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요즘 다니고 있는 심리상담 시간에 선생님은 지속적으로 나에게 지금, 혹은 그 당시의 기분이 어땠는지 묻는다. 더 나아가서 당시로 돌아간다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를테면 아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해보라고 권유한다.
나에게 꽤나 심각한 폭력을 행사한 아빠지만 나는 '이 나쁜 놈아!'와 같은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한다. 그러면 그 욕은 선생님이 대신해 주는 식으로 상담이 흘러간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었고 그대로 몸만 성인으로 자라났다.
나에게 표현은 나쁜 것이었다.
어렸을 적 기억나는 일화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초등학생 시절, 엄마에게 공부를 위해 '전과'라는 것을 사달라고 한 일이다.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과는 교과서의 문제풀이가 된 일종의 해설서 같은 것이다. 당시에 남동생은 엄마가 붙어서 학교 숙제를 봐주었지만 나는 전과 하나만 있으면 알아서 학교 공부를 해갈 수 있었다.
전과가 얼마나 비싼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뚱하고 지친 표정의 엄마는 나에게 짜증을 냈다. 돈 때문이었는지, 아빠와의 불화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전과를 사주긴 하였는데 내가 배운 것은 전과를 사달라고 표현했을 때의 엄마의 반응이다.
두 번째 기억은 가족이 남대문 부근으로 놀러 갔을 때다. 그게 가족이 다 같이 놀러 나간 거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이었나 싶다. 남동생은 아빠에게 운동화를 사달라며 조르다 못해 울면서 길바닥에 나앉았다. 그래서 가족 나들이가 빠르게 파투가 났고 이후로 그런 비슷한 나들이를 나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동생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권고사직을 당한 회사에서 팀장과 갈등을 겪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팀장은 연차가 높지 않은 특정 팀원을 두고 그가 나 때문에 기가 죽는다며 나에게 비난을 가했다. 한 번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팀장에게 물었다. '대체 왜 그 팀원만 감싸고돌아요?, 저는 일을 죽어라 하고 있는데 저는 괜찮아 보여요?' 그러자 팀장의 답변이 압권이었다. '송송당님은 괜찮아 보였으니까요...' 내가 힘들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단다. 나는 이미 팀장에게 힘들어서 정신과에 다닌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이후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족하지 않았나 보다.
욕망, 혹은 감정, 혹은 내가 원하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을 속으로 삭인다. 가끔 타인 앞에서 그런 걸 표현하려는 모습을 스스로 느낄 때면 빠르게 나 자신을 정비한다.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결국은 이게 나를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게 만든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늦은 때라는 것은 없을 테니 조금은 더 간절하게, 나의 욕망을 표현해 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그전에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는 게 우선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