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건적 사랑의 결과

#애프터 치앙마이

by 송송당

나라의 지원을 받아 열심히 심리상담을 다니고 있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이라는 것이다.


해당 사업에서 인정하는 기관에서 전문가의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아 서류를 제출하면 소득 금액에 따라 심리상담 지원비를 차등 지원받을 수 있다. 나는 정신과에서 불안장애 치료를 받고 있어서 진단서만 떼어가면 되었다.


24년도에 8회 차 상담을 받았고 25년도에도 추가 지원을 받았다. (총 16회 차)


덕분에 같은 상담사 선생님에게 연속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 회사 스트레스로 '이러다 죽겠군'이라고 생각할 때 회사 바로 앞의 심리 상담소를 찾아서 상담을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냐고?


상담을 처음 받는 것도 아닌지라 늘 하는 이야기를 했다. 처음 상담을 받았던 몇 년 전에는 상처에 대해 언급하면 울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담담하게, 책을 읽듯 과거의 상처를 읊어나갔다. 너무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는 건 아닌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싶기도 했지만 일단 내면의 상처를 털어놓을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놓였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데 상담사는 돈을 받고 직업적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분이니 그런 부담이 덜했다.


이번에는 회차가 16회 차나 되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하게 내 인생 전반의 문제를 다 훑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회사는 권고사직으로 그만둔 상황이라 회사 스트레스는 사라져 가는 중, 다시 부모님에 대한 스트레스가 빼꼼, 나 왔어라고 내 마음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강조하는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괜히 나의 스트레스도 덩달아 상승하는 중이다.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 속에 자란 드라마의 주인공이 좋은 대학교에 가고 회사의 대표가 되는 등 부모의 자랑이 되는 모습에서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봤다.


내가 느끼기에 부모님은 나에게 조건적인 사랑을 주었고, 나는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끔찍할 수준의 부담감을 느낀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 같다.


상담을 하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내가 '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의 전형적인' 말을 한다고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나는 동료들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하냐'라고 할 정도로 고행을 자초하면서 일했다. 회사가 딱 그렇지 않나? 일을 잘하면 칭찬을 해주는 곳. 회사야 말로 조건적인 사랑이 기본값인 곳이다. 조건적 사랑에 익숙한 나는 회사에서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조건을 누구보다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조건적 사랑을 갈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기교육을 받은 인재 수준이다.


회사와는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회사의 조건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 인생까지 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나.


가족도, 친구도, 회사도 다 나에게 '내가 원하는 걸 해줘'라면서 맹렬하게 쫓아오는 기분이다. 그래야만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겠노라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걸까.


부모님의 자랑이 되지 않아도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싶지 않다.


이런 의식의 흐름이 흘러가고 그렇게 흘러가는 의식을 먼발치에 앉아서 바라보며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소중해, 그러니까 그만 불안해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욕망을 표현하기