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지난 주말에는 거의 폐인처럼 넷플릭스만 보면서 지냈다.
넷플릭스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편인데, 우연히 보기 시작한 '나르코스'라는 작품에 빠져버려서 주말 내내 시즌 두 개를 몰아봤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드라마와 영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두 버전의 배역의 느낌이 너무 달라서 둘 다 볼만하다. (개인적인 취향은 넷플릭스의 드라마 버전이 더 현실감 넘치고 재밌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폭 장르고 미국으로 치면 마피아 장르랄까. 돈 앞에서 의리고 명예고 뭐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이어진다.
배우들의 열연도 열연이었지만 내가 주말 내내 이 드라마를 몰아서 본 이유는 '권력'이라는 주제에 꽂혔기 때문이다.
이 주제가 매혹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주제가 내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봤다.
주인공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권력을 추구한다. 본인이 왕이자 모든 의사결정자여야 하고 자신에게 반항하면 가차 없이 처벌한다. 자신에게 순응하는 자들은 '가족'이라고 부르며 친절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을 배신했다는 '의심'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다. 가족적이고 자상한 면모와 냉정한 마약왕의 면모가 공존하는 인물이기에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고 흥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류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드라마는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비롯한 마약 세계의 화려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이었는가도 함께 그려낸다.
정말이지 웃긴 말이지만 난 이 드라마를 현실세계의 나와 연결 지었고 일부 위로받았다.
무한한 권력을 추구하며 자신의 권력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했을 때 이성을 잃는 마약왕의 모습에서 인생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한 사람의 첫 번째 유형인 아빠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는 회사 관계자들이 그럴 것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보복을 가했다.
특히 아빠의 폭력은 내 인생을 너무도 크게 뒤흔들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는 것을 어려워한다.
겉으로는 세상 인자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순식간에 표정이 변해서 폭언을 일삼는 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또한 어떠한가.
무한한 권력을 추구했던 마약왕이 모든 것을 잃는 과정을 보며(스포가 아니다... 이미 그게 역사적 사실이니까) 내가 받은 고통을 이겨낼 실마리를 찾았다.
마약왕도 아닌, 그저 무례한 사람들에게 너무 크게 흔들렸다. 내가 흔들리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 꼴이었다.
아빠도, 회사 경영진도 '돈'이라는 것을 쥐고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얼마든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빠에게서는 떠나서 독립하면 되는 것이었고 회사는 옮기면 되는 것이었다. 꼭 어떤 울타리 안에서만 내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 울타리를 넘어서도 얼마든 방법은 있다.
무자비한 폭력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돌아오고 결국 덧없이 끝난다.
그럼에도 무지한 인간은 또한 무한권력을 추구하겠지만 그럼에도 현명한 세상은 어떻게든 그것이 끝나게 만들 것이다.
조금은 더 마음이 평온해졌다.
대체 누가 마약왕 드라마를 보면서 이럴까 싶지만... 나만 좋으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