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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588일 차

#애프터 치앙마이

by 송송당

금주를 시작한 것이 벌써 23년 8월 25일의 일이다. 날짜로 치면 588일이 지났다.


년도의 앞자릿수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절대로 술을 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 내가 1년 하고도 반 정도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이 세상에 절대로 안 되는 것은 없는 건가... 이 글을 쓰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술을 끊는 것은 생각보다는 쉬웠다. 여러 번 강조하는 중이지만, 치앙마이 생활 5일 차에 공황발작이 심하게 온 이후로 아예 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런 정신상태에서 술을 마신다면 지옥행 특급열차에 타는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런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회사 생활을 잠시 하고, 이로 인해 격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최근 술 생각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마셔버릴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술이 진열된 곳 앞을 지나가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글을 써서 강조하는 까닭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하고 싶어서다. 이미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상황인데 술까지 마시면 나는 끝장이다.


그리고 588이라는 숫자를 리셋하는 것이 아깝지 않은가. 이 숫자를 적어도 1만 이상은 찍어야 할 텐데(개인적인 바람) 다시 0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느 세월에 숫자를 다시 채우나.


술을 이렇게 오래 마시지 않고 있지만, 신경안정제+스트레스의 콤보로 얼굴은 왜인지 띵띵 불어있다. 특히 눈을 보면 반쯤 감겨있는 모양새다. 태국에 있을 때처럼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을 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와서 불안을 회사 업무로 이겨내는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일 덕분에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쩌면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일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부쩍 든다.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할 때 찍었던 영상을 찾아보는데, 너무 오래전 일처럼 보인다. 영상 속의 나는 힘껏 발차기를 하면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운동을 한다. 당시에도 나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당시보다 지금은 또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이다. 정신 차리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평가받았고 나는 그 평가만큼 위축되었고, 그 평가만큼 술 생각을 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회사를 나가게 된 것은 다시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찾으라는 운명의 계시인 것으로 받아들여보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연봉을 받느냐보다 내가 얼마나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가 인생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참 오랜 시간 깨져가면서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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