겠다. 김부각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내가 빠져 있던 아집일지 고정관념일지 모르는 것과 안녕을 고해야겠다.

*책을 다 읽고 뒷산(?)인 도이수텝에 올라 도시 풍경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버린다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랜만에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순간을 잡을 수가 없으니 그저 즐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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