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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n 27. 2024

인사이드 아웃2

#치앙마이 일년살기

태국 물가가 예전 같다고 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저렴한 물가를 체감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영화관이다. 한국에서는 평일 저녁 시간에 대략 13,000원 정도의 가격을 줘야 하는데, 태국에서는 5천 원 선이면 영화표 구매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바쁘기도 하고 티켓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 꽤나 불만이라 영화관을 점점 멀리했는데 치앙마이에 오고 나서는 한결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다닌다.


어제저녁에는 왜인지 모르게 지금의 나에게 딱일 것 같은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러 갔다.


태국 영화관은 한국과 시스템이나 시설이 별반 바를 바는 없다. 영화 전에 20분 정도 광고를 틀어주는 것까지 똑같다. 표에 적힌 영화 시작시간에서 15분쯤 있다가 자리를 찾아 들어가면 시간이 딱 맞는다.


기나긴 광고가 끝나는 것은 태국 국왕에 대한 찬가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영화 시작 전에 국왕 찬가가 나오면서 모두에게 기립해 달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라마 9세 전 국왕 서거 이후, 현 국왕은 국민들에게 딱히 인기가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국왕 찬가가 흘러나와도 사람들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 스포라고 할 것도 없이 스토리는 단순하다. 전편에서 어린아이였던 주인공에게 '사춘기'가 닥치면서 주인공의 감정세계에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렇게 오열해 보기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사춘기를 맞으며 그간 주인공에게 없었던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감정이 '불안'이었다. 불안이 점점 그 힘을 키워가는 모습에서 많은 어른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오열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앞자리의 태국인 관객들도 훌쩍거리는 것을 보았다. 불안함 때문에 힘들다는 건 현대를 살아가는 지구인이라면 국가, 인종, 종교 등 각종 정체성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인가보다.


특히 영화의 결말에서 와닿는 것이 많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추상적으로 설명하자면 '내가 싫어하는 모든 모습과 감정이 결국은 다 나다'라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님도 비슷한 내용으로 유튜브 영상을 찍은 것을 보았다.


나는 어떻게든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숨기려고 노력해 왔다.


살이 쪘을 때는 그 모습이 싫어서 죽어라 식단 관리를 하고 운동을 했다. 나중에 그게 역효과가 나서 폭식증이 오고 울면서 음식을 먹고 토해냈지만 그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의 일이었지만 부모님에게 철저하게 그 모습을 숨겼다.


술에 대한 의존 때문에 힘들었다는 사실 역시 주위에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부모님과 있었던 일로 힘들었다는 것도 태어난 지 35년이 지난 후에 겨우 힘겹게 카톡 메시지로 지나가듯 말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평생을 끙끙 앓고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말한 것이다.


살이 찐 모습,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모습, 실수한 모습, 성공하지 못한 모습, 내가 타인의 기대를 저버린 모습 등등 너무도 많은 모습을 어떻게든 숨기려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 싫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집까지 걸어오는 30분 내내 치앙마이의 밤거리에서 엉엉 울었다.


이 눈물은 내가 외면했던 나의 모든 모습에 대한 사과의 의미였던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라일리는 다양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형성해 간다.


나는 힘든 일을 많이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남을 사람. 이런 신념을 만들어줘야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보다는 어른들이 더 감명받을 영화가 아닐까.


다음 주에 또 보러 갈 예정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빛'의 의미. 한동안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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